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스페셜-임시정부의 맏며느리 수당 정정화⑱]등장인물: 윤세주는? 김원봉 동지, 의열단·조선혁명단서 활약한 혁명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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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라 기자
입력 2018-04-1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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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石正 尹世胄, 1900~1942) 타이항산에서 진 항일투쟁의 별, 충칭 추도식엔 각계 각파가 모두 참석

[석정 윤세주. 사진=위키 제공]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약산 김원봉과 동향이다.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만주로 망명해 의열단(義烈團)에 입단했다.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일보사 등 일제 식민통치기관 폭파를 실행에 옮기던 중 왜경에 붙잡혀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옥 뒤, 좌우합작으로 결성된 신간회(新幹會)에서 활동했고, 좌익계열이 주장한 신간회 해소에 반대했다.
다시 중국으로 망명, 난징에서 약산을 비롯한 의열단 동지들을 만나 민족통일전선 및 항일군사조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장제스의 지원으로 조선혁명간부학교를 개설, 교관을 지냈다(그는 이 학교 1기생이기도 하다). 조선민족혁명당 창당(1933)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의용대를 조직했다.
1941년 대원들을 이끌고 산시성으로 이동해, 팔로군 작전구역에서 일본군 토벌작전에 맞서 전투를 수행했다. 1942년 6월 3일, 타이항산(太行山)에서 일본군 포위망을 뚫다가 대원 일곱 명과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이 전투에서 일본군 여단장이 백산 이청천의 일본육사 동기인 홍사익이었다). 그의 유해는 중국 허난성(河南城) 한단시(邯鄲市) 진기로예(晉冀魯豫) 열사능원에 안치되어 있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수당은 그의 회고록에서 “석정은 의열단 소속으로 20세 전부터 항일투쟁을 벌이다가 옥살이하는 등 외길을 걸어온 혁명투사”였다고 회고하며, “그의 전사 소식을 듣고 충칭에서는 정중하고 엄숙한 추도식이 거행되었으며, 추도식에는 각계 각파가 다 함께 참석했다”고 기록했다.
 

[조선의용대 창립식(1938.10.10 한커우). 앞줄 맨왼쪽 인물이 석정 윤세주이다. 그의 오른쪽 두번째 깃발을 들고 있는 이가 약산 김원봉. 사진=임시정부 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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