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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그래그래] 우리도 '기본소득' 좀 안 주나?

최보기 작가·북칼럼니스트입력 : 2018-02-23 06:00수정 : 2018-02-23 06:00

[사진=최보기 작가·북칼럼니스트 ]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인데 인문학 저술과 강연으로 더 이름을 얻은 인사의 강연을 일부러 찾아가 들은 적이 있다. 소문으로 들은 ‘비싼 강연료’에 '대체 얼마나 강연을 잘하기에 그러나' 궁금해서였다. 자신의 지중해 여행을 서두에 꺼낸 그는 ‘세계 3대 책을 꼽는다면 성경, 일리아스, 신곡’이라면서 호메로스와 그리스 신화로 이야기를 옮겨갔다. 강연을 들으려는 동기부터 삐딱선을 타서 그런지 거기서부터 벌써 두 가지가 거슬렸다.

하나는 그가 돈이 많다는 점이다. 당장 일용할 양식을 구하지 않아도 될 만큼 경제적 여유가 충분하니 지중해도 장기간 여행하고, 그 경험을 또 책과 강연으로 풀면 여행 비용을 능가하는 돈이 다시 들어오고, 그 돈으로 또 여행을 떠나는, 빈자(貧者)는 결코 꿈 꿀 수 없는 선순환의 특권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꼽은 ‘세계 3대 책’이다. ‘건방진’ 유럽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게 맞을지 모르겠으나 동양인 입장에서 보면 불경이 있고, 공자의 시경이 있고, 삼국지나 홍길동전(솔직히 아무리 생각해도 '국뽕'임이 분명하지만)이 있지 않겠는가. ‘유럽의 3대 책’이라 해야 맞는 것이다.

연장선상에서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바꾸지 않겠다’ 했다던 영국인들의 허장성세도 듣는 인도 사람들은 무척 기분이 나쁘다. 심지어 ‘작가 한 사람이 그 많은 수작들을 다 쓰기는 불가능하다. 셰익스피어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당시 영국 문학가들의 집단지성의 결과물일 수 있다’는 속설도 있는 판국에 말이다.

영국 문학의 거장 셰익스피어의 최대 라이벌로는 스페인의 세르반테스를 친다. 이 또한 스페인 사람들의 주장이긴 하나 두 작가가 중세 유럽 문학의 거두인 것은 사실이다. 셰익스피어가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세르반테스의 일생은 파란만장, 산전수전(山戰水戰)이었다. 끝내는 55세 즈음 사기죄 추정 죄목으로 감방에 갇혔다. 그는 감방에서 <돈키호테>를 구상해 58세에 전편을 발표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몇 년 전 첫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으로 세기의 작가 반열에 오른 스웨덴의 요나스 요하손도 작품 발표 당시 50세에 근접한 나이였다. 쓰고자 하는 열정 앞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매주 여기에 ‘그래그래’를 쓰고 있는 55세 필자의 꿈은 이 칼럼을 모은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타는 것이다(결과야 어찌 되든 꿈은 일단 야무지고 봐야 한다). 그런데 매주 정기적으로 납기가 정해진 글을 쓴다는 것은 고역 중 고역이다. 돌아서서 숨 한 번 쉬면 다시 납기일이다. 작가들에게 원고료는 생계의 한 축이라 안 쓸 수도 없다. 사정이 어려운 월간지의 경우 30년 전 원고료를 아직 고수하고 있는 데도 많다. 국민 1인당 독서율도 유럽의 선진국들과 비교가 안 된다. 초대형 베스트셀러를 낸 소수의 유명 작가를 뺀 다수의 작가들이 생계 걱정 없이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그렇다고 ‘돈키호테’를 쓰기 위해 감방을 자처할 수도 없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작가들의 노력은 눈물 어리다. 엊그제 ‘반박 성명 발표한 대법관 13인에게 고함’이란 격정의 시를 SNS에 발표해 크게 화제가 됐던 시인 김주대는 ‘돈이 되는 문인화’를 그리기 위해 눈병이 날 지경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은 ‘호텔 홍보대사 거래’를 제안했다가 뜻하지 않은 비난에 몸살을 앓기도 했다. 심지어 함민복 시인은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라며 ‘정신승리’로 극복한다. 시문학계 정상에 있는 이재무 시인은 ‘나는 벌써’란 노래를 부르는 중이다.

“삼십 대 초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다 오십 대가 되면 일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살겠다 사십 대가 되었을 때 나는 기획을 수정하였다 육십 대가 되면 일 따위는 걷어차 버리고 애오라지 먹고 노는 삶에 충실하겠다 올해 예순이 되었다 칠십까지 일하고 여생은 꽃이나 뒤적이고 나뭇가지나 희롱하는 바람으로 살아야겠다 나는 벌써 죽었거나 망해버렸다”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 때는 ‘글쓰기에만 편하게 전념해 노벨문학상을 기필코 타라’며, 모두에게 주기 힘들면 일정 소득 이하 시민들에게 매달 단돈 10만원이라도 ‘기본소득’을 꾸준히 주겠다는 후보를 나는 반드시 찍을 참이다. 표만 얻으려는 선심성으로 한 번 확 주고 치우는 그런 포퓰리즘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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