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車 '규제 샌드박스'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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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 기자
입력 2018-04-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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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대규 보험개발원 원장


자동차(自動車)를 한자로 풀이하면 '스스로 움직이는 수레'다. '스스로'는 말이나 소 같은 외부 동력이 없다는 의미다. 머지 않아 운전자가 없는 또 다른 의미의 '스스로' 움직이는 차가 나올 것이라 한다.

1~2년 전까지만 해도 언젠가는 그런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지난 1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18)를 둘러보니 조만간 그런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아니 이미 도래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지금의 자동차가 근대 사회에 미친 영향만큼 자율주행차가 미래 사회에 미칠 충격도 커 보인다. 사실 자동차는 본질적으로 '위험한 물건'이다. 엄청난 무게의 쇳덩어리가 인화물질을 가득 싣고 엄청난 속도로 우리 생활권을 질주한다. 약간의 조작 실수로도 생명과 재산을 빼앗을 수 있다. 그런데도 자동차가 소중한 가족을 태우도록, 소중한 집 주변을 주행하도록 허용한다. 자동차가 가져다 준 삶의 효용이 크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법과 제도가 뒷받침한다. 예컨대 근대 법체계는 운전에 능숙한 추상적 인간형을 모델로 한다. 그 정도 실력에 미치지 못하고 사고를 낸다면 과실이 있었다고 본다. 반면 스스로 법규를 충실히 지키며 타인도 그렇게 지키리라 믿고 운전을 하다가 타인의 법규 위반으로 사고를 당한 운전자는 면책된다. 발생한 손해를 민사적으로 배분할 각종 법적 장치가 개발됐고, 손해발생이라는 리스크가 의무보험을 통해 원만하게 분산된다. 이런 촘촘한 법적 장치를 통해 안심하고 '위험 사회(risk society)'를 살아가는 것이다.

자율주행차 시대에서 법과 제도가 어떻게 바뀔지 논의가 활발하다. 그런데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개정, 자동차 제작사의 제조물책임(PL) 인정 범위 등 최근의 논의는 아직 근대 자동차 시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 아닌가 싶다.

관점을 바꾸어 자율주행차만 다니는 도로가 이미 존재한다면 벌어질 일,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먼저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실시간으로 정확한 도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스마트 도로와 자율주행차가 결합된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가정해 보자. 자율주행차에 탑재된 각종 센서만으로는 안전하고 정확한 주행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스마트 도로와 자율주행차의 결합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자율주행차만 달리는 스마트 도로에서, 도로는 전파를 통해 차량의 운행 정보를 수집하고 차와 차는 개별 플랫폼으로서 자신의 목적지 정보를 교환한다. 최대 속도로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다면 신호등, 속도제한, 차선의 구분도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자율주행차와 스마트 도로, 도시의 공공 기반시설이 네트워크화된 스마트 시티에서는 형사상 과실책임의 문제나 민사상 손해의 배분에 있어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1차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법적 책임은 차량 보유자의 운행자책임도, 차량 제작사의 제조물책임도 아닌, 스마트 도로를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자율주행차만 운행할 수 있는 스마트 시티, 한발 더 나아가 자율주행차와 자율 드론만 다닐 수 있는 스마트 시티라는 규제 샌드박스를 운영해 보면 어떨까. 지금은 생각지도 못한 기술, 보안, 도로의 안전성 문제 등을 앞서 경험할 기회가 될 것이다.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그러한 경험을 통해 얻어진 규범과 운영 노하우, 이들이 모두 복합된 새로운 패러다임이 우리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동력과 경쟁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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