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칼럼] 4차산업혁명시대와 기다림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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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조교수
입력 2018-03-2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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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조교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청년들의 모험적 창업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의지를 피력했다. 혁신 성장을 이루기 위해 우리 청년들의 창업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정부의 지원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라 여겨진다. 미국의 경우 지난 10년간 4%의 벤처·중소기업이 전체 60%의 일자리를 공급했다고 한다. 대다수가 미국이 정부의 정책적 개입없이 민간에 의해 돌아간다고 생각하지만, 미국에도 정부차원의 벤처 및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있다. 다만, 창업자들에게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스스로 창업하고, 헤쳐나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주력한다.

미국이 장기불황 속에서도 세계 경제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창업가들의 모험적인 창업 때문이다. 포브스가 선정한 2017년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브랜드’ 순위에서 애플이 부동의 1위였던 코카콜라를 밀어냈고,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페이스북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촉진된 3차 산업혁명 이후 미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핵심 기업들이다.

과거, 경제가 발전하면 제품 생산을 늘리기 위해선 신규 설비와 노동력이 추가되어야 했다. 하지만, 공장의 자동화 및 기술 발전 등에 따라 생산은 확대되어도 일자리는 늘지 않거나 오히려 감소하는 현상 즉, ‘고용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향후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이러 현상들이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화두를 던진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대선을 거치며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이제 우리 주변에서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AI)과 같은 4차 산업혁명 관련 용어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게 됐다. 이 기술들은 초기 기술적 논의에서 벗어나 어느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는 느낌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4차 산업혁명은 자연스럽게 창업과 연계되고 있다.

이제 우리 경제에서도 청년창업을 통한 양질의 신규 일자리 창출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개인적으로 지난 정부에서 우리 미래를 위해 잘했다 생각하는 부분은 청년창업과 관련된 정책으로, 창업의 중요성을 알리고, 창업생태계의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 창업보육센터 등 창업 공간을 제공하거나 컨설팅과 투자 지원을 하는 기관이 전국적으로 수백개가 늘었다. 또 디캠프,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마루180, 구글캠퍼스 운영을 비롯해 민간기관과 대기업들의 스타트업 지원·투자도 활발해졌다. 결과적으로 지난해 국내 벤처투자를 위한 펀드 조성액은 사상 처음으로 4조원을 넘었고, 벤처투자액도 2조4000억원에 도달했다. 올해 ‘제2의 벤처’ 붐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것도 이런 변화된 인식에서 기인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창업정책이 과거 창조경제 시절의 잘못된 방식을 답습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과거 창업 부문의 양적인 성장을 위한 정책적 금융 지원과 성과에 대한 조급함은 모험적 창업에 대한 기회를 빼앗았다. 다양한 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수상한 팀들이 정작 창업을 하지 못하거나, 그나마 창업한 기업들도 단기적 성과에 집착해 시장을 파악하고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2017년 우리 창업기업들의 3년간 생존률은 3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

이처럼 당장의 성과에 대한 조급함은 더 큰 미래를 보지 못하고 우매한 결정을 내리게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아쉬운 이야기이지만, 한국은 MP3플레이어 종주국이었다. 2000년 벤처 열풍과 함께 모험적 창업기업의 원조였던 엠피맨은 세계 최초로 MP3플레이어 개발의 원천기술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의 성과에 대한 조급함으로 인해 불과 3년도 견디지 못하고 부도처리가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2000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 컴퓨터의 정식 최고경영자(CEO)가 된 뒤 그의 첫번째 사업이 MP3플레이어 '아이팟(iPod)'의 출시였다. 당시 애플 이사회는 컴퓨터 회사였던 애플이 그것도 경쟁 포화상태였던 MP3플레이어 시장에 진입하는데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이사회는 잡스가 컴퓨터를 버리고 단순한 제품 판매만을 위해 아이팟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믿었다. 결과적으로 디지털 음악의 생태계를 바꾼 소프트웨어 아이튠스(iTunes)와 연결하면서 그 믿음은 현실이 됐다. 아이팟은 전화기능이 포함된 아이폰으로 발전했고, 아이폰의 앱스토어는 아이튠스를 통해 기존 통신시장의 애플리케이션(앱)의 등록 및 결제, 정산의 방법을 한꺼번에 바꿨다.

우리는 잡스가 출시한 혁신 제품들이 전자제품 소비 침체기에 개발됐다는 사실과 더불어 시장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이 기술창업을 통해 완성될 것이라 주장하며 잘 갖춰진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에 정부와 민간이 함께 노력하는 창업 생태계의 조성을 근거로 제시한다. 또 기술과 경험을 가진 교수 및 석·박사급 지식 인력이 창업에 나서 4차 산업혁명 시대 일자리 창출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모험적 창업은 단지 기술에서 시작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 경쟁에서 미래 운명을 좌우할 최적의 전략적 포지션을 찾는 거시적 안목을 필요로 한다. 이제 정부의 창업 정책은 성과 지상주의의 단기적 옥석 가리기에서 벗어나 모험적 창업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초점을 맞추고, 지속적인 기업경영 유지를 위한 지원과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4차산업혁명시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양적평가와 성과보다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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