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75] 외몽골의 선조, 할하는 어떻게 형성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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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 칼럼니스트
입력 2018-02-20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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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청에 순종하는 신하가 된 내몽골

[사진 = 몽골 중앙부 초원]

청나라가 북경을 장악하기 10년 전에 이미 내몽골은 사실상 만주족의 지배 아래로 들어갔다. 중간에 청나라에 대한 일부 반발이 있기는 했지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한 채 쉽게 제압됐다. 이후 내몽골은 온순한 양처럼 청나라에 순종하는 신하가 된다.
 

[사진 = 서부 산악지역 양떼]

하지만 西몽골은 여전히 청나라에게도 위협이 되는 세력으로 남아 있었다.

▶주목해야할 할하와 오이라트
만주족이 떠오르기 이전 몽골 고원의 상황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자. 다얀 칸 시대에 형성된 6개의 투멘(萬人隊) 가운데 동쪽에는 얼마 후면 만주족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는 차하르와 오르도스 그리고 투메트가 있다.

이 가운데 몽골에 티베트 불교를 들여왔던 투메트는 몽골 정세에 영향력을 끼칠 부분이 다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두 곳은 별다른 영향력을 남기지 못한 채 서몽골의 세력에 밀려 청나라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일단 제쳐두고 생각하자.
 

[사진 = 타반 보그드산(4348m:몽골 서쪽 끝)]

융시예브 투멘 역시 특별히 기술한 상황이 없다. 우량칸 투멘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그 지역은 할하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 할하는 17세기 초반까지 서쪽의 오이라트도 장악하고 있었다. 할하의 영향권 아래 있던 오이라트는 나중에 할하의 지배에서 벗어나 여러 갈래의 세력을 형성하면서 중앙아시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할하도 오이라트에 밀려 청나라에 보호를 요청하면서 청나라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다고 본다면 지금부터 주목해야 할 대상은 할하와 오이라트다. 이 부분의 몽골 역사는 상당히 복잡하다. 그래서 잔가지를 걷어내고 대략의 흐름만 보고 지나가려 한다.

▶4개 부족의 오이라트 연합
지금 외몽골의 선조인 할하는 몽골고원의 중앙부를 차지하고 있는 세력이라고 머리에 넣어두자. 할하에게 밀려난 오이라트는 몽골의 서부에서부터 지금의 중국 신강지방, 티베트, 러시아 일부 지역까지 퍼져 있었다. 오이라트의 종족은 4개의 주요 종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초로스, 도르베트, 토르구트, 호쇼트가 바로 오이라트 부족연합의 중심이 된 집단이다. 이 가운데 초로스는 준가르로 이어진다. 이 준가르 부족이 바로 나중에 서몽골의 맹주로 떠오르면서 청나라와 한판 승부를 벌이는 종족이다. 오이라트의 이 4개 종족이 연합한 것을 ‘오이라트 연합’이라 부른다.
 

[표 = 오이라트 주요 4개 부족]

▶다얀칸 막내아들 가계가 할하 지배
이제 주목할 만 한 두 세력, 할하와 오이라트 가운데 할하 얘기부터 시작해 보자. 몽골의 동쪽 끝에서 중앙으로까지 영역을 넓힌 할하는 좌익과 우익으로 나눠서 생각하면 된다. 좌익 할하, 그러니까 할하 가운데 동쪽에 있는 할하에는 다얀 칸의 두 아들이 사위로 들어갔다.
 

[사진 = 대흥안령 산맥 ]

다얀 칸의 다섯째 아들이 이끄는 할하부는 투메트와 차하르 사이의 싸움 때 차하르 쪽에 합류해 대흥안령 동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들은 몽골 고원 바깥쪽으로 나갔기 때문에 일단 제쳐놓고 지나가자. 다얀 칸의 막내아들 역시 할하에 사위로 들어갔다.

게레센제 라고 부르는 그가 사실상 할하의 종조(宗祖), 그러니까 지금 외몽골의 선조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이끄는 할하는 투메트의 알탄 칸 쪽에 가세했다가 몽골의 중앙부까지 그 영역을 넓히게 된다. 바로 이 게레센제의 자손들이 이후 할하를 이끄는 주도 세력이 된다. 7명의 아들이 할하 지역을 상속했기 때문에 이를 7부 할하라고 부른다. 이들이 실제로 지금 외몽골의 선조들이다.

▶좌익 할하-투시에트칸 지역
게레센제의 손자 가운데 아바다이라는 인물이 있다. 게레센제의 셋째아들 노-노호의 아들인 이 인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아바다이가 바로 할하부의 최초의 칸이다. 그의 자손들은 투시에트 칸이라고 불리면서 할하 좌익을 이끄는 종주 노릇을 하게 된다.
 

[사진 젭춘담바 8세 복드칸]

아들 곰보와 손자 젭춘담바라 불리는 투시에트 칸이 이후로 이어지면서 20세기 몽골의 마지막 칸인 젭춘담바 8세 복드칸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니까 젭춘담바는 이때부터 달라이 라마처럼 전생이 돼 이어지는 자리로 이해하면 된다.
 

[사진 = 복드칸 궁전]

투시에트 칸은 앞서 알탄 칸에게 주어졌던 칭호로 '보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정식 칸은 아니지만 대칸을 보좌하는 칸이라는 칭호라고 앞서 설명했다. 그래서 좌익 할하를 이후 투시에트 칸 지역이라고 부른다.

▶좌익 할하 아바다이, 호쇼트 장악

[사진 = 알타이산 유목민]

아바다이는 어릴 때부터 전쟁터를 전전하며 오이라트 세력을 굴복시킨 인물이다. 그에게 굴복된 오이라트 세력은 4개 종족가운데 호쇼트부다. 호쇼트부는 준가르분지의 서쪽의 알타이산맥 일부와 투르판과 하미 북쪽의 천산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오이라트 종족이었다.

이들은 원래는 동몽골 지역의 흥안령 일대 유목지에 살던 칭기스칸 동생 카사르 가문의 자손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이라트의 에센태사가 그 지역을 장악했을 때 일부 무리를 서몽골 지역으로 이주시켰는데 그들이 호쇼트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호쇼트는 17세기 초 티베트까지 장악하게 되는 종족이니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아바다이, 에르데니 주 사원 세워

[사진 = 에르데니 쥬 사원(카라코룸)]

아바다이는 옛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에 에르데니 주 사원을 세웠다. ‘보석처럼 귀중한 사원’이라는 의미를 지녔다는 에르데니 주 사원은 과거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룸 성이 있던 바로 그 앞자리에 세워졌다. 몽골제국이 무너지면서 돌보는 사람이 없이 허물어진 성의 석재를 뜯어다 사원의 주춧돌로 사용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사진 = 카라코룸 관광객]

하지만 이 사원에 방문했을 때 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은 이 사원의 라마승은 그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잘못 알려진 얘기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108개의 첨탑이 둘러싸고 있는 이 사원은 지금은 관광지로 알려져 옛 몽골제국의 수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빼 놓지 않고 들리는 곳이 돼 있다.

1585년 여름, 에르데니 주 사원을 세운 아바다이는 내몽골(투메트)로 가서 달라이 라마 3세를 알현했다. 여기서 그는 달라이 라마로부터 칸의 칭호를 받는다. 그래서 그는 몽골의 연대기에 사인 칸으로 불리는 할하 최초의 칸이 된다.

[표 = 할하 좌익 투시에트 칸]

▶할하 우익-자삭투 칸 지역
할하 좌익의 투시에트 칸에 대칭이 되;는 할하 우익의 칸은 자삭투 칸이다. 이제 할하 우익의 자삭투 칸부의 형성 과정을 보자. 할하 우익도 좌익과 마찬가지로 다얀 칸의 막내아들 게레센제에서 출발한다. 그의 큰아들이 아시하이다.

아시하이의 손자인 라이후루가 우익의 최초 칸이다. 라이후루 역시 좌익의 아바다이와 마찬가지로 오이라트 정벌 과정에 많은 활약을 하게 된다. 그래서 오이라트를 장악한 그는 자신의 사촌형제에게 오이라트를 다스리도록 전권을 맡기게 된다.

그렇게 해서 오이라트 여러 부족을 다스리게 된 인물이 우바시 홍타이지다. 그는 알탄 칸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표 = 할하 우익 자삭투 칸]

▶오이라트 지배 할하 영주 알탄 칸

[사진 = 홉스골지역 몽골인]

알탄 칸은 몽골을 티베트 불교로 개종시킨 투메트의 알탄 칸과 같은 이름이지만 서로 다른 인물이다. 알탄 칸이 다스린 오이라트지역은 몽골의 서북쪽 제일 끝 부분과 그 바깥쪽이었다. 지금 몽골의 주요 관광지가 돼있는 홉스굴도 여기에 해당한다.

[사진 = 홉스골지역 눈 썰매]

그래서 인접해있는 러시아와도 접촉을 했던 인물이다. 이때가 17세기 초로 시베리아 전진기지인 톰스크 지역의 러시아 사절단이 알탄 칸 진영을 방문하기도 했고 이듬해인 1,617년에는 알탄 칸의 사절단이 모스크바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러시아 황제에게 자신과 러시아 사이의 왕래를 방해하고 있는 오이라트의 다른 세력인 하라후루 타이시를 함께 제거하자고 요청한다. 러시아가 이에 동의하지 않아 하라후루에 대한 정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등장하는 하라후루가 바로 나중에 청나라 강희제와 대결하는 준가르 갈단의 할아버지다.

▶오이라트 연합, 알탄칸 살해

[사진 = 할하 몽골인들]

알탄 칸은 명목상으로는 할하 우익인 자삭투 칸의 신하였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오이라트 지역에 군림하는 오이라트 칸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그는 할하의 영주로서 오이라트를 다스리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오이라트가 할하의 종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알탄 칸을 제거해야했다.

1620년 준가르부의 하라후루와 토르구트부가 연합해 알탄 칸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준가르와 토르구트는 오이라트의 4개 주요 부족가운데 두 곳이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알탄 칸의 역습을 받아 하라후루는 처자를 잃게 된다.

그 결과 알탄 칸과 4개 부족의 오이라트 연합은 대치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1623년 오이라트의 수장들은 연합군을 조직해 알탄 칸과 일전을 벌이게 된다. 그 결과 알탄 칸은 오이라트 연합군에게 살해된다.

▶오이라트에 머문 알탄 칸 가계
알탄 칸이 피살된 데도 불구하고 그의 아들이 2대 알탄 칸 자리에 오르면서 그 세력은 여전히 오이라트 일부 지역에 머물러 있게 된다. 1659년 2대 알탄 칸이 죽고 그 아들이 3대 알탄 칸의 자리에 올랐을 때는 러시아와 교류하면서 할하의 영주로서 비교적 큰 세력을 유지했다.

그 3대 알탄 칸이 에린 칭이라는 인물로 나중에 갈단의 할하 공격을 불러오는 한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알탄 칸 가계의 명맥이 유지되기는 했지만 오이라트는 알탄 칸을 살해하면서 오랜 기간에 걸친 몽골 할하의 지배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롭게 됐다.

▶유산상속 분쟁에 말린 호쇼트
17세기 초 오이라트의 주도권은 호쇼트가 쥐고 있었다. 그런데 알탄 칸이 살해된 지 2년 후인 1625년 이 호쇼트 부에서 유산 상속과 관련된 분쟁이 일어난다. 부족장 역할을 하던 칭 타이시가 죽으면서 그의 재산 분배를 둘러싸고 유산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유목민의 재산은 가축이 거의 전부로 그 것을 어떻게 나누느냐가 분쟁의 초점이었다. 분쟁은 쵸굴이라는 칭의 친동생과 바이바가스라는 아버지를 달리하는 동생 사이에 일어났다. 그렇게 되자 오이라트 다른 부족인 도르베트의 다라이 타이시가 양측에 절반씩 나눠주는 중재에 나섰지만 쵸굴이 친형의 재산을 모두 독차지하려고 나서면서 오이라트 전체가 이 내란에 휩싸이게 된다.

▶오이라트 정세 변화

[사진 = 트루판 화염산]

할하의 알탄 칸과 전쟁을 벌인데 이어 내란에 휩싸이면서 오이라트 정세가 크게 변하고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4부족 가운데 하나인 토르구트 부족이 멀리 카스피해 북쪽의 볼가 강 변으로 이주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호쇼트부가 티베트를 장악한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 가장 주목할 것은 준가르 부족이 본격적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다른 잔가지를 모두 걷어내고 앞서 언급한 변화들을 차례로 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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