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압박에 외환당국 손발 묶여...1060원대도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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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애신 기자
입력 2018-04-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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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달러 환율 세자릿수 공포

원·달러 환율이 3년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경신한 3일 오후 서울 을지로 KEB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제공]

원·달러 환율이 연일 저점을 경신하고 있다. 환율이 단기간에 급락하자 수출기업들은 1000원대마저 붕괴될까 우려하고 있다.    

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2.4원 내린 1054.2원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3년 5개월 만에 최저로 장을 마감한 데 이어 저점이 더 낮아졌다. 지난달 28일 1070.80원이었던 환율은 4거래일 만에 16.6원이나 하락하며 1050원대까지 고꾸라졌다. 

이처럼 환율이 떨어진 것은 남북, 북·중, 북·미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북한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큰 폭으로 완화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신용도를 평가할 때 우려되는 사항은 남북 관계와 가계부채가 두 가지다. 이 중 하나인 남북관계 불안감이 해소되며 원화 강세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외환당국이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경계감이 줄어들면서 하단이 뚫린 모습이다. 시장에선 당국이 미국의 계략에 휘말려 사실상 손발이 묶인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이달 중순 환율조작국 지정을 앞두고 우리 정부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 환율보고서를 통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 200억 달러 초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3% 초과 △GDP 대비 순매수 비중 2%를 초과하는 환율시장 한 방향 개입 여부 중 세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기준 우리나라는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두 가지가 해당돼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돼 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 정부의 개발자금 지원과 공공입찰에서 배제되고 국제통화기금(IMF)의 감시를 받게 된다. 환율 보고서가 이달 중 발간되는 만큼 당국으로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과정에서 환율에 대한 이면합의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무역대표부(USTR) 홈페이지에 "경쟁적인 통화 저평가와 환율 조작 등을 금지하는 강한 규제들을 담은 협상이 최종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내용이 올라와 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우리 정부가 환율 주권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극단적인 비판까지 나왔다. 이에 정부는 "환율과 한·미 FTA는 별개 문제"라고 반박했지만 원·달러 환율은 고꾸라졌다. 그동안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1060원대마저 무너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도 시장 불안감을 높였다. 지난 2일 취임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하는 게 원칙"이라는 발언이 나온 후 환율은 낙폭을 확대했다. 

선물사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대내외 변수로 환율이 낙폭을 확대할 때 당국이 미세개입을 했는데 하단을 받치는 역할에 제동이 걸리면서 환율이 1050원대까지 떨어졌다"며 "시장에서도 얼마나 더 하락할지 테스트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환율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간 견고하다고 여겨졌던 1065~1085원 레인지가 깨지면서 2분기 중에 1045원대까지 환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 경제가 수출을 중심으로 경기 회복세를 이어가고 금리 인상 압력 등으로 인해 원화가 강세 흐름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 적자 확대 역시 달러 약세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일부 시장참가자들은 1000원대가 무너지는 게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까지 나온다. 수출 기업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같은 양을 팔더라도 환율이 떨어진 만큼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각 기업의 환율 담당자들은 원·달러 환율 때문에 피가 마른다"며 "환율이 세 자릿수로 떨어질까 걱정돼 잠도 안 온다"고 전했다.
 
다만, 무역전쟁 관련 이슈는 앞으로 악화와 개선을 반복하면서 환율의 급격한 하락을 막을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급격한 상승도 어렵다는 게 외환시장 관계자들의 예상이다. 미국의 국채금리 상승이 생각보다 빠르지 않은 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자산시장에 충격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금리를 인상한다는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역분쟁 위기가 최고조일 때도 1080원대 중반 저항에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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