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토사구팽하려고 '알뜰폰 활성화' 외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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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오 IT・중기부 부장
입력 2018-03-08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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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오 IT중소기업부장]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앞다퉈 새로운 요금제를 내놓기 시작했다. 지난 2월 LG유플러스가 "용량과 속도 제한 없는 요금제를 내놓겠다"고 발표하자, SK텔레콤은 "약정이 끝나기 전에 해지하더라도 '토해내는' 반환금을 대폭 줄이겠다"고 맞불을 놨다. KT도 이에 질세라 데이터 제공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요금제 개편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통3사의 요금제 개편은 보편요금제에 상응하는 대책 마련 차원으로 보인다. 보편요금제 도입보다는 이용자 혜택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통신비 인하 의지가 강력한 규제로 공식화되기 전에, 이를 약화시키기 위한 선제 조치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속도제한을 없애고 반환금을 줄이고 데이터 혜택을 더 많이 준다고 해도, 내가 다음 달에 내는 통신요금이 크게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고객 혜택이 고가의 요금제에 집중돼 있어 충분히 혜택을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사실 나처럼 더 싼 요금에 대해 고민하는 사용자들을 위한 해결책은 이미 예전에 나와 있었다. 바로 통신사의 망을 임대해 더욱 저렴한 요금으로 쓸 수 있는 알뜰폰이다. 지난해 한 알뜰폰 통신사는 월 2만2000원에 무려 데이터 10GB를 제공하는 요금제를 내놓아 업계의 화제가 됐다.

보통 통신사 요금제는 5만원대 이상 요금제 중심이다. 반면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알뜰폰 사업자들은 '사각지대'인 2만~3만원의 저가 요금제 수요를 메우면서 지금까지 750만명이 넘는 가입자 수를 확보할 수 있었다. 기존 통신사의 망을 임대해 쓰기 때문에 망 품질이 같은 데다 100만원이 넘는 비싼 고가폰이 아닌, 기능상 큰 차이가 없고 일상 생활에서 아무런 불편 없는 실용적 단말기의 공급도 한몫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월 2만원에 데이터 1기가바이트(GB)를 주는 '보편요금제'란 것을 대형 통신사들이 내놓도록 만들겠다고 한다. 혜택만 놓고 본다면 지금 나와 있는 알뜰폰 사업자들의 요금제보다도 못한 셈인데, 정부는 마치 보편요금제가 국민의 가계통신비 부담을 낮출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고집을 부린다.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기존 통신업체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지는 알뜰폰 사업자들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통신업체도 매출이 큰 폭으로 줄어 5세대(5G) 이동통신 투자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 국민의 가계통신비 부담을 덜기 위한 해법으로 '알뜰폰 활성화'를 제시한 게 정부였다. 이미 더 나은 해법이 시장에 나와 있는데, 굳이 정부가 직접 요금제까지 '설계'하면서 전체 이통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3000명이 넘는 알뜰폰 업계 종사자들의 생계가 달려 있는데도 이들의 목소리는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지금이라도 무리한 보편요금제 강행 의지를 접고, 현실적인 알뜰폰 업계 지원책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는 것이 아닐까.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책마저 헌신짝처럼 버리려는 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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