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브란트와 문재인, 그리고 한반도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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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 기자
입력 2018-03-1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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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 정치부장]

지난 2월 8일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각국 정상들과 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으로부터 아주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의 초상화가 담긴 액자였다.

브란트 전 총리는 독일 현대사가 브란트 정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큰 발자취를 남긴 정치 지도자다.

정치 지도자의 결단과 용기, 비전이 민족과 국가의 운명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지, 또 세계사에 어떻게 큰 획을 긋는 거대한 물줄기를 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동방정책으로 미·소 냉전을 주도적으로 허물면서 독일통일과 유럽통합의 길을 열었다.

독일통일은 1990년 기독교민주연합 헬무트 콜 총리의 재임 시절에 이루어졌지만, 빌리 브란트가 시작하고 헬무트 슈미트가 계승한 동방정책과 동독과의 끊임없는 교류 추진이 없었다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브란트 정부와 많이 닮았다. 전후 정권교체를 이룬 최초의 사민당 정부인 브란트 정부는 68혁명을 통해 탄생했고, 나치 과거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담대한 청산을 통해 독일 통합과 발전이라는 거대환 전환을 만들어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적폐 청산이라는 국민의 명령을 받아 안았다. 브란트 정부와 마찬가지로 분단국가, 과거청산, 사회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브란트 전 총리는 취임사에서 "동독을 독일 내 제2의 국가로 인정하여 동등 자격의 기초 위에서 동독 정부와 만날 용의가 있다"는 동방정책을 발표했다. 동방정책의 핵심은 동독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으로, 통일이 궁극적 목표가 아니었던 셈이다.

동독의 지도자들은 관계 정상화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정권이 인정받길 바랐다. 어려운 경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서독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했고, 교류와 협력의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브란트 정부는 동독과 인적·물적 교류의 증대 및 자유왕래, 공동체적 번영을 1차적 선결 과제로 인식하고, 경제 교류를 분단된 양국을 결속시켜 주는 수단으로 중요시했다. 동독이 실질적인 경제 이득을 얻을 수 있도록 해 더 이상 소련에 경제를 의존하지 않도록 했다. 이는 훗날 소련 붕괴 후 고르바초프 개혁·개방정책에 영향을 받은 동독이 철의 장막에서 뛰쳐나올 수 있는 마중물이 됐다.

1990년 8월 양독 간에 맺어진 통합조약에 의하여 관계가 급진전됐고, 결국 1990년 10월 3일 정식으로 하나의 국가가 됐다.

브란트 전 총리는 1989년 11월, 붕괴된 베를린 장벽을 방문한 자리에서 “원래 하나였던 것이, 이제 함께 성장한다”는 말을 남겼다.

독일 통일 이후 마지막 분단국가인 남과 북, 한반도에 훈풍이 불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쟁 위기설까지 대두됐던 한반도 상황을 상기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전쟁 당사국인 미국과 북한의 통 큰 결단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의 전기를 마련했다고 하지만, 이는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용기와 비전, 외교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북·미 간 긴장이 고조되며 ‘코리아 패싱’ 논란까지 감내해야 했던 문 대통령은 전략적 인내를 발휘해 북·미를 비롯해 국제사회를 지속적으로 설득했다.

또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어 긴장상태의 한반도 안보정세를 풀겠다는 의지를 천명, 고차원 방정식의 실마리를 풀어냈다. 문 대통령의 진정 어린 중재 외교가 미국과 북한 지도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내비치며 남북관계 진전과 북·미 관계 정상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에 나선 이유는 결국 경제 발전과 체제 안전 보장이다.

고강도의 경제 제재가 이어지면서 국면 타개책이 절실했던 김정은 위원장과 올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의 지지 회복이 필요한 트럼프 대통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역대 보수 정권들이 대북정책을 얘기할 때 ‘통일’이라는 단어를 맨 앞에 내세웠던 것과는 달리 문재인 정부는 ‘통일’이 아니라 ‘평화’를 말한다. 이는 큰 차이다.

브란트 정부가 동독을 흡수통일의 대상으로 보지 않은 것과 결을 같이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독일에서 밝힌 한반도 평화구상, 이른바 베를린 구상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남북 합의 법제화 및 종전 선언과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남북 철도 연결, 남·북·러 가스관 연결 등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다.

한반도 평화와 한반도 공동체 번영이라는 원대한 꿈을 제시한 것이다. 한반도 땅 끝 목포에서 출발한 열차가 평양과 신의주를 거쳐 베이징으로, 시베리아 벌판을 지나 유럽 대륙으로 이어지는 대륙의 꿈, 한민족의 원대한 꿈이 펼쳐지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앞으로 두 달, 수많은 변수는 남아 있다. 문 대통령은 '유리 다루듯 조심스럽게' '천금같이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트럼프·김정은·문재인 한반도 당사국 지도자들이 현실에 발을 딛되, 부디 무한한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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