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74] 明은 어떻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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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 칼럼니스트
입력 2018-02-1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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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사진 = 정묘호란 前 상황도]

홍타이지가 아버지 누루하치의 자리를 이어 받은 이듬해인 1,627년, 후금(後金)은 조선에 대한 공격을 단행했다. 이때는 두 번째 패륵인 아민(阿敏)이 3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공격에 나섰다. 이들은 누루하치의 조선 공격 때 항복한 강홍립(姜弘立) 등을 길잡이로 삼아 압록강을 건넜다.

표면적인 이유는 광해군(光海君)의 폐위와 인종(仁宗)의 즉위를 바로잡는다는 것이었다. 내세운 이유야 어떻든 향명배금(向明排金), 즉 명나라로 기울어진 조선을 정복해 배후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한 후환을 없애려 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특히 명나라와의 싸움으로 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리게 되자 조선과의 교류를 통해 이를 해결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때마침 반란을 일으켰다가 후금으로 도망쳐온 이괄(李适)의 잔당들이 광해군이 부당하게 폐위됐다며 조선을 공격할 것을 요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것이 정묘호란(丁卯胡亂)이다. 강화도로 피신했던 조선 조정은 정묘조약을 통해 형제 맹약을 맺고 후금군을 퇴각시켰다.

▶ 남한산성의 굴욕

[사진 = 남한산성 안내도]

몽골의 복속으로 청나라를 세운 뒤 청 태종이 된 홍타이지는 이번에는 조선에 형제지국의 맹약을 군신지의(君臣之義)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여러 물품의 조달도 압박했다. 하지만 척화론자(斥和論者)가 우세했던 조선 조정이 청의 요구를 묵살했다.

그래서 청 태종은 직접 12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조선 공격에 나섰다. 여기에는 청나라군 7만 명과 몽골군 3만 명, 한군(漢軍) 2만 명이 동원 됐다. 이것이 1,636년 인조 14년에 일어난 병자호란(丙子胡亂)이다.
 

[사진 = 영화 ‘남한산성’ 포스터]

척화론자와 화전론자의 대결을 부각시킨 최근에 상영된 영화 ‘남한산성(南漢山城)’에 그때의 상황이 그려져 있다.
 

[사진 = ‘삼전도 굴욕’ 부조 ]

잘 알려진 대로 남한산성에 피신해있던 인조는 항전 45일 만에 항복하고 지금의 송파 삼전도(三田渡)에 마련된 수항단(受降檀)에서 굴욕적인 항복의 예를 올리게 된다.

병자호란은 일단락 됐지만 11개 조항의 불평등 화의 내용은 조선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겨주었고 우리 역사에는 치욕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내몽골과 조선쪽을 평정한 청 태종의 다음 목표는 명나라였다.

▶이자성의 북경 장악

[사진 = 숭정제]

당시 명나라는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의 치세였다. 하지만 이미 국운이 다한 명나라는 부패가 심화되고 통치력이 약화돼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곳곳에서 농민 반란이 빈발하는 가운데 하남과 산서 지방을 장악했던 이자성(李自成)이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사진 = 이자성 조각]

이자성은 1,643년 서안(西安)을 점령해 대순(大順)이름으로 나라를 세워 스스로 왕이라 칭했다. 1644년 4월 이자성은 마침내 북경을 손에 넣었다. 환관들이 이자성 측에서 제공한 뇌물을 받고 성문을 열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으니 당시의 부패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사진 = 경산공원 ]

그러니까 명나라는 스스로 자살의 길을 택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마지막 황제 숭정제도 경산공원(景山公園)에서 자살로 그의 생을 마감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明

[사진 = 자금성 ]

숭정제는 이자성의 군대가 자금성을 포위하자 황태자를 비롯한 아들 세 명을 평복으로 변장시켜 도망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열일곱 살 난 공주와 여섯 살 난 공주는 직접 살해했다. 숭정제가 피 묻은 손으로 관료를 소집하는 비상종을 울렸지만 한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옆에 있던 환관 한 명만 대동하고 경산에 오른 그는 홰나무에 목을 매 숨졌다. 이로서 주원장이 1,368년 대명제국을 선포한지 276년 만에 어둠의 제국 명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산해관 지킨 오삼계

[사진 = 오삼계 ]

북경을 장악한 이자성의 군대는 살인과 약탈 강간 등을 저질러 주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이자성을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은 산해관(山海關)을 지키던 장군 오삼계(吳三桂)뿐이었다. 실제로 대군을 이끌고 북경으로 향하던 오삼계는 숭정제가 자살했다는 것을 알고 군대를 다시 산해관으로 물렸다.
 

[사진 = 산해관 '천하제일관']

산해관은 만리장성의 동쪽 끝 발해만(渤海灣)의 끝머리에 자리 잡고 있는 동쪽 첫 관문이다. 사방에 4개의 관문이 있고 동쪽에는 높이 120m의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 자리 잡고 있다. 성곽이 산과 바다사이에 자리하고 있다고 해서 산해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알려진다.
 

[사진 = 산해관 위치도]

이 산해관은 지세가 험난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군사적 요충지로 이 산해관을 넘지 못하면 북경으로의 진입은 불가능하다. 1,638년부터 명나라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던 청나라는 마지막 관문인 산해관을 뚫지 못하고 고전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북경의 관문인 산해관은 건재한 상태로 버티고 있었다.

이런 교착 상태에서 이자성이 북경을 장악하기 한해 전인 1,643년, 청 태종 홍타이지가 뇌중풍으로 52살에 숨졌다. 청의 귀족회의는 태종의 여섯 살 난 아들 복림(福臨)을 황제로 추대하고(順治帝) 태종의 동생이자 새 황제의 숙부인 도르곤을 섭정왕(攝政王)으로 삼았다.

▶오삼계의 투항으로 북경 장악

[사진 = 섭정왕 도르곤]

섭정왕 도르곤은 14만 명의 대병을 이끌고 다시 산해관을 뚫기 위해 나섰다. 그런데 여기서 난공불락의 성 산해관이 저절로 청의 수중에 들어오는 상황이 벌어졌다.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가 제 발로 투항의 뜻을 전해온 것이다.
 

[사진 = 기녀 진원원 추정도]

오삼계가 청에 투항하게된 것은 여자 문제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지만 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삼계는 북경에서 진원원(陳圓圓)이라는 기녀에게 첫눈에 반해 거금 1천 냥을 주고 애첩으로 삼았다.

하지만 산해관으로 파견된 그는 아쉬움 속에 그녀와 이별을 하게 된다. 그런데 북경을 장악한 이자성의 부하가운데 유종민(劉宗敏)이라는 장수가 자신의 애첩을 가로챘다는 소식을 듣고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내부의 적부터 제거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청에 항복한 뒤 청군을 산해관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이 전해지는 얘기다.

그러나 오삼계가 여자 문제 때문에 적에게 투항할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그보다는 달리 방안이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황제가 자살한 명 왕조를 구하기에는 때가 늦었다는 것이 오삼계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자성의 군대가 약탈과 살인을 저지르면서 오삼계의 아버지까지 체포해 고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삼계는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주위의 만류로 결국 청군과 연합할 결심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청나라와 오삼계가 연합한 대군이 북경으로 밀어닥치자 이자성을 북경을 빠져나가 달아났다.

그렇게 해서 청군은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북경에 입성했다. 북경을 빠져나간 이자성은 도망 길에서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청나라 역사에서 이자성은 모반자로 평가절하 돼 있지만 근년에 들어 이자성을 농민 반란을 이끈 지도자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원의 주인 된 만주족
북경을 접수하는 데 앞장선 오삼계는 평서왕(平西王)에 봉해졌다. 그가 나중에 삼번(三藩)의 난(亂)을 일으켜 청나라에 대항한 것을 봐도 마음속으로 청나라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짐작하게 해준다. 어쨌든 오삼계의 덕분으로 예상보다 쉽게 중원 땅에 들어선 만주인들은 결국 강남으로 달아나 항전하던 명나라의 잔여 세력까지 제압하고 중원을 장악하게 된다.

만주족은 철저히 중국의 환경에 적응하며 250년 이상 중국 대륙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된다. 이렇게 등장한 청나라는 내몽골을 장악한 데 이어 결국 전체 몽골의 운명에 좌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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