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평창]1964년 '한반도 첫메달' 북한 한필화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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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T&P 대표
입력 2018-02-0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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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주 사는 오빠 한필성과 극적 이산상봉...북한선 체육영웅

[궁금한 평창] # 26년 노메달 북한이, 남한에 꿀리지 않는 기록이 있다고?

 

[연합 = 1990년 3월3일 동계 아시안게임 북한 선수단과 함께 2일 동경 나리타 국제공항에 도착한 전 북한 국가대표 스케이트 선수 한필화씨. ]



88올림픽은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스포츠 경기가 우리 국민과 국가의 수준을 바꿔놓을 것이라고는, 그 이전엔 생각하지 못했다.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은 글로벌 문화와 안목을 안방으로 들여놓은 충격적 사건이었다. 딱 30년 뒤엔 2018년 2월 또 한번의 올림픽이 이 땅에서 열린다. 겨울올림픽으로는 처음 유치하는 대회이다. 이 대회에 대한 우리의 자부심은 작지 않다. 평창, 정선(이상 설상종목), 강릉(빙상종목) 등 3개 지자체에서 개최되는 이번 겨울올림픽(23회)은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삿포로와 나가노에 이은 세번째 대회다. 하계와 동계 올림픽을 모두 개최하는 나라로서는 세계에서 여덟번째다. 거기에 북한까지 참여하여 의미의 지평을 넓혀놓았다.

겨울올림픽에 관한 한, 북한의 자부심은 의외로 강하다. 이 근거없어 보이는 자신감은 뭘까.

물론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종합5위(금6, 은6, 동2)에 올랐던 대한민국에, 그 실력이로나 위상으로나 비할 바는 아니다. 5위라는 기록은 아시아국가 중에서 겨울올림픽 최고 성적이었다. 2014년 소치에서는 금3, 은3, 동2로 종합13위였지만, 이 대회의 편파판정 시비나 약물 논란 등 얼룩진 기억을 감안하면 나름으로 선전한 기록이다. 이번 대회는 소치의 아쉬움을 털어낼 야심만만의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에 비해 북한의 겨울올림픽 기록은 형편없다. 1992년 알베르빌대회 이후 메달 구경을 한 적이 없다. 26년간 노메달 국가인 셈이다.  

4년전 소치올림픽에는 아예 참가조차 못했다. 각 종목에서 와일드카드를 받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이후 12년만에 겪은 수모였다. 그랬기에 북한으로서는 이번 대회의 참여가 나름 각별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인데도 북한이 겨울올림픽과 관련해 살짝 '콧대'를 유지하는 대목은, 그들이 우리보다 이 대회에서 먼저 메달을 땄다는 사실에서이다.

대회 참여의 역사는 물론 남쪽이 훨씬 더 오래 됐다.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첫 겨울올림픽이 열린 이후, 10년만인 1934년 독일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 대회에 3명의 조선인 선수가 출전했다. 일제 강점기의 일이었다. 해방 이후 1948년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스위스 생 모리츠 올림픽에 스케이팅 선수 3명과 임원 2명을 파견했다. 우리가 첫 메달을 딴 것은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김윤만 선수 은메달) 때였다. 첫 참여 이후 68년만에 일군 감격이었다. 그런데 북한은 우리보다 무려 28년이나 일찍 은메달을 따낸 기록이 있다.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회에서였다.
 

[사진 = 1971년 2월17일 서울의 오빠 한필성과 삿포로 한필화의 통화.]



북한이 처음으로 출전한 이 대회에서 한필화(韓弼花, 1942년생)가 여자 빙속 3천미터에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한필화의 전설은 지금도 북한에선 큰 자랑거리다. 한필화는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으로 깜짝메달을 딴 뒤 1972년 삿포로대회에서 또 한번의 기적을 노렸지만 9위에 그쳤다. 그녀는 북한에서 김일성상 계관인과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는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궁금한 평창] # 겨울올림픽이 이어준 혈육인연, 한필화 남매의 이산상봉

이후 한필화가 또다시 뉴스에 등장했는데, 한국에 사는 오빠 한필성과의 '이산상봉' 사건이었다. 한필성은 6.25전쟁 때 월남하여 국내 경기도 파주에 살고 있었다. 1971년 일본 이사히신문의 주선으로 오빠는 이듬해 삿포르대회 참가를 위해 일본에 머무르고 있던 여동생 한필화와 통화를 했다. 이후 그녀를 만나러 갔지만 북한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필화는 1990년 삿포로 겨울 아시안게임에 임원으로 참가했다. 이 때 한필성이 일본으로 다시 찾아가 남매는 극적 상봉을 했다. 오빠는 북한에 있는 어머니와 월남 이후 처음으로 통화를 하기도 했다.

북한의 두 번째 메달은 1992년 알베르빌 겨울올림픽에서 나왔다. 여자 쇼트트랙 500m 경기에 출전한 황옥실이 동메달을 따냈다. 당시 결승에서 황옥실은 줄곧 선두를 달려 북한에 사상 첫 겨울올림픽 금메달을 안기는 듯했으나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고 코너에서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면서 3위에 그쳤다. 북한의 겨울올림픽 통산 메달은 은 1, 동 1개가 전부다.
 

[사진 = 1990년 3월8일 일본 삿포로 신치토세공항에서 만난 한필성-한필화 남매.]



[궁금한 평창] # 한필화, 넘어진 황옥실에 "미국이 힘 세다고 횡포"  

한편 한필화는 이 대회 단장으로 참여했는데, 막판에 미국선수가 황옥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그녀는 한국팀 관계자에게 "미국이 세계에서 힘이 세다고 스포츠 경기에서까지 횡포를 부리는 것이냐"고 따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북한은 2010년 밴쿠버 대회 이후 8년만에 겨울올림픽에 참가하게 됐지만 출전권을 획득한 종목은 없다. 피겨 스케이팅 페어에서 렴대옥-김주식 조가 출전권을 땄지만 참가 신청을 포기한 상태다. IOC는 북한선수들에게 와일드카드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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