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아주경제] 세월호 변호사보다 '가족'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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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기자
입력 2018-04-1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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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기에 다시 만난 그들 
황필규 변호사는 세월호 현장에서 법률지원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현장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황변호사는 더이상 스스로의 역할을 법률지원으로 규정하지 않고 가족이 되어 돌발행동이나 가족이 이야기하고 싶은 바를 
정리·전달하는 일을 하거나 은폐하거나 불법적인 일을 지적하고 시정할것을 요구하는 등 가족처럼 일을 하고 있었다.

박주민 의원은 국회 ·광화문 광장·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가족들과 함께 노숙을 했다.
가장힘들었던 건 국화라는 '철벽'에 계란을 던지는 느낌이었다. 당시 국민의 열망은 진상규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어떻게든 막으려고만 했다며 회상했다. 당시 특별법 협상 파크너는 자유한국당의 검찰출신 김재원 의원,경찰 출신 이완구 의원 등 법을 잘아는 이들이었다.
반면 피해자 가족들은 법을 알지도 법안 협상할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는 도와줘야한다고 생각했고 협상장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박종운 변호사 "세월호 참사당시에는 국와 언론이 우월적 지위에 있었다"면서
"반면 피해자 가족들은 아이가 죽었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건지도 모르고 어떻게 되는지도 몰랐다"고 그때 상황을 떠올렸다
"진상규명이 돼야 책임소재가 가려고 책임자들이 처벌받는게 취지였고 그래야만 피해자 가족들의 아픔이 나을것 같았다"
 

 

대한민국 공동체적 가치, 세월호 전·후로 크게 달라졌다
세월호 참사 4주기 맞아, 14~15일 양일간 세월호 선체가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궂은 날씨에도 단체로 추모를 온 시민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목포시 무안도 목포오거리문화센터에서는 '너를 담는 시간' 특별전으로 매년 열어오며 세월호 이후의 삶에대해서도 고민해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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