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 주택가 밑에서 청동기, 조선시대 등 유적 대거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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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이채열 기자
입력 2018-04-0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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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지석묘 전경과 출토 유물.[사진=김해시 제공]


경남 김해시 김해읍성 북문지 인근 대성동과 동상동 일원 구도심 주택가 지하에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여러 기와 조선시대 읍성의 치(雉) 등 유적이 대거 발굴됐다. 김해읍성의 성벽에 대한 조사는 간혹 이뤄지고 있지만, 치성의 기단석이 발굴된 예는 이번이 처음이다.

3일 김해시에 따르면 시는 두 유적 모두 도심지 내 기존 노후 주택을 철거하고 새로 단독주택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발굴이 이루어졌다.

(재)강산문화연구원에서는 지난달 12일부터 묘역이 있는 고인돌 6기, 돌널무덤 1기, 김해읍성의 해자 일부 등을 발굴했다. 고인돌 내부에서는 간돌칼과 간화살촉, 붉은 간토기(홍도·紅陶) 등이 출토됐다.

대성동 고인돌에서 남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는 서상동 고인돌(경상남도 도기념물 제4호)이 위치하고 있다. 고지도인 김해부내지도에도 고인돌 6기가 그려져 있는 점에서 이 일대에 다수의 고인돌이 존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관가야의 이전사회인 구간사회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치(雉)는 성곽 시설 중 하나로, 성곽 일부분을 네모나게 돌출시켜 적들을 막는 시설물이다. 김해읍성의 치성은 김해부내지도 등 고지도에 그려져 있어 그 존재가 알려져 있지만, 현재 남아 있지 않다. 1910년대부터 일제의 읍성 철거정책에 따라 김해읍성 역시 이때 파괴됐다.

남아 있는 치성의 기단석은 2~4단이고, 평면 형태는 정사각형이다. 기단석은 허튼층쌓기로 쌓았으며 앞으로 튀어나온 두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했다. 비록 기단 위 성벽 부분은 파괴돼 남아 있지 않지만, 기단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김해읍성의 연구 및 복원·정비사업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 관계자는 "좁은 면적에 비해 이와 같은 양질의 매장문화재들이 조사된 점에서 아직도 시내 곳곳의 지하에 가야왕도 김해의 이름에 어울리는 문화재가 많이 묻혀 있을 것으로 보고 유적 보존에 만전을 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상동 단독주택부지에 대한 조사는 (재)해동문화재연구원이 국비 지원을 받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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