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진 '길 위의 에세이'] 이구아수 폭포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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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진 논설고문
입력 2018-04-0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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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쪽 낮은 산책로에서 바라본 이구아수폭포]

남미의 이구아수 폭포는 별칭이 많다.
* 세계 3대 폭포
- 나이아가라,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 세계 7대 자연경관
- 2011년 스위스의 뉴세븐원더스(New Seven Wonders) 재단이 주관하는
투표로 선정. 제주도도 포함돼 있다.
*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 여행잡지 ‛론리 플래닛 (Lonely Planet) ' 선정 10곳, 2015년 8월.
- 영국 BBC 방송 50곳 선정, 2015년 3월
*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 (아르헨티나 1984년, 브라질 1986년)

이구아수 폭포는
사람의 혼쭐을 앗아간다.
엄청난 물의 대향연 앞에 망연자실(茫然自失) 할 뿐이다.
가히 자연이 빚어낸 지상 최대의 쇼다.
수백 갈래의 크고 작은 물줄기가 한꺼번에 쏟아져내리며
감당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장대한 스케일에 말문이 막히고
현란한 아름다움에 숨이 멎는다.
수직으로 낙하하며 춤추는 물줄기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물보라,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로 나타나는 예쁜 무지개.
신령(神靈)스럽다.

"콰르릉~."
하얀 투신(投身)에 이끌려 폭포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속이 탁 트여 시원하면서도 왠지 두렵고
다리가 후들거리면서도 짜릿한 쾌감에 젖는다.

이구아수 폭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국경에 걸쳐 있다.
폭 2.7km, 총 길이 4km에 낙폭 60~85m.
공원 안내 책자엔 폭포 줄기 150~300개라고 적혀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초당 평균 1,500㎥, 우기엔 초당 8,500㎥까지 어마어마한 물이 쏟아져 내린다.

일행 중 60대 후반의 한 신사는
"세계 3대 폭포를 모두 다녀왔는데 이구아수가 단연 최고"라고 평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 엘리너가 이구아수폭포를 보곤
"불쌍한 나이아가라"라고 탄식했다는 일화도 있다.
30년전쯤 나이아가라 폭포를 두 차례 다녀와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당시 워낙 강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어서일까,
나이아가라는 남성적 매력이 일품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시 이구아수로 넘어오면
폭포는 말발굽 형태의 협곡 아래로 강물이 곤두박질치며 형성되는데
폭포의 80%는 아르헨티나 쪽에 있다.
아르헨티나에선 "폭포 관광은 역시 우리 쪽이 진수"라고 우기고,
브라질은 "전체를 조망하려면 맞은편에서 봐야"라고 맞선다.

이구아수는 과리니 족 언어로 '큰 물' 또는 '신성한 물'이란 뜻이란다.
과라니족들의 전설에 따르면
이구아수 강에는 음보이(M'Boy)라는 커다란 괴물 뱀이 살았다.
과라니족들은 이 뱀에게 1년에 한 차례씩 아름다운 처녀를 제물로 바쳤다.
부족장 이고바(Igoba)에겐 아름다운 딸 나이피(Naipi)가 있었는데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녀가 쳐다보면 강물이 멀 출 정도였다.
어느 한해 그녀가 음보이에게 제물로 바쳐지게 됐다.
그러나 그녀를 사랑하던 청년 전사 타로바(Taroba)가
축제 전날 밤 제사장이 술에 취해있는 틈을 타 그녀를 빼낸다.
그리고 함께 카누를 타고 강 하류로 도망쳤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괴물 음보이가 분노하여
땅속 깊이 들어가 몸을 뒤틀자 커단 웅덩이가 파지고 폭포가 생겼다.
나이피는 커단 바위로 변해 지금까지도 폭포 물줄기를 맞고 있고,
타로바는 야자나무로 변해 음보이가 사는 강가 동굴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구글어스 캡처. 강 중간 하얀 부분이 폭포. 오른쪽에서 흘러온 이구아수 강잉 폭포를 지나 좁아지며 18km 하류에 있는 파라니 강과 합류한다.]

[아르헨티나 쪽 투어 안내판. 중간 노란색 선이 낮은 산책로, 파란 선이 높은 산책로. 오른쪽 두 줄로 표시된 게 기찻길이며 기차를 타고 상단 역에서 내려 강위 나무다리를 따라 걸어가면 '악마의 목구멍' 바로 앞에 도착하다. 보트 투어는 강 하류서 출발한다.]

1월 25일 브라질 쪽 이구아수(포스두이구아수)에 숙소를 정한 뒤
하루는 아르헨티나 쪽을, 다음날은 브라질 쪽을 관광하고
27일 오후 리우데자네이루로 떠났다.

아르헨티나 쪽 투어는 밀림 사파리, 보트, 폭포 주변 산책,
기차 이동과 '악마의 목구멍' 순으로 이뤄진다.
밀림 속엔 아열대 식물군이 울창해 하늘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퓨마 원숭이를 비롯하여 많은 동물들이 서식한다는데
1시간 남짓 진행된 사파리 투어에선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다.

이어 진행된 보트 투어.
30~40명을 태운 보트가 협곡을 거슬러 5분여 달리자
갑자기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거대한 물줄기들이 나타난다.
오른쪽 폭포 군은 영화 '미션'에서 봤던 바로 그 현장이다.
예수회 신부들이 폭포 위쪽 과라니족 마을로 찾아가기 위해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바위 절벽을 아슬아슬 오르던 장면.
커단 고행의 보따리를 끌며 힘겹게 절벽을 기어오르던
배우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가 일품이었지.
엔니오 모리꼬네의 아름다운 오보에 선율 - '넬라 판타지아'가 울려 퍼질 것 같다.
바로 그 순간
보트가 폭포 밑으로 들어간다.
"끼약~" 소리와 함께 모두들 물세례를 뒤집어썼다.
미처 우비를 준비하지 못한 탓에 옷이 쫄딱 젖어버렸다.
그래도 짜릿하다.
모두들 얼굴 가득 즐거운 표정이다.
보트는 저만치 물러서 멈춰 선다.
1~2단으로 떨어지는 수십 개의 물줄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쾌하다. 아름답다.
몇몇이 "once again~"을 외치자
승무원들이 웃음으로 화답한다.
보트가 다시 폭포 물줄기 밑으로 들어간다.
거센 물 폭탄이 온몸을 때린다. 눈을 뜰 수 없다.
 

[보트를 타고 폭포 밑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낮은 산책로에서 바라본 폭포]

[폭포 바로 옆에서 바라본 거센 물줄기. 낮은 산책로에서.]

[높은 산책로에선 강물이 쏟아져내리는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이번엔 걸어서 폭포와 만난다.
낮은 산책로와 높은 산책로.
천천히 걸으며 여러 각도에서 폭포를 감상하는 맛이 색다르다.
수십 개의 폭포 군을 멀찍이서 바라보거나
어마어마한 수량의 물 폭탄을 코앞에서 지켜볼 수 있다.
높은 산책로는 폭포 위 강물을 볼 수 있는 곳에 마련됐다.
비교적 천천히 흘러온 강물이 절벽에 이르러
무엇을 붙잡을 새도 없이 밑으로 곤두박질치며 자지러진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포말 위로 예쁘게 걸쳐있는 쌍무지개.

산책로에선 너구리의 일종이며 코가 긴 '코아티' 떼를 비롯하여
큰 도마뱀과 희귀조들을 만났다.
일행 중엔 토우칸이란 큰부리 새를 만나 사진을 찍은 이도 있다.
 

 

[이구아수 공원엔 희귀 동식물이 많이 서식한다. 산책길서 만난 대형 도마뱀, 자라,악어, 이름모르는 새(위부터).]

점심 식사 후 기차를 타고 '악마의 목구멍'을 찾아 나섰다.
역에서부터 관망대까지는 강물 위로 놓인 나무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강물엔 팔뚝만 한 메기가 보이고, 자라 무리와도 만났다.
15분쯤 걸었을까,
드디어 '악마의 목구멍'이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굉음과 함께 튀어 오른 물방울이 관광객들을 덮친다.
"키햐~ 직인다~."
옆에서 경상도 사투리가 들린다.
한국 사람 한 무리가 관망대로 들어서며 탄성을 질러댄다.
요즘 남미 관광지는 한국인들로 넘쳐난다.
'악마의 목구멍' 앞에서 듣는 사투리 - 정겹다.

폭 150m, 낙차 깊이 80m.
강물이 ∩자형 협곡 가운데로 한꺼번에 떨어져내리니
그 기세가 엄청나다.
갈색을 띤 폭포 물줄기가 뽀얀 물보라를 일으켜 '아가리'속은 들여다볼 수 없다.
대신 커단 무지개가 알록달록 구릉 다리를 띠워놓았다.
초당 수만 톤의 물을 꿀꺽꿀꺽 삼켜댄다니 분명 악마의 아가리다.

영화 '미션'에 사람이 폭포로 떨어지는 장면이 두 차례 나온다.
시작 부분 예수교 신부가 원주민들에 의해 십자가에 묶인 채로
폭포로 떨어져 순교하는 장면과,
신부-원주민 카누가 쫓기며 개척 침략자들의 카누를 유인하여
함께 폭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폭포의 위용과 폭포 속으로 사라진 장엄한 최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는 감동의 명장면이다.
촬영 장소가 정확히 어느 지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이곳 '악마의 목구멍'이지 싶다.
무지개 사이로 다시금 넬라 판타지아가 들릴 듯할 때
갑자기 폭포 뒤쪽 하늘이 시커멓게 돌변한다.
서둘러 자리를 떴다.
기차역에 도착할 무렵 세찬 소나기가 퍼붓는다.
조금만 늦었어도 소나기 세례를 받을뻔 했다.
어차피 폭포수 세례를 받긴 했지만. . .

['악마의 목구멍'으로 향하는 나무다리. 폭포 위쪽 강물에 설치됐다.]

[넓은 강물이 ∩자형 협곡으로 모여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엄청난 규모의 대형 폭포로 변신하다.]

[물보라가 뽀얗게 피어올라 폭포 밑을 볼 수 없게 가린다. 예쁜 무지개가 구릉 다리를 놓았다.]

[폭포 뒤쪽으로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들어 주위기 컴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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