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사가 자초한 'GA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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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 기자
입력 2018-04-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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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했으면 스스로 규제를 해달라고 했겠습니까?"

최근 만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독립법인대리점(GA)에 대한 수수료(시책) 경쟁으로 업계가 치킨 게임에 빠져들면서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고 털어놨다. 얼마 전 손해보험사들은 금융감독원에 GA 수수료 지급한도를 규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스스로 규제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GA 수수료를 스스로 억제하기 어려우니 금융당국이 나서서 방책을 마련해달라는 SOS 신호였다.

실제 손해보험사가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해 GA에 과도한 시책을 약속하는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손보사가 GA에 대규모 수수료를 약속하는 등 출혈 영업에 나서자 경쟁 보험사들도 뒤질세라 돈을 풀어왔기 때문이다. 올해 초에도 치아보험 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출혈 경쟁을 벌인 끝에 스스로 규제를 자청하는 지경에 놓였다.

최근 일부 대형 GA가 보험사의 수수료 정책에 간섭하는 등 비정상적 '갑질'을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대부분 GA가 보험사 설계사를 노리고 '인력 빼가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별다른 대책도 마련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많다. 어느새 보험사가 보험대리점 눈치를 살펴야 하는 '을'의 신세가 된 셈이다.

보험사가 처음부터 을은 아니었다. 2000년 이전에는 GA의 규모가 미미했기에 보험사가 GA를 상대로 큰소리를 칠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 전후 GA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최근 금감원 통계에 따르면 전체 보험 판매실적에서 GA가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이른다. 보험설계사의 절반 가까이가 GA에 소속돼 있다. 대형 GA들이 한데 뭉쳐 어느 한 보험사의 상품을 보이콧하면 시장점유율 순위가 바뀔 정도다. 이렇다 보니 GA가 보험사를 상대로 수수료에 간섭하는 등 비정상적 '갑질'을 하는 경우도 나온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되기까지 손보사가 자초한 면도 적지 않다. 최근 10여년 동안 손보사들은 손쉬운 GA 영업 경쟁에 열을 올렸다. 독창적인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고민하거나 자체적인 영업 채널을 확충하기 위해 투자하기보다는 GA에 수수료를 안겨주는 방식으로 점유율 싸움을 되풀이해왔다. 이런 환경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GA의 몸값과 발언권이 꾸준히 늘어난 것이다.

출혈 경쟁을 제어하지 못하고 GA에 끌려다니고 있는 보험사들은 현재의 환경을 스스로 자초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보험사가 차별화된 상품 개발이나 스스로의 채널 확보 노력을 게을리하고 손쉬운 GA 수수료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지금의 행태를 계속 유지한다면 보험대리점의 갑질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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