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아리랑 유랑단 문현우 대표 " 아리랑의 고개처럼 인생에 있어서 귀찮음이라는 고개를 하나하나 넘어라"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김호이 기자
입력 2018-03-21 18:04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호이의 사람들>의 발로 뛰는 CEO 김호이입니다.
여러분에게 아리랑은 무엇인가요?
이번 인터뷰는 아리랑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는 아리랑유랑단의 문현우 대표의 인터뷰인데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아리랑이란 걸 다시한번 되새겨 보는 건 어떨까요?
아리랑유랑단 문현우 대표의 이야기가 이제 시작됩니다!

 

[사진= 문현우 대표 제공 ]



Q.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아리랑’을 세계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A. 제게는 여러 의미의 ‘아리랑’이 있어요.
제가 어린 시절 재외동포 생활할 때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서 재외동포들과 함께 불렀던 그때의 ‘아리랑’ 그리고 집이 중학교 1학년 때 어려워지고 부모님이 이혼하시면서 안양 고시원방에 살았던 힘들었던 때, 붉은악마를 가입하면서 형들과 함께 불렀던 그때의 ‘아리랑’.
그런데, 중국이 동북공정을 진행하며 우리의 한과 영혼이 서려있는 ‘아리랑’을 중국의 민요라고 유네스코에 지정 신청을 했어요.
이렇듯 제 좋은 기억들을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인해 빼앗아가려는 시도를 하니까 ‘내가 앞장서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리랑을 전 세계에 알려보자’ 라고 결심한 것이 계기가 되었죠.


Q. 처음에 아리랑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우려의 목소리나 반대는 없었나요?

A.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저는 국악을 전공한 사람도 아닐 뿐더러 국악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었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의아해했죠.
친구들은 “너가 언제부터 아리랑이었냐” 등등 이런저런 우려 섞인 말들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 우려에도 저는 ‘그냥 해보기라도 하자’ 해서 시작을 했고 이 시작이 지금의 ‘아리랑 유랑단’으로서 자리 잡을 수 있었죠. 이런 과정과 결과를 거치며, 결국에는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라는 사실을 느꼈어요.


Q. 아리랑 유랑단의 행선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있었다면 어디이고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많은 나라들이 있지만 저는 남미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남미는 지금 한국 땅에서부터 드릴을 뚫고 내려가면 나오는, ‘지구 반대편’이잖아요
그런 나라의 친구들이 정말 우리 한국의 전통을 사랑해주고,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보여줄 때 제일 신기했어요.
또 이런 일도 있었는데요,
최근에 칠레를 다녀왔는데, 칠레의 여중생 여고생들이 우리를 에워싸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들은 ‘BTS’ (방탄소년단)의 팬인데, BTS가 칠레에 와서 제일 큰 경기장을 단 10분 만에 매진시켰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 우리의 한류 그리고 K-POP이 지구 반대편인 남미 땅에서도 인기가 있는 것이 신기했어요. 그런 K-pop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나아가서 결국에는 그 친구들이 우리 전통에 관심을 더 갖게 되는 계기가 되거든요.
그 결과, 최근에 칠레에서 저희가 공연을 했을 때도 우리 공연을 보기 위해서 수백 명이 모였어요.
이렇듯, 여러 경험들을 생각해보았을 때, 남미에서 특별한 경험을 참 많이 쌓았던 것 같아요.
 

[사진= 문현우 대표 제공]




Q. ‘카페베네’를 찾아가 옷에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거절을 하거나, 곱지 않은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은 없었나요?

A. 거절은 한 번도 안 당했어요.
저는 같은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해외봉사단에 지원하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했었던 것이고, 그들도 내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들 거절하지 않고 흔쾌히 제 티셔츠에다가 응원 메시지를 써주셨어요.

하지만 이상한 눈으로는 많이들 봤어요.
사실 이런 사람들 많지 않잖아요.
어떤 회사나 면접장을 갔을 때 갑자기 저와 같은 사람이 들이닥치면 대부분 누구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겠죠.


Q. 후원도 받고 계속 ‘카페베네’와 인연을 깊게 맺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다른 카페들과의 후원에 대한 생각은 없었나요?

A. 그 당시에 제가 카페베네에서 하는 해외봉사단을 제일 먼저 알아서 그 봉사단에 지원하는 과정을 밟았고, 합격한 뒤 인도네시아에 가서 해외봉사를 하고난 후에 제가 후원을 요청한 거예요.
그 전에 다른 카페나 회사 프로그램에 지원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후원을 받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알고 있던, 그리고 저와 연이 있던 기업들에게 요청을 해야 했었죠.
그 외에는, 우리가 따뜻한 옷도 입고 그래야 되니까 등산브랜드한테 옷을 협찬 받았던 적은 있어요.


Q. 문현우 대표가 생각하는 아리랑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A. 우선 아리랑은 ‘한국 사람이라면 꼭 갖고 있는 노래’, ‘마음속에 깃든 노래’일 것 같아요.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다 표현할 수 있는 노래예요,
예를 들면, 정말 좋을 때는 ‘진도 아리랑’과 ‘밀양 아리랑’을 부르며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아리 아리랑“ 이렇게 부르고, 혹여 나라에 우환이 있거나 힘들 때는 아리랑을 부르면서 눈물도 훔치기도 하면서 말이에요.
앞으로 우리가 정말 전쟁이 나거나 어떤 안 좋은 상황이 있을 때도 우리는 분명 아리랑을 다 함께 부를 것이고,
아리랑으로 다시 성장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그런 우리나라가 될 것 같아요.


Q. ‘아리랑 유랑단’을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아리랑 유랑단’을 하면서 저는 일단 ‘어른’이 된 것 같아요.
여러분이 스무 살이 되어도 사실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청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고, 저는 언제까지나 청년이고 싶어서 청년이라고 얘기를 하고 다녀요.
그런데, 어떤 때보면 갑자기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일들을 또 넘기려고 아리랑 고개를 또 넘어가야 되잖아요.
그 넘는 과정 중에서 “아 내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 이런 것을 느끼게 되죠.
저는 아리랑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계속 어른의 고개를 넘고 있는 것 같아요.
 

[사진= 문현우 대표 제공 ]



Q. 지금 이 순간 행복하신가요?

A. 제가 최근에 어떤 대화를 나누다가 “너는 과거에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니?”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대부분은 “나는 스무 살 때” “고등학생 때” 이런 옛날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얘기를 하는데, 놀랍게도 저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때가 없는 거예요.
지금이 좋고, 지금이 더 행복하고.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너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구나”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때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과거에 어떤 영감과 회상에 큰 의미를 갖기보다는, ‘지금’을 더 자랑하고 싶고,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히어 앤 나우 (here and now)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렇듯, ‘지금 여기에 행복이 있다’는 말을 제일 좋아해요.


Q. 지금 대표님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계신데, 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대학’ 그리고 ‘취업’ 등으로 인해 모든 걸 미루고 있어요.
학생들에게 꿈을 물으면 모두들 꿈이 없다고 하고, 왜 꿈이 없냐고 물으면 “좋은 대학가서 찾아야지” 그리고 대학가면 “취업해서 찾아야지” 취업하면 “결혼해서 찾아야지”라며 계속 미루고 있는 현실인데요,
이런 청년들을 보면 어떠한 생각이 드시나요?

A.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먼저 첫 번째.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고민하지 않아서’예요.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걸 할 때 행복하고,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해요.
자기만의 시간을 갖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든 그런 자리를 만들어서, 계속 자신한테 질문하고 묻고 그걸 고민한 결과가 나와야 되는데, 대다수가 삶에 너무나 지쳐있고, 바쁘고, 시간 때울 수 있는 건 세상에 너무 많고 그러면서 나를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니까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못 찾아요.
그러다 보니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가는 거죠.
우리는 또 어떤 시기가 왔을 때 똑같은 고민들을 하잖아요.
여러분들이 고3이 되었을 때 ‘대학’을 고민하고, 대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는 ‘취업’을 고민하고.
그런데 그때마다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이 하던 대로 흘러가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판을 깔지 않아서’예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면, 내가 어떤 판을 까는지 알거든요.
호이기자님처럼, 어떤 사람을 만나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게 좋으면, ‘기자’라는 영역에 판을 깔 수 있잖아요.
저도 아리랑을 선택해서 세계일주도 해보고, 그 결과 국내에 전통 전파가 필요하다는 걸 느껴서 아리랑스쿨을 만들었고, 지금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대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살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미루고 있는 사람들은 ‘이 두 가지가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고민하시고, 고민한 흔적 끝에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한 뒤, 판을 깔아봐라’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게 동아리든, 창업이든, 어떤 책이든, 블로그든 무엇이든 좋으니까 본인이 주도적인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을 만들어보셔야 해요.


Q. 자신에게 ‘아리랑’이란 무엇인가요?

A. 예전의 저는 ‘김치’라고 답했어요.
김치는 ‘썩지 않고 발효된다.’는 말처럼, 이 순간순간 아리랑 고개를 넘으면서 저는 썩지 않고, 발효되고 익어서 끝끝내 맛깔 나는 김치로 사회에 나간다고 얘기를 했었죠.
요즘에는 아리랑을, 앞서 말했던 것처럼 ‘희로애락’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정말 필요할 때 나에게 힘이 되고, 나를 힐링해주는 좋은 역할을 해주니까요.


Q, 전공이 국악도 아니고 처음에 팀원들을 모을 때 의심도 받고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그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A. 우선 충분한 대화가 필요해요
제가 순간순간 임기응변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요
그런 능력이 대부분 ‘대화’에서 와요.
모르는 분야를 친구한테 물어보고, 그들이 뜀틀을 뛰어 다닐 때 느꼈던 것들을 듣다보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론적인 공부에 의한 도움보다, 그 친구들과 밤마다 얘기 나누고, 궁금한 것도 쑥스러워 하지 않고 툭툭 물어보면서 위기의 순간들을 대화로 풀어냈던 것 같아요.



Q, 사진을 찍을 때 누워서 찍는 자신만의 포즈를 가지고 계신데 그런 공식 포즈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남들과는 다른 포즈로 살고 싶었거든요.
‘걸어서 세계 속으로’가 아니라, 정말 ‘누워서 세계 속으로’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 자세로 찍으면서, 나중에 “야 나 여기 다녀왔다, 부럽지?”가 아니라 “내가 여기 누웠는데, 누가 내 옆에 눕더라.”라며 같이 사진도 찍고, 재미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요.
이러한 이유로 그런 포즈를 정하게 되었는데, 누워서 찍으면서 세 가지의 알파벳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첫 번째 S는 자존감(self-esteem), 나만의 포즈로 살아가자.
두 번째 S는 스토리(story), 누워서 찍으니까 얼마나 재미난 일들이 많이 있겠어요.
같이 누워서 찍는 사람도 있었고, 제 옆에 캥거루가 누워있기도 하고, 더러운 바닥을 마다하지 않고 누움으로써 생기는 추억거리들.
마지막 S는 느리게(slow) 였어요.
항상 우리는 여행을 가면 나폴레옹처럼 ‘정복’하듯이 여행하잖아요.
누운 채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너무나도 빠른 발걸음을 보면서, 어디에 치여서 학교에서의 1교시 2교시를 때우는 느낌이 아니라, 느리게, 느리게 제 스케줄 표 대로 여행을 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되었죠.
 

[사진= 김호이 기자 ]




Q, 아리랑을 만나기 전에는 어떠한 사람이었고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무엇이었나요?

A. 아리랑을 만나기 전에는, 굉장히 일반적이었고, 놀기 좋아하는, 속된 말로는 깝치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던 것 같아요.
약간 ‘관종’이라고 해야 될까? 그런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약간의 ‘관종’ 끼가 ‘가치 있는 일’을 만나니까 ‘더 가치 있는 관종’이 되었죠.
제게 터닝포닝트는 군대였던 것 같아요
군대에서의 2년이라는 시기가 힘들고 지치고 인간관계에서도 어려웠지만, 그 과정이 있었기에 저를 돌아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 모든 남성분들!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국가를 위해서 군대를 가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그 ‘성찰의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내기보다는, 나를 더 돌아보고, 나중에 한 여자의 남편이 될, 한 아이의 아빠가 될, ‘강인한 남자’가 되기 위해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막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끌어갈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앞으로, 인생의 고개를 많이 넘어야 되잖아요.
그 고개를 넘을 때마다, ‘귀찮음’이라는 이 세 글자가 앞으로도 우리를 막아 세울 거예요.
그러나 그 ‘귀찮다’를 지우고 내가 넘어야 할 고개를 하나 넘으면, 더 큰 고개를 넘을 수 있고, 그 큰 고개를 넘으면, 언젠간은 에베레스트 같은 큰 산도 넘을 수 있는 사람이 분명히 되니까, 여러분들만의 길을 또박또박 걸어갈 수 있기를 믿으면서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웃음)


문현우 대표의 인터뷰를 보면서 어떠한 느낌이 드셨나요?
아리랑을 알리며 문현우 대표만의 누워서 사진을 찍으며 사람이 눕는 것은 물론 캥거루가 눕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이러면서 문현우 대표만의 특별한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는데요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특별한 스토리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사진= 김호이 기자 ]



-김호이의 사람들-
인터뷰: 김호이/ 조유정 
기사작성/수정: 김호이/ 김해온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김호이의-사람들-157157401429719/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