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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69] 달라이 라마 호칭은 어떻게 건네졌나?

배석규 칼럼니스트입력 : 2018-02-10 10:03수정 : 2018-02-10 10:03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중생 제도를 목표로 하는 보살

[사진 = 육도윤회도]

진정한 행복은 각기 다른 중생들이 살고 있는 여섯 가지의 생존 영역인 육도윤회(六道輪廻)에서 벗어나는 것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불교에서는 말한다. 육도 윤회란 일체중생이 자신이 지은 선악 업인(業因)에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천계, 인계, 아수라의 여섯 개 세계를 끊임없이 윤회하는 것을 말한다. 이 육도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을 속세의 근심이 없는 편안한 심경에 이르는 것이라 해서 해탈(解脫)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진 = 송첸 감보]

그러니까 해탈은 속세적인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불교의 수행을 완수하고 육도윤회로부터 해탈해 대도(大道)를 깨달은 사람을 부처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수행을 통해 삼계(三界), 즉 욕계, 색계, 무색계(欲界, 色界, 無色界)을 탈각(脫却)해 무애자재(無碍自在)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부처는 불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일체의 중생을 제도(濟度)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 보살(菩薩)이라는 인간상이 생겨났다.

▶ 보살, 중생을 구할 때까지 열반에 들지 않아

[사진 = 간단사 불상]

보살은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로 일반적으로 ‘깨달음을 구해서 수도하는 중생’, ‘구도자’, ‘지혜를 가진 자’ 등으로 풀이된다. 그러니까 보살이란 스스로 깨달음을 여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머물면서 모든 중생이 먼저 이상세계, 피안(彼岸)에 도달하게 될 때까지 스스로 열반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서약한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뱃사공과 같은 사람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보살사상의 기본적인 주개념은 서원(誓願)과 회향(回向)이다.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것이 서원이고 자기가 쌓은 선근공덕(善根功德)을 남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것이 회향이다.

▶ 보살사상과 왕권의 결합
이 보살 사상이 왕권과 결부돼 생겨난 것이 보살 왕(菩薩王)사상이다. 티베트 불교의 보살 왕 사상은 여러 명의 보살 왕이 여러 왕국에 군림하면서 전체적으로 하나로 통일되는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티베트 불교에 수용된 보살 왕 사상은 여러 명의 보살 왕을 배출했다. 티베트 불교를 도입한 최초의 몽골 군주는 쿠빌라이로 그는 동시에 몽골 최초의 보살 왕이기도 했다.
 

[사진 = 팍파 국사]

쿠빌라이는 1260년 즉위와 동시에 티베트의 고승 팍파를 국사(國師)로 임명하고 제국의 종교 업무를 그에게 맡겼다. 팍파는 쿠빌라이를 보살 왕으로 인정하는 관정(灌頂)을 베풀고 그 대가로 티베트의 관할권을 넘겨받기도 했다. 관정이란 보살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이마에 대비수라고 부르는 물을 뿌려주는 의식을 말한다.

▶ 첫 번째 보살 왕 쿠빌라이

[사진 = 쿠빌라이와 팍파]

쿠빌라이는 그가 세운 대도에 보살왕의 수도라는 것을 나타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상징을 담았다. 우선 자신의 왕도 대도에다 불법의 옹호자로 민중의 우상이 되는 나타태자(哪吒太子)의 형상을 포진시켰다.
 

[사진 = 대도성(그래픽)]

또 대도성의 정문에 해당하는 숭천문(崇天門)에는 팍파의 권유에 따라 금륜(金輪)을 내걸었다.
 

[사진 = 북해공원 백탑]

금륜은 바로 보살의 화신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최고 지위인 금륜왕을 나타내는 것이다. 전륜성왕이란 무력이 아닌 정법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제왕으로 금륜, 은륜, 동륜, 철륜 등 네 왕이 있다. 전륜성왕은 또 인도 사상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제왕을 말한다. 그러니까 쿠빌라이를 전륜성왕 가운데서도 최고인 금륜왕에 비유한 것이다. 또 지금 북해공원 안에 있는 백탑도 티베트 불교의 상징물로 세워졌다.

쿠빌라이 시대 티베트 불교는 이처럼 몽골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특히 이때에는 팍파가 만든 문자를 모든 문서에 사용하도록 조칙을 반포할 정도로 티베트 불교의 영향력이 높았다. 하지만 몽골제국이 중국 땅을 잃고 초원으로 되돌아간 후 티베트 불교와의 인연도 끊어져 버렸고 팍파 문자도 사라져 버렸다.

동몽골이 오이라트와 초원의 패권 다툼을 벌이는 동안 몽골과 티베트 불교 사이에는 단절의 시간이 흘렀다. 그 끊어진 관계를 이어 몽골을 완전히 티베트 불교로 개종시킨 사람이 알탄 칸이었다. 첫 번째 보살 왕 쿠빌라이가 죽은 지 280여 년 만에 새로운 보살 왕 전륜성왕이 나타난 것이다.

▶ 두 사람의 역사적 만남
중국 대륙의 북서쪽 청해성(靑海省)에 있는 청해호(靑海湖)는 해발 3천m 이상 되는 곳에 있는 중국에서 가장 큰 염수호(鹽水湖)다. 그 둘레가 무려 360Km에 달해 서울에서 대구정도의 거리니 호수라기보다는 차라리 바다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린다. 1598년, 이 청해호 근처 차브치얄이라는 곳의 앙화사(仰華寺)라는 사찰에서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사진 = 총카파(황교 창시자)]

감청색 물빛이 가득하고 호수 주변에 대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곳에서 만난 두 사람은 몽골의 알탄 칸과 티베트의 고승 소남 갸초였다. 초청자인 알탄 칸은 투메트의 군주이자 全몽골의 실질적인 실력자였고 초청을 받은 소남 갸초는 당시 티베트 불교를 장악하고 있던 겔룩파(황교)의 고승이자 티베트 디푼사(寺)의 관주(貫主)였다. 겔룩파는 총카파(Tsong kha pa, 宗喀巴, 1357-1419)가 개창한 개혁 교단이었다.

이 교단은 황색 가사와 모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황모파 또는 황교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기도 했다.

▶ 몽골의 티베트 불교 신봉 선언

[사진 = 열하의 티베트 불교 사원]

승려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진 이 회동에서 두 사람은 이후 몽골인들은 티베트 불교를 신봉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불법이 쇠퇴하고 사람들이 악업을 행해 암흑의 피바다로 변했지만 한 쌍의 해와 달처럼 두 사람이 만난 덕분에 불법의 길이 열리고 피의 바다가 젖의 바다로 변했다."
 

[사진 = 알탄 칸과 소남 갸초]

이 같은 선언과 함께 알탄 칸은 소남 갸초에게 ‘지금강(持金剛)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를 바쳤다. 소남 갸초 역시 알탄 칸에게 ‘힘의 바퀴를 굴리는 왕’이라는 의미의 ‘차크라와르 세첸 칸’이라는 전륜성왕을 의미하는 보살 왕 칭호를 건넸다. 달라이 라마가 최초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달라이 라마의 탄생
달라이는 소남 갸초의 갸초의 뜻 ‘바다’를 몽골어로 번역한 ‘달라이’와 스승을 뜻하는 티베트어 ‘라마’를 조합시킨 칭호였다. 사상 최초로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를 사용한 사람은 소남 갸초였지만 그는 1대로 칭하지 않고 3대 달라이 라마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 것은 티베트 불교가 믿고 있는 전생(轉生)의 예에 따랐기 때문이다.
 

[사진 = 1대 달라이 라마 게둔 둡]

[사진 = 2대 달라이 라마 겐둥 갸초]

 
티베트인들은 스승이 죽으면 다시 어린 아이로 환생해 전생(前生)에서 다하지 못한 자신의 역할을 계속 수행해 간다고 믿는다. 그 것이 바로 전생(轉生)사상이다. 그래서 1대 달라이 라마 게둔둡과 2대 겐둥 갸초에 이어 소남 갸초를 세 번째 달라이 라마로 부르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달라이 라마의 전생은 4백년 이상 이어지며 현재 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갸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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