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정의 연예프리즘] #이윤택#미투운동#성추행 "그저 일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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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 기자
입력 2018-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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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윤택 연출가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다. 이윤택 연출가는“제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정말 부끄럽고 참담하다. 제 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포함해 그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에이, 대표님~ 왜 이러세요. 내일 날 밝으면 제 얼굴 어찌보시려고 이러세요. 정신차리시고! 술 드시고! 제가 노래 한 곡 부르겠습돠~"

의욕이 앞섰던 20대 신출내기 기자 시절에는 온갖 술자리를 모두 따라갔다. 단란주점에도 가고 술집 언니들과 함께 잡담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취재원 확보를 위해 친해지기 위해 오로지 그 목적 하나로 버티는 자리였지만 술이 오르고 시간이 지나고 자리가 깊어지면 동석했던 남자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어, 이거 봐라? 집에 안가네? 나한테 마음이 있나?"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점잖은 척하던 회사 대표, 정치인, 의사, 변호사 등 직종 불문 모든 남자들은 거의 비슷했다. 남자기자들은 함께 단란주점에 가고 2차를 가고 사우나를 하고 나서 다음날 새벽을 맞이하면 서로 묘한 동지(?)의식을 싹 틔우며 다음에 만날 때 "동생, 형"이 되는 경우가 다분했지만 여기자들은 그저 술자리를 버틸수록 돌아오는 건 성적인 농담과 추근거림들이다.

운이 좋은 편이었는지, 내 성적(?)매력이 충분하지 않았던 덕분인지, 마신 술을 토해내고라서라도 정신줄을 놓지 않고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덕분인지 십여년이 넘는 여기자 생활동안 추행 선에서 끝나고 2차 제안을 해오는 사람은 없었다.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아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었다. 지방에서 상경해 혼자 사는 여기자들의 경우에는 집에 데려다준다는 핑계로 혼자사는 집에 들어가겠다거나 집에 들어가지 말라거나, 대놓고 유혹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기자라는 직종상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친분이 생겨야 기사거리가 나오기 때문에 친해지기 위해서는 술자리가 필수(?)지만 이같은 성추행에 빈번히 시달려야했다. 

작은 신문사, 잡지사의 경우 데스크라는 지위를 이용해 여기자들을 추행하고 성폭행을 하려는 경우도 숱하게 봐왔다. 대부분 어리고 경험이 없고 미숙하기 때문에, 무서워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면 "니가 꼬리를 쳤겠지~"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두려워서 모두 가슴에 묻고 만다. 

최근 연극 연출가 이윤택(66)의 성추행 논란으로 예술계 안팎이 시끄럽다. 지난 19일 오전 이윤택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고 공개 사과했지만 배우 김지현, 이승비 등 그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들의 연이은 성추행 폭로로 사과가 무색해졌다. 

헐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Me Too )운동'이 국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헐리우드의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이 여성 수십명을 성적으로 괴롭혔다는 뉴욕타임스의 폭로 기사를 촉발로 타임지의 '와인스타인 스캔들’ 보도 이후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소셜미디어에 ‘나 역시 피해자였다’는 의미의 ‘미투(Me Too)’에 해시태그를 붙여 각자 경험을 고백하는 ‘미투 캠페인’을 시작했다. 지난해 기네스 팰트로, 안젤리나 졸리에 이어 레아 세이두까지 하비 웨인스타인성추문 피해자라고 밝혀져 논란이 됐다. 최근에는 우마 서먼까지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폭력을 폭로하고 나섰다. 무엇보다 하비 웨인스타인은 30년간 뭇 여성 스타들과 연예관계자들을 성추행한 사실이 알려지며 사회적으로 매장당했다.

이 캠페인으로 미국 사회 전반에 ‘성폭력 고발 열풍’이 일었고, 영화계를 넘어 정계·경제계·노동계·언론계 등 각 분야에서 수백만건에 달하는 성폭력 피해가 폭로·고발됐다. 우리 사회 역시 '미투 운동'의 영향이 밀려오고 있다.

혹자는 말한다. "여자들이 야한 옷을 입고 요란하게 화장하고 남자들을 꼬시니까 성추행이 일어나지. 언행을 조심해야지" 화장하지 않고, 야한옷도 입지 않았고 유혹적인 말투 하나 눈짓 하나 해본적 없고, 그저 노트북이 들어간 큰 가방 하나 메고 뛰어다녔을 뿐이지만 성추행을 밥먹듯 당했다. 기자라는 직종 또한 그럴진데 예쁜 얼굴과 멋진 몸매로 본인 자체가 상품인 연예인들은 말할 것도 없이 온갖 모욕적인 상황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좋게 좋게 넘어가지, 뭘 그렇게 뾰족하게 그러냐" "시끄럽게 만들지 말자"··· 용기가 없어서 주목받는게 두려워서 뒤로 숨던 여성들이 용기를 내 털어놓기 시작했다. 페미니즘도 아니고 피해자 코스프레도 아니다. 이 사회의 지배적 위치에 있었던 남성들, 특히 돈과 권력과 힘을 갖고 있는 남성들은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을, 그들이 일상적으로 행했던, 폭력인줄도 모르고 휘둘렀던 말과 행동에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뿐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용기 내는 여성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서 울고 있을 그녀들, 이제 용기를 내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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