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구의 과학과 문화] 과학·기술이 문화가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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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입력 2018-02-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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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사회는 그보다 더 빨리 변한다. 10년 전 사회와 지금 사회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또 앞으로 10년 후 미래는 지금 사회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사회는 도대체 왜 변화하는 걸까. 사회가 변화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사회와 문화는 불가분의 관계다. 사회학자들은 '사회가 그릇이라면 그 그릇에 담긴 내용물은 문화'라고 설명한다. 사회와 문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사회가 변동하면 사람들이 일하고 소통하고 살아가는 방식, 가치관 등 문화도 변동한다. 사회가 변화한다는 것은 곧 사회의 문화가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와 문화가 변동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는 보통 발명(Invention), 발견(discovery), 문화 전파(culture diffusion) 등 세 가지를 꼽는다.

발명은 이제까지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거나 생각해내는 것을 말한다. 혁신적인 발명은 인류 역사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이를테면 2세기경 중국 후한 시대의 환관 채륜은 종이를 발명했다. 덕분에 인간은 지식을 기록하고 학습할 수 있게 됐으며, 책을 만들어 지식을 후세에 전승할 수 있게 됐다. 수레바퀴의 발명, 증기기관의 발명, 컴퓨터의 발명, 인터넷의 발명 등도 비약적인 사회문화의 변화를 촉발시켰다. 물건, 제품, 기술의 발명뿐만 아니라 비물질적인 발명도 있다. 새로운 정치 개념을 고안하고 새로운 사회제도를 만드는 것은 ‘사회적 발명’이다. 민주주의, 인권, 주권 등의 개념을 만들고 공화국, 선거 제도, 헌법 등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발명과 달리, 발견은 원래부터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것이나 미처 알려지지 않은 것을 새롭게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제국주의 개척 시대 지리상의 대발견 등을 들 수 있지만 사실 가장 많은 발견이 이루어지는 분야는 과학연구다. 과학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는 대부분의 결과물이 발견이다. 관찰·해부·실험·탐구로 자연과 생명의 신비를 밝혀내는 것은 자연과학에서의 발견이다. 예컨대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아낸 것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게놈을 해독해서 DNA 염기서열을 밝혀내고 유전자 지도를 그려낸 것도 발견이다. 이렇게 우주와 자연의 원리, 물질의 본질, 생명활동의 메커니즘 등을 밝혀내는 과학연구들이 사회변동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문화 전파는 한 지역이나 한 나라의 문화가 사람들의 이동과 국가 간 무역, 정복전쟁, 대중매체 등을 통해 다른 지역이나 나라로 이동하거나 퍼져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므로 각각 다른 문화를 가진다. 한 지역의 특정한 문화가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는 것이 문화 전파다.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돼 책 만드는 문화가 만들어졌는데, 이 문화는 아랍인을 통해 서양으로 전해졌다. 불교가 인도에서 만들어져 동양 여러 나라에 확산된 것, 중국의 한자가 우리나라나 일본 등 이웃나라에 전해진 것도 문화 전파다.

이렇게 사회문화의 변동은 발명과 발견, 문화 전파 등에 의해 야기된다. 이 중 발명과 발견은 주로 과학기술 영역이다. 보통 기술개발을 통해 발명이 이루어지고, 과학연구를 통해 발견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모든 발명과 발견이 사회 변동을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로 많다. 실제 발명 특허를 받은 것 중 상품화되는 것은 극히 소수이고, 상품화된 특허 중 히트상품이 되는 것 또한 극소수이다. 그것은 과학과 기술이 사회 속에 수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과학기술이 문화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술이 저절로 문화가 되는 건 아니다. 과학기술이 문화가 되려면 사회 속에 착근돼 사람들이 공유해야 한다. 문화는 축적성, 학습성 등 여러 가지 속성을 갖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유성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생활양식이 돼야 문화가 된다. 예컨대 스마트폰은 기술의 산물이지만 그걸 이용해서 소통하는 것은 문화다. 사람들이 인식하고 이해하고 일상생활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해야 문화가 된다. 기술이 사회적으로 수용되면 기존 기술을 대체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업무방식, 소통방식, 살아가는 방식까지 변화시킨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사회문제를 야기하거나 윤리, 법과 상충한다면 사회적 수용이 어렵다. 제품·기술의 발전 속도는 매우 빠르다. 그러나 이를 수용하는 제도나 사람들의 가치관은 완만하게 변화한다. 물질적 기술과 비물질적 문화 간에는 시간적인 격차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를 ‘문화 지체 현상’이라고 한다. 과학과 기술이 변화의 출발점인 경우가 많지만 문화 변동에까지 이르지 못하면 근본적인 사회 변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시대, 우리가 테크놀로지만 이야기해서는 사회변화 흐름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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