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의 인더스토리] 부동산 규제는 서민을 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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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익 건설부동산부 부장
입력 2018-03-2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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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남 부자 죽이기는 정의인가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학 교수의 책 ‘정의’를 보면 정부가 어떤 경우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철길 위에 열 명이 있고 그들을 향해 달리는 열차가 있다. 레버를 당기면 열 명을 구할 수 있지만 경로가 바뀐 레일 위의 한 사람이 죽는다.

레버를 당겨선 안 된다는 사람은 운명론자고 당겨야 한다는 사람은 벤덤이 말한 양적 공리주의자다. 정부의 시장개입과 결부하면, 운명론자는 자유방임주의자다.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소수의 불행을 감수해야 한다는 후자는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옹호한다.

레버를 당긴 사람은 무정부주의자 입장에선 애꿎은 한 사람을 죽인 살인자인데, 공리주의자 시각으론 열 명을 살린 영웅이다. 21세기 국가란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은 공리주의적 시각을 일단 정의로 인정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시장규제는 살인 행위일까 영웅적 행위일까.

정부의 부동산 시장규제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 상승이 동심원을 그리며 전체 주택 가격을 끌어올린다는 진단에서 비롯됐다. 주택가격 상승이 서민주거 안정을 해치는 근원이란 것이다. 진단에 따라 강남 재건축 시장을 잡으면 이 같은 연결고리가 끊어져 서민주거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처방이 나왔다.

정부는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 상승 레버를 당기기로 결정했다. 강남 소수 부자들이 열차에 치이는 쪽을 택한 것이다. 철길 위에 있던 다수 무주택 서민을 살리는 길이란 명분이 면죄부가 될 것으로 믿었다.

레버를 당겼다. 서울 전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해 고강도 규제를 적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주택담보대출을 조여서 돈줄을 막고 양도소득세 중과세 등을 부활해 시세차익 등에 대한 기대이익을 줄였다. 초과이익환수제 유예를 중단해 재건축으로 인한 시세차익의 일부를 세금으로 내도록 했다. 안전진단 비중을 강화해 집이 무너질 염려가 없으면 재건축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열차는 바뀐 경로를 따라 전속으로 질주했다.

강남 재건축을 소유한 일부 부자들이 열차에 치인 건 확실하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강남구 재건축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0.04%를 기록했다. 이 수치가 마이너스를 나타낸 건 지난해 9월 둘째 주(9월 15일 기준) -0.03%를 기록한 후 24주 만이다. 서울 전체 집값 상승률은 0.3%를 기록해 4주 연속 상승폭이 축소됐다.

한때 20억원까지 치솟았던 반포주공1단지 3주구(전용면적 72㎡) 아파트는 현재 18억5000만원에 매물이 나왔다. 하지만 거래가 되지 않는다. 집주인 입장에선 정부 개입으로 1억5000만원의 재산을 잃었다.

레버를 당기지 않았을 경우 열차에 치일 뻔한 열 명은 위기를 모면했을까. 일단 집값 상승률이 둔화됐으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같은 조건이라면 어쨌든 집을 사는 게 정부가 레버를 당기지 않았을 때보다 쉬워진 건 사실이다. 

문제는 레버를 당기면서 다른 조건들이 덩달아 달라졌다는 점이다. 대출규제로 금고에 수억원을 쌓아놓고 있는 부자가 아니면 집을 사기도, 청약을 받기도 힘들어졌다. 집값이 수억원씩 떨어진 강남의 아파트는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안정과는 어차피 동떨어진 상품이다.

분양보증을 독점한 주택도시보증(HUG)이 사실상 인·허가권을 행사하면서까지 분양가를 낮추었다. 재건축 아파트와 함께 치솟는 분양가도 주택가격 상승의 진원으로 지목되면서 국토교통부가 산하기관인 HUG의 손에 피를 묻히도록한 것이다. 하지만 무주택 서민이 내집 마련이 쉬워진 것은 역시 아니다.

예컨대 HUG는 디에이치자이개포의 평균 분양가를 3.3㎡당 4160만원 기준으로 분양보증을 승인했다. 주변 시세가 5000만원을 웃돌아 당첨되면 적어도 6억~7억원의 시세차익이 가능한 로또아파트가 됐다. 분양가가 떨어져도 10억원이 넘는 아파트가 무주택 서민들의 몫이 될까? ​지난 19일 진행된 특별분양에서 300여명이 자금마련 등을 이유로 막판에 접수를 못했다. 

지방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대출규제와 경기침체, 공급물량 증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집값이 떨어졌는데 집 주인을 찾지 못한 아파트는 오히려 늘고 있다. 지난 2월 말 기준 창원 성산구 아파트값은 1년전보다 8.6% 내렸다. 전국에서 가장 낙폭이 크다. 같은 기간 창원 전체 아파트값은 5.2%, 인근 거제 아파트값은 5.5% 내렸다. 경북 포항(-2.7%), 충북 청주(-2.7%), 충남 천안(-2.6%)·당진(-1.7%) 등도 집값이 떨어졌다. 창원 일부 지역의 경우 분양가보다 3000만~4000만원 내린 매물이 나와도 살 사람이 없다.

레버를 당겨 구하려던 열 사람에게 다른 열차가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좀 더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도 있다. 하지만 상당 부분 예견된 결과란 점에서 정책 실패란 비판을 면키 어렵다. 강남 아파트에 대한 외과수술이 적절한 처방이 아니란 건 전 정부의 교훈이다. 이를 망각했다면 몰상식이다.  그 과정에서 HUG 같은 보증기관이 설립취지와는 반대가 되는 부적절한 역할을 한 것도 비난의 강도를 키우고 있다.

정부는 레버를 당길 경우 열 사람에게 다른 열차가 달려갈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규제는 공리주의자의 시선으로 봐도 영웅이라기보다는 살인자에 가깝다. 샌델 교수의 레버 당기기를 다시 생각해보자. 레버를 당겨 열한 사람이 모두 죽었다면 구하고자 했던 선의가 살인이란 악행의 면죄부가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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