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酒食雜記] 부인지인(婦人之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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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 칼럼니스트
입력 2018-02-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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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종권 칼럼니스트]


배신감은 무능한 자의 자기연민이다. 속았다면,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사람을 보는 안목이 부족했던 것이다. '보는 것은 속이는 것'이라 했다. 보고싶은 것만 보이는 법이다. 껍데기만 보고 알맹이는 놓쳤거나 애써 무시했던 탓이다.

사람을 믿기는 쉽지 않다. 내가 나를 못 믿는데, 어찌 남을 믿을 수 있나. '내 속에 내가 너무나 많다'는 노래도 있다. 어떤 내가 진정한 나인지 과연 알 수 있을까. 하지만 믿지 않으면 늘 불안하다. 따라서 그냥 믿고,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들면 그저 기다리는 것이 낫다. 후회도 때론 유예해 두는 편이 나중에 '새옹지마(塞翁之馬)' 효과라도 기대할 수 있다.

예부터 군주에겐 삼심(三心)이 있다고 했다. 욕심, 의심 그리고 변심이다. 현대적으로는 조직이나 회사의 우두머리쯤이다. 조금이라도 지경을 넓히고 싶은, 재산을 불리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비전의 부재로 비쳐질 것이다. 이리저리 살펴보고도 한번 더 의심해야 실수가 적을 것이다.

아무리 간담상조(肝膽相照, 간과 쓸개를 서로 보일 만큼 마음을 터놓고 사귐)하는 사이였더라도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소매를 떨치고 돌아서는 것이 결단력이다. 먼저 떠난다면 진정 어린 배려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3년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시대에 창업 공신과 작별하는 것은 부득이하다. 궁하면 변하고, 변해야 통한다 하지 않던가.

그래서 인사는 어렵다. 구멍가게에서 사람을 쓸 때도 요모조모 따지는데, 국가 경영은 말할 나위가 없다. 문제는 '내가 나를 못 믿더라도 너는 믿는다'는 담대함과 '네 것은 네 것이고, 내 것도 네 것이다'는 아낌없이 베푸는 너그러움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초한(楚漢) 쟁패에서 100전 99패 끝에 단 한번의 승리로 천하를 차지한 유방이야말도 인사의 귀재이다. 그에게는 장막 안에서 천리 밖을 보는 장량이 있고, 싸우면 이기는 한신이 있었으며, 군대 살림살이를 빈틈없이 챙기는 소하가 있었다. 위기에 빠지면 처자식을 버리고 달아나는, 믿을 수 없는 위인이지만 부하는 믿었다.

힘은 산을 뽑고 기는 세상을 덮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항우는 불세출의 전략가인 범증마저 떠나 보냈다. 무엇보다 한신을 잡지 못해 해하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지고 말았다. 한신이 승부를 가르는 추였는데, 인사 문제로 기울었다. 항우는 한신을 창잡이쯤으로 썼지만, 유방은 소하의 말을 들어 대장군에 임명한다.

훗날 승리의 연회에서 유방이 한신에게 장수들의 역량을 평가하도록 한다. 한신은 이 자는 이러하고, 저 자는 저러하다 품평 끝에 자신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말한다. 유방이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왜 나에게 매인 몸이 되었느냐고. 한신은 “병사의 운용은 내가 낫지만, 장수의 운용은 대왕이 낫다”고 대답한다.

한신이 제(齊)를 정복하고 가왕(假王)을 청했을 때, 유방은 기분이 상했으면서도 “무슨 소리냐. 사내 대장부라면 진짜 왕이 돼야지”라며 제왕으로 임명한다. 천하를 제패하고 논공행상할 때, 챙길 사람은 많고 자리는 적었다. 불평불만이 쌓여 자칫 반란이라도 일어날 기세였다. 이에 유방은 심히 못마땅해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은 옹치에게 벼슬을 내린다. 그러자 자리 다툼도 사라졌다. 이런 것이 인사기법이다.

한신이 항우를 평가했는데, 한마디로 ‘부인(婦人)의 인(仁)’이라 했다. 항우가 부하들과 한솥밥을 먹고 간난신고를 함께하지만, 논공행상에서는 막상 주기로 한 관직이 아까워서 관인(官印)을 만지작거리다 그 모서리가 닳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장수의 자리가 상당기간 비워졌다. 나중에는 그 자리를 받은 장수들도 고마워하지 않았다. 진이 빠진 것이다. 항우가 천하를 손에 넣었다가 놓친 것도 이런 인사 때문이다.

제왕학은 용인(用人)의 기법이 기초이다. 성공한 제왕은 널리 현명한 인재를 구하되 완전무결한 사람을 구하지 않고, 작은 허물은 묻어주었으며, 과거 자신과의 불편한 관계를 기억하지 않았다. 제 환공은 자신을 반대했던 관중을 재상으로 앉혔다.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인데, 이 고사도 뒤집어 보면 환공의 뛰어난 용인술을 강조하는 것이다.

명(明)을 세운 주원장은 잔혹한 제왕으로 유명하다. 자신을 거역한 자는 9족이 아니라 10족을 멸했다. 그래도 천하를 손에 넣은 뒤 반대파를 적극 기용했다. ”지금의 성실함을 생각할 뿐, 이전의 과오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적이었던 원(元)의 장군과 관리들도 진심으로 복종해 제국의 기초를 닦았던 것이다.

적임자를 못 찾는 것은 시야가 좁거나 너그럽지 못해서다. 사람은 많다. 연못에서 찾는지 바다에서 찾는지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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