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가상현실 소설⑨]남자현코드(namjahyun 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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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T&P 대표
입력 2018-03-2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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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의 한 장면.]

# 혜화동

“공서, 당신을 이렇게 오랫동안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운명에게 고맙기 그지없어요.”
“유란이 그렇게 말하니 나도 기쁩니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유란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공서와는 언제 다시 만났나요?”

“독립투쟁을 좀 더 무섭게 하자는 논의가 내부에서 나오고 있을 때였습니다. 1926년 당신과 나는 무기를 구해 조선으로 잠입했지요. 사이토 조선총독을 저격하여 식민정책 자체를 뒤흔들어보자는 전략이었습니다. 총독을 노린 저격 작전은 그 전해에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다만 내가 갈 때 만주의 투쟁가들이 상당히 기대를 지녔던 대목은, 내가 여성이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이것은 일제의 허를 찌르는 전략이 될 수도 있거든요. 내가 선발되어 갈 때 공서도 동행했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나의 결행을 잘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공서는 내게 말했습니다. ‘이번의 조선 여행이, 우리 생의 마지막 길이 될 가능성이 크니, 기분 좋게 다니러갑시다.’ 그러면서 껄껄 웃었지요. 나도 살아 돌아오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혜화동에서 기회를 엿볼 때, 문제가 생겼죠?”

“예. 그것 참 공교로운 일이었습니다. 요즘처럼 정보 유통이 빠른 때라면 그런 우행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을. 그때 그 스물 아홉 살의 송학선이라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순종황제 조문행렬이 이어지던 4월 28일 창덕궁의 서남문인 금호문에서 세 명이 타고오는 무개차를 습격했지요. 이때 우리는 혜화동 28번지 고석태의 집에서 총기를 확인하며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송학선 의거가 실패로 돌아간 뒤 일대의 경비가 삼엄해졌고, 불심검문과 가택수색이 잇따랐습니다. 5월 중순까지 그 집 널빤지로 된 지하실에서 기거하면서 꼼짝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냥 만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여기서 그냥 붙잡히는 것도 억울하고...그래서 ‘누구라도 한 명 죽이고 가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경계가 삼엄하던 5월21일, 우리는 인시(仁寺) 마을을 지나던 경성부회 의원 하나를 습격해 처단했습니다. 내가 그에게 말을 걸었고, 맞은 편에서 오는 행인처럼 가장한 공서가 칼을 던져 그를 쓰러뜨렸습니다. 이날 밤 우리는 경성을 떴습니다. ”

# 암살

“만주의 일제전권대사 부토 노부유시 암살계획은 유란의 마지막 미션이었습니다.”

“일제의 대륙지배는 점차 노골적이 되고, 조선의 독립 가망은 자꾸만 멀어져가고 있었지요. 환갑을 넘긴 이 할머니독립군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조직의 활동을 하기에는 이미 버거워졌습니다. 이 몸이 부토를 죽일 수 있다면, 이 먼 만주 땅으로 건너와 십여년을 활약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토는 식민 침탈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일본의 경계는 물론 엄중했지만, 할머니라는 점을 잘 활용하기만 하면, 거사가 성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내 얼굴이 하얼빈 일대에서 상당히 알려져 있는 점이었습니다. 무기 접선 날짜를 받은 뒤 나는 변장에 공을 많이 들였지요. 칼끝으로 곳곳에 흉터를 내서 동지들조차도 알아볼 수 없을만큼 괴이한 얼굴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공서는 이 계획을 말렸습니다. 거사를 진행하기에는 조선인 배신자들이 너무 많아 밀고의 우려가 크고, 또 여성 혼자서 단독으로 일을 치르기엔 전권대사 주변 경호원들이 너무 많다는 점을 들었지요. 그때 나는 그렇기 때문에, 나같은 노파 하나가 감히 그런 일을 꾸미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거라고 했지요. 그는 내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때를 기다리자고 했습니다. 나는, 우리가 기다릴 수 있는 ‘때’는 갈수록 사라져가고, 지금이 그래도 뭔가를 해볼 수 있는 때라고 반론을 했지요. 공서와 내가 이토록 서로를 반박하며 논쟁했던 때는 그때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나의 기세에 공서도 뜻을 접고, 무기 지원을 돕기로 하였습니다.”

“어디서 문제가 생긴 겁니까.”

“중국인 무기 중개상에게 돈을 건네주고 밀고를 부탁한 조선인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의열단원으로 행세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는데 귀신이었던 밀정 이종형이 끼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린 대머리인 그를 독(禿)종형이라 불렀습니다. 1930년 3.1운동으로 오랫동안 복역하다가 풀려났다면서 만주로 온 사람이었는데, 말과 행동이 달라 만주에서도 경계할 인물로 손꼽혔지요. 그가 나의 계획을 알게된 뒤 일제와 결탁하여 사전에 망을 쳐놓고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만.”

# 단식

“하얼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처음엔 순응하는 듯 하다가 나중에 단식투쟁을 시작했는데...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사실 나는 그때 최후의 거사를 실행도 못해보고 좌절한 것에 대해 몹시 화가 나 있었습니다. 이 일을 밀고한 자에 대한 분노도 차올랐고요. 한동안 나는 이곳에서 다시 나가, 꼭 부토를 죽이리라고 마음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고문을 당하고 몸이 망가지면서 그런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힘겨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 겁니다. 다시 부토를 죽이는 일이 아니라면 살려고 하는 일이 구차하고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

이상국 T&P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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