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칼럼] 댓글조작과 미디어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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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장영희 시청자미디어재단 서울센터장·경제학박사
입력 2018-04-26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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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칼럼]

 

장영희 시청자미디어재단 서울센터장·경제학박사.



인터넷 포털에서 뉴스를 많이 보는 축에 속하지만, 생각해 보니 단 한번도 댓글을 단 적이 없다. 댓글을 쓰지 않았을 뿐 보지 않는 건 아니다. 댓글을 읽는 것은 물론 특히 관심을 가진 이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서다. 특정 이슈에 대해 여론의 향방을 엿볼 수 있다고 기대했던 듯하다.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댓글조작 사건은 이런 기대를 뿌리째 뽑는다. 사실 그간 수많은 댓글이 욕설과 인신공격 등으로 시궁창 같은 악취를 풍기기는 했어도 ‘조작’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국가기관을 동원한 댓글조작에 이어 드루킹 일당의 사건까지 접하니 댓글에 대한 근본 처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래서야 댓글이 상호작용하는 대표적인 인터넷 토론 공간이며 정보제공과 여론형성 기능을 갖춤으로써 저널리즘 특성을 보인다는 학계의 의미 부여가 설 땅이 있는가 말이다.

댓글조작 사건의 온상으로 지목된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가 최근 개선안을 내놨다. 대책은 ‘헤비 댓글러(댓글 과다 사용자)'를 억제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네이버 뉴스서비스 이용 현황을 분석한 누리집 ‘워드미터'에 따르면, 지난해 10월30일부터 4월23일까지 약 6개월 동안 한 번이라도 댓글을 단 적이 있는 아이디는 모두 175만2558개다. 이 중 1000개 이상 댓글을 단 아이디는 3518개로 전체의 0.2%에 불과하다. 2000개 이상 댓글을 단 아이디도 116개나 된다. 반면 전체의 94%인 165만여명이 쓴 댓글은 100개가 채 안되지만 댓글 상위 작성자 100명이 단 댓글의 수는 무려 23만487건에 달한다. 1위를 차지한 아이디 ‘pant****’은 이 기간에 댓글 4299개를 남겼는데, 역시 정치 분야가 3411개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네이버 이용자 숫자가 1693만여명이고, 계정 1개당 평균 댓글 수가 2.58개인 점을 감안하면 헤비 댓글러로의 쏠림 현상이 자못 심각하다. 이 헤비 댓글러들은 인터넷 사용 인구의 0.001%도 안될텐데, 이들은 댓글의 수질을 악화시키는 악플러를 겸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소수가 댓글 창을 독식하는 구조를 깨려는 네이버 대책이 비상조치로는 기능할 것이다. 계정 하나로 같은 기사에 달 수 있는 댓글 수를 20개에서 3개로 줄이고 ‘공감·비공감' 클릭 횟수를 제한하고 연속 댓글 작성 시간을 10초에서 60초로 늘리면 댓글도배와 조작을 억제하긴 할 것이다.

그러나 네이버 개선안은 땜질 처방이라는, 혹은 실효성이 낮다는 비판을 받는 듯하다. 드루킹처럼 수백개의 아이디와 매크로를 확보하면 시간이 더 걸릴 뿐 댓글 조작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도리어 한 개 계정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선량한 댓글러들만 피해를 볼 것이라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댓글 서비스 축소와 아웃링크 도입을 근본처방으로 요구하지만, 포털업체들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뉴스콘텐츠를 구매해 이용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댓글을 통해 트래픽을 늘려 광고수익을 올리는 비즈니스 모델을 접을 리 만무하다.

댓글 서비스는 2004년 도입될 때 무제한이었는데, 네이버는 2006년 하루 10건으로 제한했다가 2012년 20건으로 슬그머니 늘렸다. 사실 하루 몇 개로 제한하느냐가 댓글 문제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포털업체가 조작을 차단하는 시스템을 강구하고 법적 제재와 엄단 조치를 취하는 일 등이 필요하지만, 과연 충분할까 의문이다. 일각에서 나오는 댓글 폐지는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온라인 댓글의 공론장 기능을 원천봉쇄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공론장(Public Sphere)은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 충분한 정보가 제공된 상태에서 이상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열린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공간이다. 하버마스는 공론장이야말로 국가와 시민을 매개하면서 여론을 형성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거점이라고 설파했다. 직접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를 넘어 요즘 대세로 떠오른 숙의민주주의의 토대인 것이다.

온라인 공론장에 대해 그간 학계에서는 상반된 평가가 있어 왔지만, 집단지성의 발현과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성숙한 민주적 의제설정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다. 댓글이 민주적 의제설정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촉진하는 효과적 대안으로 미디어리터러시(literacy) 교육을 주문하고 싶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에 대한 평가와 이해, 활용과 관련된 능력을 포괄하는 개념인데, 미디어 콘텐츠를 해독하고 미디어가 작동하는 원리와 미디어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며, 미디어를 적절히 활용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뜻한다. 궁극적으로 미디어리터러시는 공동체의 공적 이슈에 적극 참여하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댓글조작 세력을 몰아내고 댓글이 민주적 공론장으로 자리잡게 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미디어리터러시로 무장한 국민 혹은 시민이 댓글의 전위부대가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 댓글을 읽지만 말고 달기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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