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스페셜-임시정부의 맏며느리 수당 정정화⑯] 등장인물:백강 조경한·백파 김학규·철기 이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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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라 기자
입력 2018-04-1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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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강 조경한]

백강(白岡) 조경한(趙擎韓, 1900~1993)
한국독립당 창당 참여… 광복군 살림 도맡아
전남 순천 출생으로, 만세운동 직후 만주로 망명해, 해방을 맞을 때까지 중국에서 독립투쟁에 진력했다. 안훈(安勳)이라는 이명을 쓰기도 했다. 1930년 홍진, 이청천 등과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했으며, 1934년 백범의 부름을 받아 낙양군관학교에서 오광선(본문에 나오는 희영․희옥․영걸 삼남매의 아버지), 이범석과 함께 교관으로 동포 청년들의 군사훈련을 맡았다.
광복군 창설 당시 총사령부의 주계장(主計長)으로 실무작업을 총괄했고, 총사령부가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으로 이전하면서 총사령부 총무처장 대리로 일했다. 1943년 국무위원회 비서장에 임명되었으며, 1944년 국무위원에 선임돼 해방 때까지 활동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김학규, 오광심 부부. 오광심은 부군과 함께 조선혁명군에서 활동했다.]


백파(白波) 김학규(金學奎, 1900~1967)
광복군 3지대장… 국내진공작전 계획
평남 평원 출신으로, 만주로 망명,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1931년 조선혁명당에 입당한 뒤, 군사령부 참모로서 동포 청년들을 독립군으로 규합하고 일본군과 전투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한국광복진선 결성에 힘을 보탰고, 1938년 임시정부가 창사에 머물 무렵 군무부에 소속되었다.
광복군 창설 때 총사령부 참모에 임명되었고, 1941년 제3지대장에 취임했다.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을 근거지로 선전․초모․정보작전을 지휘하며 유격전을 수행했고, 미군과 합동작전으로 특수공작반(OSS)을 구성해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했다. 해방 직후 광복군 주상해 판사처장으로서 3만여 명의 교포를 무사히 귀국시켰으나, 귀국 뒤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다가 옥살이를 겪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광복군 시절 이범석]

철기(鐵驥) 이범석(李範奭, 1900~1972)
광복군 참모장 …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
서울 출신으로, 경기고보 재학 중이던 1915년 여운형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했다. 윈난강무학교(雲南講武學校)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신흥무관학교 및 북로군정서에서 교관으로 활동했고, 1920년 10월 청산리대첩에서 제2제대 지휘관으로 일본군을 격파했다. 만주사변 이후에는 중국군에 몸을 담고, 소장 계급에 올랐다.
광복군 제2지대장으로 미군과 합동작전을 지휘했으며, 광복군 참모장으로 활약했다. 해방 뒤에는 조선민족청년단(약칭 족청)을 조직해 우파 계열의 건국운동에 앞장섰다. 정부 수립 당시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에 임명되었으며, 이승만의 지시를 받아 자유당을 창당했으나 1953년 제명당했다. 저서에 회고록 <우둥불>이 있고, 196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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