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로 엇갈린 韓·中·日 4차 산업혁명] ⑥ 핀테크 가로막는 '은산분리' 日은 폐지, 韓은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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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애신·김정호 기자
입력 2018-05-04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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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이유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다. 경제성장을 지속시켜줄 미래 성장동력은 우리가 준비하는 4차 산업혁명의 테두리 안에 모두 포함돼 있다.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부가가치,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 그 수단이 될 기술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다. 민간기업만으로는 4차 산업혁명을 견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제도를 정비하고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 정부도 그것을 잘 알고 있고 매년 과제를 발굴해 규제완화에 나서고는 있지만, 더딘 속도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속도가 느릴수록 우리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국과 일본이 한 발씩 앞서가는 구도다. 최근 기술의 발전 속도를 정책이 따라잡지 못하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더딘 규제완화가 어떤 현상을 초래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민간기업의 4차 산업혁명, 규제부터 하고 보자는 정부
② 규제 피해 日에서 꽃피우는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③ 中 ‘드론 택배’ 이미 상용화... 韓 '먼 미래'
④ 날개 단 中·日 자율주행차 연구… 韓 '거북이 걸음'
⑤ 해외 진출 준비하는 中 카풀 업체 VS 국내 입지도 좁은 韓 카풀업체
⑥ 핀테크 가로막는 '은산분리' 日은 폐지, 韓은 그대로
⑦ 中 헬스케어 급성장... 韓 규제와 정치가 발목
 

#중국에서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미국·유럽 등 전 세계 금융시장 상품을 비교해 어디에 투자할지 정할 수 있다. 절차도 간단하다. 앱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된다.

한국에선 이 같은 일이 불가능하다. 은행이나 보험 상품, 증권사 펀드 등 여러 회사의 상품을 추천할 순 있지만 직접 판매는 불가능한 일사 전속주의 때문이다. 중국에는 '텐센트'가 있고 미국엔 '페이팔'이라는 굵직한 핀테크 기업이 있지만 국내에는 없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정부가 정해 놓은 규제로 인해 할 수 있는 것들이 제약된 탓이다.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 분야 4차 산업혁명 열기는 선진국, 인프라는 후진국

최근 발표된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보고서에는 규제에 둘러싸인 한국 핀테크 산업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겼다. 3일 맥킨지가 발표한 아시아 15개국 소비자 1만7000명을 대상으로 금융 서비스에 대해 조사한 '개인 금융 서비스 2017'에서 한국은 아시아에서 디지털 뱅킹이 가장 깊숙이 뿌리내린 국가로 나타났다.

한국 응답자 100명 가운데 99명이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로 디지털 뱅킹을 이용한다고 답했으며, 일본과 홍콩 등 선진국은 평균 97명, 중국과 인도·말레이시아 등 신흥국은 평균 52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한국의 경우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로 2주에 한 번 이상 디지털뱅킹을 이용하고, 지난 6개월 동안 한 번 이상 인터넷쇼핑을 한 '적극적 디지털 소비자' 비율도 90%에 달했다. 선진 아시아(85%)와 신흥 아시아(82%)를 웃도는 수준이다. 인터넷은행에 대한 선호도는 90%로, 홍콩(98%)을 제외하면 일본(80%)과 중국(65%)보다 높았다.

금융 분야 4차 산업혁명에 올라탈 한국 소비자의 의지는 세계 최고 수준인 셈이다. 하지만, 수요를 뒷받침할 인프라는 후진국 수준이다. 지난해 출범한 인터넷은행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산업 자본이 금융회사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은산(銀産) 분리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지난해 4월 영업을 시작한 케이뱅크는 초기 자본금 부족으로 3개월 만에 대출을 중단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특혜 시비로 증자 논의를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은산분리는 57년 전에 만들어진 규제다. 해외에서는 시대 흐름에 맞춰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사후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일본은 1997년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 한도 20%를 폐지했으며, 미국은 1999년 그램-리치-브라일리 법안(금융산업현대화법안)으로 사실상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

인공지능(AI)이 투자 상담을 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 분야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불완전 판매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비(非)대면 투자 일임이 금지돼 있다. 모바일 결제와 P2P(개인 대 개인) 대출을 비롯해 소액 해외송금업체와 은행 간 연계, 암호화폐 거래소 가상계좌 개설, 스타트업의 자본금 요건 완화 등도 규제로 인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규제 문턱 확 낮추고, 방식도 바꿔야"

당국으로선 규제를 통해 금융안정을 꾀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당국의 제약이 지나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당국의 규제로 인해 이미 국내 핀테크 산업은 뒤처지고 있다"며 "국내 기준과 해외 기준에 맞춰 서비스를 출시하려다 보니 시간과 비용과 노력이 두 배 이상 들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업계에선 규제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규제는 포지티브 방식으로 이뤄진다. 인허가를 하거나 명시한 대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골드바를 판매할 수 있다'라고 명시돼 있으면 실버바는 팔 수 없고 골드바만 판매할 수 있는 식이다. 업계에선 포지티브 방식 대신 네거티브 방식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골드바만 빼고 판매할 수 있다'라고 바뀌면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지기 때문이다. 

당국도 규제 문턱을 낮출 필요성에 공감은 하고 있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규제당국이 혁신가들에게 세상이 변하는 것에 맞춰 기회를 주고 오류에 대해서도 빠르게 수정하면서 시장을 함께 꾸려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규제의 벽이 높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당국이 빅데이터 활용을 높이기 위해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의료법, 생명윤리법, 신용정보법 등 개선해야 할 규제가 넘쳐난다.

김대윤 핀테크산업협회장은 "신용정보에 대한 접근을 더 쉽게 해서 핀테크 업체가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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