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미투'를 보는 여성 국회의원들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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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지 기자
입력 2018-03-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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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발(發) 미투 쓰나미'가 국회를 강타한 지 사흘째 되던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 여성의원과 티타임을 가지고 이동하던 중 복도에서 다른 여성의원을 만났다. 두 여성의원은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이야기로 시작해 '미투'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참담하다. 이참에 확 바꿔야 한다"는 게 이야기의 요지였다. 그래서 요즘 여성 국회의원들에게도 '미투 할 일'이 있냐고 물었다. "아유, 엄청 많죠."
 
어느 곳보다 남성 중심적인 국회의 단단한 '유리천장'을 깨고 입성한 이후에도 그들은 말 못 할 사정이 많은 듯했다. 제20대 여성 국회의원은 전체 300명 가운데 51명(17%)이다. 이들은 요즘 국회 내 여성의원 휴게실에서 만나면 안 전 지사의 이야기를 하며 분노한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미투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굳게 걸어 잠갔다. 현재까지 미투 운동에 동참한 의원은 이재정 민주당 의원이 유일하다. 그나마 변호사 시절 로펌 대표에게 당했던 일을 최근에야 폭로한 것이었다. 현직 여성 국회의원이 직접 '미투'를 밝힌 사례는 없다.
 
여성의원들과 그들의 보좌진에게 '말 못 할 사정'이 있는지 물었다. "일부러 안 하겠냐"며 난감한 반응이 대다수였다. 국회는 여전히 '말할 수 있는' 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미투 운동'은 가해자와 공방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여성 의원들은 이미 신상이 낱낱이 공개돼 2차 피해를 겪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걱정했다.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뉘는 일반인과 달리 정쟁의 전략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 등 정치인에 대한 판단의 잣대가 다르다는 점도 염두에 있었다.
 
또 다른 의원은 여성 정치인들이 50·60세대가 대부분인 만큼, 세대별로 '젠더 감수성'이 다르다고 했다. "나 때는 더 심했다"며 공감하지 못하는 일부 선배 여성 정치인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점을 제기한 A의원은 "미투가 남성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싸움이 돼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답변은 국회가 그동안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은폐했으며, 화합이란 명목으로 침묵을 강요해왔고, 이런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방증이다.
 
A의원의 말처럼 미투 운동의 핵심은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폭로이자 권력에 대한 대항이다. 이젠 '민의의 전당'을 자임하는 국회부터 철저하게 바뀌어야 한다. 자유로운 미투 운동에 위드유(With you·너와 함께해)로 동참하는 분위기가 당연시된다면 당 대표에게 공천 걱정하지 않고 할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오지 않을까.
 
미투는 그 과정에서 가장 격렬하게 폭로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며, 거기서 나아가 국회에서 만드는 법과 제도 속에도 평등한 문화가 자리 잡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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