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류승룡 "연기는 장거리 경기…'염력' 통해 치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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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8-01-3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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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염력'에서 석헌 역을 맡은 배우 류승룡[사진=프레인 글로벌 제공]

“아빠가 이상한 능력이 생겼어.”

어느 날 갑자기 염력을 가지게 된 남자. 기이한 능력에 어리둥절하다가도 염력으로 돈 벌 궁리를 하며 즐거워하는 석헌은 지극히 평범한 가장이다. 과거 무능력한 아버지로 아내와 딸 루미를 버리고 도망쳤지만 10년 만에 다시 만난 딸 루미가 위험에 처하자 하신의 모든 것을 바쳐 그를 구하고자 한다.

영화 ‘염력’(감독 연상호)의 석헌은 그간 배우 류승룡(48)이 보여준 연기와는 다른 결을 가진 인물이다. 청나라 정예부대 수장(영화 ‘최종병기 활’)을 시작으로 카사노바(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킹메이커(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판소리학당 동리정사의 수장(영화 ‘도리화가’)에 이르기까지. 류승룡은 줄곧 누군가를 이끌고, 그를 성장하게 만드는 인물을 연기해왔다. 하지만 석헌은 ‘염력’을 통해 스스로 성장해가는 가장 보통의 인물.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얼굴로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정말 평범한 남자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딱 ‘아재’ 느낌이죠. 연상호 감독님도 아저씨 같은 몸매, 아저씨 같은 인상을 원하셨어요. 보통 ‘히어로’라고 하면 멋있고 근사한 느낌이잖아요? 그걸 완전히 뒤집기로 했죠. 평범한 사람이 초능력을 얻었을 때 어떤 모습일까? 그 재미를 관객들에게 보여드리려고 했어요.”

최근 아주경제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류승룡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류승룡은 석헌을 ‘평범한 아재 히어로’라고 정의했고, 가장 평범한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영화 '염력'에서 석헌 역을 맡은 배우 류승룡[사진=프레인 글로벌 제공]


“석헌이 겪는 일들은 실생활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잖아요? 영화를 보면서 판타지 같고,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길 바랐어요. 그래서 연기를 더욱 현실적으로 하려고 노력했죠. 땅에 발붙인 캐릭터라고 할까요? 그런 것에 주안점을 뒀어요. 무심하고 무책임했던 아빠가 점점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소통할 수 있는 모습. ‘성장’하는 석헌의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죠.”

류승룡의 노력은 고스란히 캐릭터에 반영되었다. 철없는 석헌의 모습부터 그의 인간적인 고뇌, 망설임 등이 녹아든 것. 그는 ‘액션 연기’ 조차, 석헌다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투박하고 서툰 모습을 보여주는 게 첫 번째였죠. 석헌은 갑자기 염력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그 능력을 발휘하려고 안간힘을 쓰잖아요? 라이터를 들어 올렸을 때 더 나아가 재떨이, 쓰레기봉투, 재떨이까지. 힘을 조절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저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석헌의 몸부림은 고스란히 관객의 웃음이 되었다. 몸을 비틀고 얼굴을 구기는 등 그야말로 ‘안간힘’을 썼기 때문.

“어휴, 얼굴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하하하. 힘을 쓰다가 탈진이 올 정도였죠. 석헌이도 얼마만큼 염력을 써야 하는지 모르니까 처음부터 내내 초집중을 하는 거예요. 석헌의 표정 연기가 재밌었다고들 해주시는데 그건 연 감독님의 디렉션이 큰 힘이 됐어요. 애니메이션 감독님이셔서 표정을 2D화 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추셨거든요. 제게 ‘양쪽 입술을 내려주세요’, ‘앞니 두 개만 보여주세요’ 등 섬세한 디렉션을 보여주셨어요. 이런 표정 디렉션은 처음 받았는데 굉장히 효과적이더라고요.”

영화 '염력'에서 석헌 역을 맡은 배우 류승룡[사진=프레인 글로벌 제공]


애니메이션 ‘서울역’에 이어 ‘염력’까지 연상호 감독과 두 번째 호흡을 맞추게 된 류승룡. 그는 연상호 감독의 굉장한 팬이라고 밝히며, 그의 연기력(?)을 칭찬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사이비’ 시사회에 갔다가 뒤풀이에서 만났어요. ‘다음에 같이 작품을 하고 싶다’고 하니, 바로 그 자리에서 ‘서울역’을 주시더라고요. 하하하. 애니메이션은 굉장히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더빙을 먼저 하고 그림을 그리는데 감독님께서 목소리 연기를 많이 도와주셨죠. 여자 목소리부터 아저씨, 좀비까지 전부 다 연기를 먼저 보여주세요. 정말 보물 같은 분이죠. ‘실사영화를 해도 잘 하시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부산행’을 잘 해내시더라고요. ‘염력’ 역시 신뢰가 갔죠.”

‘서울역’의 인연은 연상호 감독뿐만이 아니었다. 상대역인 심은경 또한 마찬가지. 앞서 두 사람은 영화 ‘불신지옥’, ‘광해’, ‘서울역’ 등 다수의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심)은경이와는 편안한 사이죠. 작품 외적으로도 많이 이야기하고요. 안정적으로 캐치볼 하는 사이라고 할까요? 캐치볼 할 때 상대가 못 잡을까 봐 걱정하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은경이와는 그럴 일이 없죠. 연기에만 전념할 수 있어요.”

심은경에 대한 류승룡의 신뢰는 매우 두터웠다. 이는 심은경 또한 마찬가지. 심은경의 앞선 인터뷰를 언급하며 “내내 고마웠다”는 말을 전달하자, 류승룡은 “제가 더 고맙죠”라며 웃어 보였다.

“은경이에게 그런 말을 했어요. ‘직장 동료와는 하루 한 끼를, 가족과는 두 끼를 먹지만 우리 스태프들과는 몇 개월 동안 세끼를 함께 먹는다’라고요. 함께 어우러져 지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우리가 행복해야 남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했는데 사실 제가 은경이 나이 땐 몰랐던 거였어요. 이제야 알게 됐죠. 은경이에게 그런 말을 전해주면서 스스로도 상기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영화 '염력'에서 석헌 역을 맡은 배우 류승룡[사진=프레인 글로벌 제공]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석헌처럼 류승룡 역시 내내 깨달음을 얻어가는 중이었다. 그는 숨 가빴던 과거를 떠올리며 “단거리 주자처럼 달리기만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연기와 철학에 변화가 생겼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7년의 밤’ 출연을 결정짓고 크랭크인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 덕에 제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죠. 나름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저를 돌이켜보니 너무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장거리 경기를 단거리 주자처럼 뛴 거죠. 어리석었어요. 두려워서 매순간 미친 듯이 달리기만 했던 것 같아요. ‘7년의 밤’을 찍고 개봉이 연기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아, 이건 장거리구나’ 깨닫게 됐죠. 긴 호흡으로 위로도 하고, 격려도 하면서 ‘내가 행복해져야 하는구나’ 알게 됐어요. 이런 깨달음이 ‘염력’에 녹아들었고요.”

류승룡의 깨달음은 연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다. ‘염력’을 통해 많은 것을 치유 받고, 행복을 느꼈다는 그는 오랜만에 관객들을 만나게 되어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끼고 있다고.

“배우는 항상 선택되는 입장이고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매 작품마다 설레고 긴장되고 두려운 것 같아요. 기대도 크고요. 오랜만에 관객들과 만나는 만큼, ‘염력’을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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