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농 김상현은 누구…YS·DJ와 민주화 최전선에 선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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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형 기자
입력 2018-04-1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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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농(後農) 고(故) 김상현 전 국회의원. [사진=연합뉴스 ]


후농(後農) 김상현 전 국회의원이 노환으로 18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6선'의 김 전 의원은 군부독재 시절인 박정의 정권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한국 정치사 한가운데를 관통한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별세 직전까지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직을 유지하면서 각종 현안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정치부 기자들의 '원로에게 듣는다' 등 각종 기사의 취재원 1순위이기도 했다. 정파적 파벌보다는 소통을 중시했다고 여야 관계자는 입을 모았다.

실제 김 전 의원은 정치권의 '마당발'로 통했다. 그는 영원한 동지이자 라이벌인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1971년 대선과 1987년 대선에서 각각 한 번씩 도왔을 정도로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를 넘나들었다.

1935년 전남 장성에서 출생한 김 전 의원은 DJ의 도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65년 서울 서대문갑 보궐선거에서 처음으로 원내에 진입했다. 이후 내리 3선을 했다. 김 전 의원은 1971년 대선 때 40대 기수론으로 맞붙였던 양김 대결에서 DJ 손을 들어줬다.

이후 김 전 의원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유신정권 땐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피선거권도 박탈당했다. 한동안 야인으로 지냈다.

1980년 서울의 봄이 오면서 김 전 의원은 서서히 기지개를 켰다. YS와 DJ가 87년 6월 항쟁의 불씨가 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결성하자 김 전 의원도 민주화운동 최전선에 섰다. 당시 DJ를 대신해 공동의장 권한대행을 맡았을 정도로 위상이 커졌다.

양김이 결별한 1987년 대선 땐 '분열의 편에 설 수 없다'며 YS를 지지했다. DJ가 4자 필승론을 앞세워 평화민주당을 창당했지만, 김 전 의원은 탈당을 거부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YS와 김 전 의원의 관계도 오래가지 않았다. YS가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며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간 3당 합당을 추진하자, 이를 '야합'으로 규정하고 YS에게 반기를 들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에서 다시 원내로 들어온 김 전 의원은 이듬해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와 당권 싸움을 하는 등 차기 대권주자로 발돋움했다.

1992년과 1996년 총선 당시 서울 서대문갑에서 연거푸 당선된 그는 2004년 친노(친노무현)계가 창당했던 열린우리당에 탑승하지 않고 민주당 소속으로 광주 북구갑에 출마 33.9%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돌고 돌아 최근까지 현 집권당인 민주당 상임고문을 맡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희원 씨, 아들 윤호(우림FMG 대표이사)·준호(우림FMG 전무)·영호(국회의원) 씨와 딸 현주 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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