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진칼럼]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싱가포르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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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진 논설고문
입력 2018-04-22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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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허남진 논설고문]

남북한은 1994년 7월 25일 평양에서 김영삼(YS)-김일성 회담을 갖기로 합의했었다. 이뤄졌다면 분단 이후 첫 남북 정상회담이다. 그러나 회담은 16일 전인 7월 9일 김일성의 사망으로 무산됐다.

그 무렵 한반도 상황도 지금과 비슷했다. 북한 핵개발 문제로 전운(戰雲)이 짙었다. 미국은 영변 핵시설 폭격을 계획하고 항공모함과 순양함을 동해안에 배치했다. 당시 레이니 미 대사는 주한미군 가족과 대사관 직원 철수 기자회견을 예정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깜짝 놀란 YS가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강력 만류함으로써 북폭은 가까스로 보류됐다.

YS-김일성 회담은 평양을 전격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게 김일성이 부탁해 이뤄졌다는 게 정설이다. 북폭 위협에다 극심한 식량난 등 북한이 절박할 때였다.

이 즈음 김일성이 ‘경제책임일꾼’들을 불러 훈시한 장면이 의미심장하다. 배배 꼬인 경제 실상을 한탄하다 “무역일꾼들을 다른 나라에 내보내 시야도 넓히고 장사 물계도 알게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나는 앞으로 어느 나라든지 우리나라와 경제 합작 같은 걸 하자고 하면 하려고 한다”고도 말했다. 숨지기 사흘 전 일이다.

김일성이 YS와의 회담을 통해 개혁·개방의 획기적 활로를 모색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가 숨져 진짜 속내는 알 길이 없지만 그 때문에 회담이 무산된 것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YS는 회고록에서 “북한이 폐쇄적 체제라 오직 절대 지배자인 김일성만이 획기적인 전환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회담이 성공할 가능성도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김일성으로부터 3대 세습을 이어받은 30대 손자가 며칠 후면 국제정치 무대에 데뷔한다. 남북, 북·미 연쇄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이 어떤 카드를 내놓을 것인가. TV로 생중계될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분위기가 좋다. 북한은 회담에 앞서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을 깜짝 선언했다. 미국 쪽에서 요구하는 ‘완전하고도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CVID)’ 수준의 비핵화까지는 아직 거리가 멀긴 하다. 그래도 회담 당사자들은 매우 낙관적인 모습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일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며 웃는다. 막후 협상이 잘 풀리고 있는 건지, 특유의 더듬수인지 헷갈린다.

북핵 완전 폐기에 대한 신뢰가 확보된다면 평양행 선물보따리가 빵빵할 게 틀림없다. 2007년 노무현·김정일 회담에서 합의한 10·4선언 속엔 40여개의 합작 사업이 포함됐다. 이번엔 그보다 훨씬 푸짐할 걸로 짐작된다.

김정은의 북한은 김일성의 북한과 다르다. 북폭 위협과 극심한 경제난에 직면한 절박감은 비슷하지만, 김정은의 손엔 완성된 핵미사일이 쥐어져 있다. 그것도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하다. 핵 폐기 몸값이 그만큼 뛰었다. 반면에 회담이 실패할 경우 이번엔 미국이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돼 있다.

회담 실패가 초래할 재앙을 떠올리면 사실 김정은 앞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아버지 김정일이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갖고도 핵 개발을 멈추지 않은 데서 비롯된 국제적 불신의 골이 깊어서다. 국제사회는 김정은 또한 발등의 위협을 일시 모면하기 위해 시간벌기를 하려는 속셈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그 의구심이 풀리기 전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구도다. 완전한 검증과 신뢰 담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김정은은 더 통 큰 자세로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일대 결단을 내리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2대에 걸친 70여년의 ‘주체’ 실험은 파탄으로 결론 났다. 이젠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남쪽 파트너가 우호적인 문재인 정부라는 점도 놓칠 수 없는 기회다.

2006년 1월 김정일이 중국 개혁·개방 정책의 상징도시 상하이(上海)를 방문했다. 발전상에 충격을 받곤 “천지가 개벽했다”고 찬사를 연발했다. 중국 개혁·개방은 덩샤오핑(鄧小平)의 작품이다. 그는 1인당 국민소득 400달러의 가난한 나라에서 30년 만에 3만 달러의 선진 부국(富國)으로 발전한 싱가포르에 관심이 많았다. 덩은 직접 싱가포르를 방문해 경제 발전 현장을 벤치마킹했고,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를 여러 차례 만나 성장 비법을 물었다.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경제발전 원동력으로 개혁·개방정책을 꼽았다. 특히 미·일 등 선진국들의 우수한 다국적 기업을 적극 유치한 게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선진 기술 습득에도 상당한 공을 들여 우수 학생들을 해외로 유학 보냈고, 기업 간부들도 해외 우수기업으로 연수를 다녀오게 한 사례들을 들려줬다.

덩샤오핑은 중국 공무원들을 대거 보내 싱가포르를 배우도록 독려했다. 싱가포르식 개혁·개방이야말로 중국이 오늘날 G2의 경제대국으로 비약 발전한 주요 롤 모델이었다. 중국 방식과 중국이 배운 싱가포르 방식, 북한에는 훌륭한 교과서다.

바로 그 점에서 북·미 회담 장소로 싱가포르를 추천하고 싶다. 김정은이 그곳에서 리콴유의 통찰, 덩샤오핑의 개안(開眼), 그리고 말년 할아버지의 ‘장사 물계 배우기’ 고뇌를 곱씹어 본다면 역사적 선언을 도출해내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문 대통령이 27일 회담장에 김정은에게 줄 선물로 리콴유의 자서전 ‘일류국가의 길’을 가져가면 어떨까.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가안보담당 대통령 보좌관은 “시대가 인물을 만드는가, 인물이 시대를 만드는가의 오랜 논쟁에서 리콴유는 후자”라고 평했다. 김정은이 담대한 결단으로 핵과 미사일을 깔끔히 치워버린 뒤 빗장을 열고 나온다면 그 역시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시대의 망나니로 남을 것인가, 시대를 만든 영웅으로 기록될 것인가. 선택은 그의 몫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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