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최저 폐지ㆍ정시 확대 동시추진혼란,‘획일적입시=절대악’편견 근본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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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효 기자
입력 2018-04-03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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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획일적 입시’였을 때 교육기회 평등 가장 잘 실현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주최로 3월 27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열린 '수능 최저학력기준 폐지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요구사항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부가 대입 수시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최저 학력기준 폐지와 수능 등급제 절대평가 확대 같은 수능 무력화 정책과 정시 확대라는 수능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모순된 정책을 동시에 추진해 교육현장에서 대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획일적인 입시제도는 구시대ㆍ반교육ㆍ비민주적인 절대악’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정부와 우리 사회의 잘못된 편견부터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진보진영 등은 현재의 수능이나 1980년대의 학력고사와 같은 획일적인 국가표준 입시 제도를 “시대에 맞지 않는 구시대적인 제도”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1970년대까지 한국의 대입 전형 제도는 지금보다 복잡했고 대학교들은 신입생 선발에 있어 지금보다 더한 고도의 자율권을 누렸다.

▲1970년대까지 대입,지금보다 훨씬 대학들에 자율권 부여하고 다양ㆍ복잡

지난 1950년대까지만 해도 대입 전형 제도는 대학별 단독 시험제였다. 이후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도 주요 대입 전형 요소는 대학별로 실시되는 본고사였다. 즉 해방 후 1970년대까지 대학교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시험 과목을 정하고 시험 문제도 출제했고 수험생들은 지원하는 대학교에 맞게 공부해야 했다.

1980년 7월 30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를 통해 ▲대입 본고사 폐지▲과외 전면 금지 ▲학력고사 실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7ㆍ30교육개혁조치를 단행했다. 이 조치로 1980년대와 1993학년도 대학 입시까지는 내신 성적이 일부 반영되기는 했지만 사실상 학력고사 성적순으로만 대학 입학 여부가 결정되는 단일 입시체제였다.

해방 후 한국의 대입 전형 제도가 획일적이었던 시기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1980-1990년대인 20년 정도밖에 안 된다. 이 시기가 유일하게 국가 표준 입시 제도인 학력고사와 수능 중심의 획일적인 단일 입시 체제였던 것. 최소한 대입 전형 제도 변천사를 보면 ‘수능이나 학력고사와 같은 획일적인 입시 제도는 구시대적이고 다양하고 자율적인 입시 제도가 창의를 중시하는 현대에 맞는 입시 제도’라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의 대입 전형 제도가 획일적이었던 시기가 최소한 대학교 입학시험에선 교육기회의 평등이 실질적으로 가장 잘 실현된 시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

1984년 1월 4일자 경향신문을 보면 당시 학력고사 340점 만점에 323점을 얻은 한 여고생의 사연이 보도됐다. 이 여고생은 중학교 때 부모가 모두 사망해 고아가 됐고 여동생과 자취를 해 3년 동안 장학금을 받고 수석 졸업했다.

이처럼 당시 신문기사를 검색해 보면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는 어릴 적 부모가 사망한 고아나 빈민층 자녀가 학력고사에서 고득점을 해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많이 볼 수 있다.

한국의 대입 전형 제도는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지금처럼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공정성이 파괴돼 갔다.

1987년 6월 항쟁과 6ㆍ29선언 이후 사회 각 분야에서 민주화가 진전됐고 1990년대 문민정부가 출범했다. 수십년 동안 한국 사회를 폭압 통치한 군사독재 정권이 사라지자 ‘자율화ㆍ다양화’는 ‘민주화’와 동의어로 인식됐다.

이런 사회 분위기 때문에 교육 분야에선 대학교 등록금 자율화가 이뤄져 대학교 등록금은 폭등했고 대입 전형에선 학력고사나 수능 같은 획일적인 국가표준 입시 제도는 구시대ㆍ비민주적인 제도이자 입시 지옥 등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1990년대부터 역대 정부들은 이런 기조의 교육정책을 추진했다.

김대중ㆍ노무현 진보정권들은 창의를 중시하는 교육을 하고 입시 지옥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대입에서 수능 영향력을 약화시켜왔다. 이명박ㆍ박근혜 보수 정권들은 이런 정책기조를 더욱 강화해 대입 전형에서 입학사정관제와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의 비중을 대폭 확대했다.

▲대입 복잡ㆍ다양해지면서 공정성 파괴,교육 양극화 심화

그 결과 대입 전형에서 공정성은 파괴돼 정유라 입시 부정 등이 발생했고 학생들의 입시 부담은 더욱 가중됐다. 교육 양극화는 더욱 확대됐다.

‘보수 정권의 적폐 청산’을 주요 국정목표로 정한 문재인 정부 역시 교육정책에선 기존의 정책기조를 극단화시켜 지난 해 수능을 무력화하는 수능 전 과목 등급제 절대평가를 추진하다 극심한 반발 여론으로 유예했다.

최근엔 대입 전형에서 수능 비중을 더욱 줄이는 수시에서 수능 최저기준 폐지를 추진해 비난 여론이 폭주했다.

뒤 늦게 문재인 정부는 ‘대입에서 수시 축소ㆍ폐지와 수능 위주 정시 확대’라는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서울의 주요 대학교들에 대입 정시 선발 인원을 늘려 줄 것을 요구했다.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이종배 대표는 2일 ‘아주경제’와의 통화에서 “교육부는 임기응변식 정시 확대 쇼를 중단하고 공정한 정시를 확대하고 깜깜이·복불복·금수저 전형인 수시를 축소해야 한다”며 “수능 최저기준을 유지해 수시전형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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