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남진칼럼] 평창에 차려진 올림픽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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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진 논설고문
입력 2018-02-2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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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허남진]


 1년여 전 뉴질랜드 자동차 여행 중 대형 지진(규모 7.8)을 만났다. 바로 하루 전 떠나온 해변가가 직격탄을 맞았다. 2명이 숨지고 바다사자 무리가 쉬던 해안 암석지대는 2~6m 솟아올랐다. 모골이 송연했다. 남은 여행일정 동안에도 규모 5 이상의 여진이 계속돼 한편으론 무서웠다. 그런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빙산과 호수의 아름다움이 더욱 짜릿한 감동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새롭다.

세계인들에게 평창올림픽 또한 비슷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지구촌 최고의 긴장지역인 데다 대회 기간 중에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험한 말들이 오갔다. 아무런 충돌이나 사고 없이 치러져 다행이지만 올림픽 참여자 중 상당수는 은근히 마음을 졸였을 게 틀림없다. 긴장감 속에 치러진 화려하고도 박진감 있는 올림픽-짜릿한 흥분으로 기억되리라 믿는다.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최고의 올림픽’을 일궈내기까지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이 함께했음은 물론이다. 평창올림픽 첫 도전은 김대중 정부 때로 기억된다. 이후 노무현 정부의 2차 도전, 이명박 정부의 3차 도전과 개최지 확정, 박근혜 정부의 대회 준비, 문재인 정부의 성공적 개최 등 바통을 이어가며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중에서도 대회장 설계와 건설은 대부분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진행됐다.

그러나 두 전 대통령은 가장 불편한 심기로 대회를 지켜봤을 테니 정치란 게 참으로 묘하다. 반면 문 대통령은 개최국 대통령의 단순 의전 역할에 그치지 않고 평창을 자신의 외교 무대로 적극 활용했다. 북한에선 김정은의 여동생이, 미국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예쁜 딸이 서로 다투듯 날아와 문 대통령과 악수하고 식사도 함께 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미 3각 외교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멋진 기량의 선수들 못지않게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이·박 두 사람이 차려놓은 밥상의 최대 수혜자야말로 그들의 정적(政敵)인 문 대통령이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칠까.

첫선을 보인 문재인표 대북정책도 큰 관심을 모았다. 현재로선 야당의 반대 등으로 평가하긴 이르지만 향후 진전 상황에 따라선 후한 점수를 받을 소지도 없지 않다. 처음엔 ‘민족’을 앞세웠던 사부(師父) 노무현 대통령의 그림자가 어른거려 우려가 컸던 게 사실이다. 김대중표 햇볕정책을 승계한 노무현표 대화노선은 미국과의 엇박자 때문에 논란을 불렀다. 노 대통령은 “미국에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해 미국의 반발을 샀다.

노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이란 점에서 문 대통령 역시 똑같은 행보일 것으로 예상했었다. 실제 북측의 미사일 도발 당일 문 대통령이 '대화'를 강조할 땐 걱정이 컸다. 북한의 올림픽 참여를 위해 마치 애걸복걸 매달리다시피 한 모습도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미국 쪽에선 불만 섞인 반응이 잇달아 나왔다.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문 대통령이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라며 속도조절을 강조한 이후다. 남북 정상회담의 전제로 ‘여건 성숙’을 언급했고, 북한 측에 비핵화를 주문하는 한편으로 북·미 대화도 주선했다. 김여정 및 김영철 방한도 미국 측과 사전 물밑접촉을 통한 상호 양해 아래 이뤄졌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며 동맹 균열을 염려하던 여론이 잠잠해졌다.

정부는 올림픽 외교를 성공적이라고 자평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본격적인 남북대화에 나설 태세다. 남북문제가 부상하면 늘 통일을 이룩해낸 독일사례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게 된다.

분단됐던 동·서독이 통일된 건 1990년. 연립정부를 이끌던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1971년 신동방정책을 표방한 지 19년 만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여 햇볕정책을 제시한 게 1998년. 김·노 두 대통령의 평양방문으로 남북정상회담이 두 차례 이어졌지만 2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남북은 제자리걸음이다. 통일은커녕 일촉즉발의 파고만 높아져 왔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은 걸까.

브란트 총리의 신동방정책과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상대 포용정책이란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두 정책 모두 보수 야당의 줄기찬 극렬 반대에 시달렸고, 두 사람 모두 그 정책에 힘입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여기까지도 같은 모양새다. 그러나 서독은 신동방정책을 반대하던 보수정당이 집권하자 그 정책을 그대로 승계하고 발전시켜 통일을 일궈낸 반면, 우리의 경우 보수 정권으로 넘어가며 남북대화는 중단됐다.

여기서 단연 돋보이는 게 브란트 총리의 소통 정치다. 당시 서독 야당들은 브란트의 연립정부가 동독 측에 너무 많은 걸 양보해 결과적으로 국가이익을 팔아먹었다고 질타했다. 협상과정의 불투명성과 조급성도 비판받았다. 우리의 경우와 똑같다. 다른 모습은 브란트 총리의 지극정성이다. 야당 측을 만나 설득하고 토론하며 중요한 내용을 양보해 합의를 이끌어냈다. 야당이 줄기차게 강조한 상호주의를 수용한 게 대표적이다. 브란트의 신동방정책은 야당의 매서운 비판 덕에 탄탄한 통일방안으로 거듭났고, 여야를 초월한 국가적 정책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에 견줘 우리의 햇볕정책과 당시의 불통정치를 돌아보면 안타까움이 크다. 야심차게 추진되는 문재인표 통일정책 역시 성패는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틀을 만들어 내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결국 야당과의 소통이 답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김영철 방한을 포함, 북한과의 접촉에 앞서 야당 측과 사전 협의를 거쳤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평창올림픽 성공의 일등 공신으로 정책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꼽고 싶다. 정권이 몇 차례 바뀌었어도 바통을 이어받으며 잘 치르자는 일념으로 준비에 전념할 수 있게 한 덕목이다. 문재인표 통일정책 역시 그런 덕목을 바탕으로 성공하여 대망의 남북통일로 이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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