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냥 사랑하는 사이' 이준호의 '쓸모'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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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8-02-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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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 강두 역을 맡은 배우 이준호[사진=JYP엔터테인먼트 제공]

묵묵히 ‘생(生)’을 버티는 인물. 배우 이준호(28)는 줄곧 무언가를 짊어진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재빠르게 맡은 바 임무를 해내던 다람쥐(영화 ‘감시자들’)를 지나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년 동우(영화 ‘스물’), 야망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무사 율(영화 ‘협녀’)에 이르기까지. 그는 비극적인 상황들을 견디거나 타파하려 발버둥 치는 인물들이 되어왔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극본 유보라·연출 김진원)는 그런 이준호의 필모그래피와 인물의 정점을 찍는 작품. 쇼핑몰 붕괴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두 남녀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 속, 이준호는 모든 것을 잃고 삶을 견디는 남자 강두를 연기했다.

“제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모두 사건, 사고를 겪었어요. 깊이나 높낮이는 달랐지만 모두 아픔을 겪었죠. 영화 ‘스물’ 속 동우는 생활고에 시달렸고, 드라마 ‘김과장’의 서율은 야망과 권력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었어요. ‘협녀’ 율은 사랑에 빠져 쓸쓸한 퇴장을 맞고, ‘감시자’ 다람쥐는 죽고 말죠. 그런데도 ‘그냥 사랑하는 사이’ 강두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가장 깊은 슬픔과 아픔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요? 죽 나열하고 보니 공통점이 있지만 이런 캐릭터를 선호하는 건 아니에요. 그때그때 시나리오를 보고 마음이 동하는 작품을 고르는 편이죠.”

JTBC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 강두 역을 맡은 배우 이준호[사진=JYP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준호의 말마따나 강두는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생(生)’을 견디는 괴로운 아이다. 그는 아직 캐릭터를 벗지 못했다며, 유난히 몰입도가 깊었던 작품이라고 털어놨다.

“강두는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가진 인물이에요. (몰입을 위해서) 제가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을 주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촬영지인) 부산에 작은 원룸을 빌렸고 스스로를 가두려고 했어요. 연습생 기간에도 안 해보던 자취 생활이 시작된 거죠. 하하하. 집이 나쁜 건 아니었는데 그 공간 안에 저를 가두고 고립되다 보니 막막하고 쓸쓸하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저를 괴롭히면서 감정을 끌어내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그냥 사랑하는 사이’ 속 강두는 첫인상과 마지막 인상이 달랐던 캐릭터였다. 그는 캐릭터를 돌아보며 “역동성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정의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두 가지 버전의 강두를 생각했어요. 역동적이고 감정 기복이 심한 강두와 차분하고 감정 기복 없는 강두의 모습이었죠. 사실 저는 전자를 더 마음에 두고 있었어요. 강두의 첫인상이 그랬었거든요. 주도적으로 일을 벌이고 능동적인 면을 보이지만 혼자 있을 땐 축 처진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두 가지 버전을 준비했는데 감독님은 감정 기복이 적은 강두의 모습을 더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늘 피곤해 보이는 느낌이 좋다고요.”

JTBC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 강두 역을 맡은 배우 이준호[사진=JYP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지만 이준호는 ‘감정 기복이 적은 강두’의 모습이 쉬이 와 닿지 않았다. “내가 연기를 하고 있는 건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김 PD는 내내 불안해하고 있는 이준호를 “잘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다독거렸다. 거듭 질문하고 의문을 품던 이준호는 편집본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아, 이래서 차분한 느낌의 강두가 나았다고 하셨구나.” 이후로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저 강두를 믿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던 거다.

“강두의 감정을 끌어내는 데 문수(원진아 분)의 도움이 컸어요. 진아가 신인인데도 불구하고 여유가 넘치더라고요. (원진아의 모습을 보며) 저도 차분하게 캐릭터를 준비할 수 있었어요.”

원진아와의 연기 호흡은 그야말로 찰떡같았다. 카메라가 켜졌을 땐 문수와 강두 그 자체였지만 카메라가 꺼졌을 땐 마음 잘 맞는 또래 친구였다.

“그게 정말 신기했어요. 카메라가 켜지면 평상시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받는 거예요! 저는 본격적인 멜로 연기가 처음이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캐릭터에 완벽하게 구분을 둘 수 있게 되었어요.”

몸에 버튼이라도 생긴 것 같았다. 강두라는 버튼을 통해 온오프(ON OFF)가 가능해졌다. 덕분에 농도 짙은 애정신도 소화할 수 있었다고.

“제가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이긴 한데 강두에 몰입하고 있으니까 쑥스럽지 않더라고요. 부산에 5개월간 살 땐 정말 제가 강두 같았어요. 온전히 강두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죠. 그렇게 몰입해서일까요? 애정신도 편안하게 잘 찍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JTBC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 강두 역을 맡은 배우 이준호[사진=JYP엔터테인먼트 제공]


강두의 ‘러브라인’은 문수뿐만이 아니었다. 할멈과의 애틋한 ‘러브라인’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던 것이다. 이준호 역시 이를 공감하며 “나문희 선생님은 눈빛만으로도 상대를 움직인다”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나문희 선생님의 대사 중, ‘네 멋대로 해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눈물이 핑 돌았어요. 그게 선생님의 능력 같아요. 내공이라고 할까?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상대를 움직이게 하죠. 서로 대사를 주고받는데 생각지 못했던 감정까지 끌어내시는 거예요. 마음속으로 ‘뭔가 해봐야지’ 생각하게 되고 연기할 때 정말 재밌었어요. 설렘도 컸고요! 생각지 못한 데서 오는 반응도 너무 좋았죠. 그 덕에 강두의 감정이 솔직하게 잘 나온 것 같아요.”

이준호의 진실 된 감정을 보았기 때문일까? 베테랑 배우 나문희 역시 이준호에게 “착하게 잘한다”는 칭찬을 남겼다.

“사실 아직도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착하게 잘한다’는 게 어떤 느낌일까요? 꾸밈없이 진실 되게 연기했다는 느낌인가 혼자 추측해보고 있어요.”

어느덧 데뷔 10주년을 맞은 이준호. 그는 10년간의 연예계 활동을 돌아보며 “이제야 쓸모가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데뷔 초 매너리즘에 빠졌었다고 고백했다.

“2PM으로서 아주 바쁘고 사랑받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 나는 이 팀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예능은 나가기만 하면 통편집 당하고…. 하하하. 내가 잘하는 아크로바틱이나 열심히 해야지 했었는데 심하게 다쳐서 수술까지 했죠. 병실에 누워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쓸모가 없어진 느낌이었죠. 퇴원하자마자 영화 ‘감시자들’ 오디션을 보게 되었는데 하고 싶다는 열망이 엄청나게 강했어요. 저의 ‘쓸모’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었거든요. 덜컥 (영화 오디션에) 합격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일본에서 솔로 앨범도 냈어요. 그때부터 더욱더 쉬지 않고 달렸던 것 같아요. 멤버들을 위해, 팀을 알리기 위해서요.”

JTBC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 강두 역을 맡은 배우 이준호[사진=JYP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준호에게 2PM은 가족 같은 존재. “20대를 같이 보낸 친구”인 데다가 함께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동지이기도 했다.

“(박)재범 형 탈퇴 후 우리끼리 더 많이 뭉쳤던 것 같아요. 그땐 이유 없이 욕도 많이 먹었고 제 개인정보를 다 털려서 일주일 내내 휴대폰에 불이 난 적도 있었죠. 그런데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끼리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멤버들과 함께일 때와 혼자일 때 저의 모습은 아주 다른데요. 그 친구들이랑 함께 있으면 그냥 내내 즐겁고 재밌어요.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게 우리가 오래갈 수 있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과거 영화 ‘스물’ 인터뷰 당시 “서른 살까지 관객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배우’가 되겠다”고 약속했던 이준호. 올해 서른(빠른 1990년생으로 친구들 따라 ‘서른 살’로 카운트를 한다고)을 맞은 그에게 “그 약속을 이룬 것 같냐”고 묻자, 그는 깊은 고민 끝에 “어떤 것 같냐”고 되물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사실 저의 목표는 ‘20대를 불태워보자. 좋은 성과를 내보자’였거든요.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그걸 잘 해왔는지 의문이에요. 만족이 안 되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 ‘만족’이 안 되기 때문에 기분이 좋고, 또 스트레스도 받아요. 욕심내서 더 하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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