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남북협상, 북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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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규 기자
입력 2018-04-1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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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철 성균관대 연구교수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남북협상 70주년 기념 학술회의-1948년 남북협상과 한반도의 미래'에 참석해 '북한에서 보는 남북협상과 남북관계 개선 전망'이란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1948년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 전 진행된 남북협상은 대한민국의 역량에 따라 북한 혁명 노선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회담이다.”

남북협상 7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우사김규식연구회가 17일 개최한 ‘1948년 남북협상과 한반도의 미래’ 학술회의에서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는 남북협상의 배경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이 교수는 “1948년 2월 16일 미국과 소련 등 양군 철수와 총선을 통한 통일정부 수립에 의견 일치를 본 남한의 우파 민족주의자 김구와 김규식은 북측에 남북협상을 제안하는 서한을 보냈다”며 “당시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장인 김일성은 이 제안에 곧바로 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김구를 ‘미 제국주의의 주구’이자 ‘민족반역자’로 보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김구와 김규식이 중도 세력을 규합해 단독선거 및 단독정부 반대 운동을 주도하며 김일성의 마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구와 김규식은 우여곡절 끝에 1948년 4월 26일과 4월 30일 평양에서 김일성과 당시 김두봉 북조선노동당 당수와 함께 이른바 ‘4김 회담’을 열었다.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우사김규식연구회 주최로 열린 '남북협상 70주년 기념 학술회의-1948년 남북협상과 한반도의 미래'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당시 김구와 김규식은 김일성 등에게 △독재정치를 배격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를 건립할 것 △사유재산 제도를 승인하는 국가를 세울 것 △총선거로 통일중앙정부를 수립할 것 등을 제안했다.

남북은 회담 과정을 거쳐 ‘외국 군대 철수 후 총선에 따른 통일적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합의안을 채택했다.

이 교수는 “1948년 남북협상의 성과는 비록 남북의 단독정부 수립으로 빛이 바랬으나, 이후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주의자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며 “대화에 미온적이던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유도하고, 합의안 채택에 성공한 것은 확고해 보이는 북한의 혁명 전략이 남한의 역량과 노력에 따라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분석했다.

오는 27일 개최되는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조언도 내놓았다. 그는 “북한이 핵무기를 경제 협상에서 우위 선점과 체제 유지를 위해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곧 열리는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동북아 평화질서의 선도자가 될 기회”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남북협상의 역사적 재평가'를 주제로 발표했고, 박태균 서울대 교수는 '버치 문서군을 통해 보는 김규식과 남북협상, 그리고 그 현재적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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