"투자수익률 은행 금리보다 못하네"… 퇴직연금 헐어 집 사는 직장인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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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득균 기자
입력 2018-04-2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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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직연금 수익률, 은행 금리보다 낮기 때문

  • DB형 중도인출 불가능하지만 DC형은 가능

  • DB형은 회사가 DC형은 근로자가 운용 주체

  • 전문가 "중도인출 제한 두고, 인식 개선 필요"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최모씨(35)는 지난해 퇴직연금을 중도에 인출했다. 분양받은 아파트의 계약금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최씨는 "퇴직연금은 노후 준비를 위해 필요하지만 주택비 마련이 시급한 상황에서 은행의 대출받아 이자를 지불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말했다.

이렇듯 주머니 사정이 팍팍한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대표적 '노후 대비책'인 퇴직연금을 헐어 주택을 마련하거나 전·월세 자금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퇴직연금통계'를 보면 지난해 상반기 주택 문제로 퇴직연금을 해지한 사람은 2만6323명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주택 구입 목적으로 퇴직연금을 해지한 사람은 39.6%(1만420명), 주택 임차보증금을 마련하고자 해지한 사람은 22.2%(5852명)에 달했다.

과거 증가 추세를 보면 2015년 2만8080명에서 2016년 4만91명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2만6323명으로 집계된 상황으로 볼 때 하반기 중도인출자까지 더해지면 최소 5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회사가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퇴직금을 회사가 아닌 금융회사에 맡기고 근로자가 퇴직하면 이를 일시금 또는 연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정부가 2005년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한 것도 노후 재원을 잘 지키자는 취지였다. 기존 퇴직금 제도에서는 중간 정산으로 노후 생활자금이 소진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기대한다면 국민연금뿐 아니라 퇴직연금까지는 필수로 갖춰야 한다. 그런데 왜 직장인들의 중도해지율이 증가하는 것일까.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올해 3월 말 기준 누적 적립액 5000억 원 이상 금융회사 28곳의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 1년 평균 수익률은 1.48%로, 평균 연 1.7% 수준인 은행 예금 금리보다 낮았다.

결혼을 하거나 결혼을 앞둔 직장인들은 무엇보다 주택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사실상 눈에 보이는 뻔한 월급을 받는 직장인들이 집을 구하려면 수억원에 달하는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직장인 예비 부부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금액이다.

그래서 대부분이 부모님 또는 주변의 도움이나 금융권의 대출을 받는다. 은행권 금리보다 낮은 수익률의 퇴직연금을 두고 대출을 받아 이자를 지불하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중도해지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퇴직연금 수익률이 시장금리보다 높아야 하지만 낮다는 것이다. 이러니 누가 퇴직연금을 그대로 들고 빚을 내 주택을 마련하겠는가. 퇴직연금 중도해지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IRP) 퇴직연금은 무주택자가 본인 명의로 주택을 구입하는 등 일부 사유에 한해 적립금 전액을 중도 인출할 수 있다.

퇴직연금은 유형별(지난해 6월 기준)로 확정급여형(DB)이 66.4%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확정기여형(DC) 24.1%, 개인형 퇴직연금(IRP) 9% 순이었다.

퇴직연금제 중 DB형은 회사의 재무·인사 담당자가, DC형은 근로자가 운용 주체다. DC형(IRP 포함)은 가입자가 책임지고 투자해야 한다. DC형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개선하려면 가입자의 적극적인 관심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상세히 들여다보면 DB형은 회사가 퇴직급여 재원을 외부 금융회사에 적립해 운용하고 근로자가 퇴직할 때 정해진 금액을 지급받는 방식이다. 근무 마지막 연도의 임금을 기준으로 퇴직연금이 지급되므로 임금상승률이 높고 장기근속이 가능한 기업의 근로자에게 유리하다.

DC형은 회사가 매년 임금총액의 일정 비율을 적립하고 근로자가 적립금을 운용해 운용 손익이 근로자에게 귀속되는 형태다. 임금상승률이 낮거나 임금피크제에 진입한 근로자 등에게도 유리한 방식이다. DB형은 중도인출이 불가능하지만 DC는 가능하다.

IRP형은 퇴직한 근로자가 퇴직할 때 수령한 퇴직급여를 운용하거나 재직 중인 근로자가 DB, DC 이외에 자신의 비용 부담으로 추가로 적립해 운용하다가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수령할 수 있다.

퇴직연금은 은퇴 후 필요한 노후자금 마련을 위한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퇴직연금이 주택비 마련 등을 위해 과도하게 중도 인출돼 연금재원이 조기에 바닥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경희 상명대 글로벌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지난해 논문을 통해 "퇴직연금의 투자수익률이 낮고 주택가격 상승률이 투자수익률보다 높을수록 중도인출을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수익률이 적은 퇴직연금을 유지하느니 차라리 연금을 헐어 집을 사는 게 더 이익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근로자들의 안정된 노후 대비를 위해 중도인출 기준을 조금 더 엄격하게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외국은 퇴직연금으로 적립된 돈을 중도에 찾아 쓰려 할 때 엄격한 제한 조건을 두고 있다. 미국은 의료비 지출이 필요하거나 당장 대출금을 갚지 않으면 퇴거 처분을 받게 될 경우 등 즉시 조달 가능한 현금이 없는 것으로 증명되면 퇴직연금의 일부를 찾아 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유를 벗어나 퇴직연금을 중간에 찾아 쓰면 인출 금액에 대해 세금이 부과된다. 또 인출 시점과 가입자의 나이에 따라 벌금이 주어진다.

호주도 심각한 재정적 상황에 한해 중간에 돈을 뺄 수 있고 영국 역시 건강상의 이유로 퇴직이나 기대여명이 1년 이하인 경우에만 허용한다. 다른 사유에 대해서는 55%를 세금으로 뗀다.

금융업계 전문가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가뜩이나 저축률이 낮은 직장인이 퇴직연금마저 중간에 찾아 써버리면 직업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 고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퇴직연금 운용에 대해 잘 모르는 직장인이 많은 것도 하나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퇴직연금 자산운용지시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가 절반에 달했다. 또 퇴직연금 가입자 10명 중 약 8명은 가입한 퇴직연금 분산투자와 상품별 투자 한도에 대해 기본적인 내용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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