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스페셜-독립투사 남자현①]'여자 안중근'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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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T&P 대표
입력 2018-01-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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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현 탐구를 시작하며 - 일제 총독과 만주국 일본 전권대사를 처단하려 뛰어든 무장투쟁가

[남자현 빅시리즈]를 열며 - 내년이면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수립(1919년) 100년이 된다. 대한민국을 여기 이 자리까지 오게했던 사람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이 시간을 뜨겁게 열망하며 시대를 예비했던 선각자들,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현장을 줄기차게 되새기는 것은 미디어의 소중한 미션이 아닐까.
 

[사진 = 경북 영양 남자현여사 생가의 추모각에서(이상국 촬영)]



# 이 땅이 낳은 위대한 그녀를 모르고 사는 건 예의가 아니다

남자현이 풍운의 시대를 살아간 궤적은, 한 개인의 삶의 자취이기도 하지만 한국 여성사의 빛나는 일장(一章)이기도 하다. 시대와 상황은 언제나 인간 개인에게 질문한다. 지금 여기서 너는 무엇이냐. 너는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 삶의 모든 선택들은 그것에 대한 답이며, 온몸으로 살아낸 자취는 그 자체가 한 인간이 고심참담 끝에 ‘답안지(答案紙)’이다. 여기에 여성은 성(性)으로 분화되는 또다른 질문 또한 감당해야 한다. 남자현은 여러 겹의 질곡에 갇힌 식민지 여성으로 살았지만, 남성도 겁내는 험악한 투쟁의 지형 속으로 뛰어들어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역사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 정도는 제대로 알아야, 그 위대하고 비장했던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145년전인 1873년에 태어난 조선여자 남자현은 24세때 의병 전투를 치르던 남편을 잃고, 38세 때 나라를 잃었다. 경북 안동과 영양을 오간 대학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총명하던 소녀의 정신 속에는 투철한 유학(儒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투철한 교육자이기도 한 부친 아래에서 사서삼경을 배웠고 전시대를 관통해온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익혔다. 그녀는 시부모에게 효도하여 표창까지 받았고, 친정 부친의 뜻을 받들어 의병 활동에 기꺼이 참여했으며 남편이 전사하는 청천벽력 속에서도 유복자(遺腹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것은 그녀의 몸속으로 흐르는 유가(儒家)의 DNA가 쩌렁쩌렁하게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남자현이 기성 체제 속에 ‘알맞은 답’을 내밀며 살아가는 여성이었다면 여기까지면 되었다. 그녀의 고향 영양에서 조용히 살다가 세상과의 큰 불화를 겪지 않고 가만히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 혼자 사는 47세 시골아줌마가 3.1만세 운동을 하러 상경했다

남자현의 생은 우리에게, 그 이상으로 걸어간 길을 말해주려 한다. 자기를 넘어서고 나이를 넘어서고, 죽음을 불사하고 온몸을 던지기로 한 담대한 결단은 어느 시대, 어느 누구에게든 쉬운 일이겠는가? 그녀는 숨막히는 시대를 살면서 타협없는 정의의 에너지를 무한으로 분출해냈다. 가장 절망적인 날에, 해방의 희망을 눈앞에 선연히 그리며 눈을 감은 여인이다.

역사상으로 다른 시대인 이쪽의 편안하고 안전한 자리에서, 박물관 전시장을 들여다보듯 ‘남자현의 시대’를 엿보는 일은, 그녀의 가슴 속에 회오리치는 만주벌판의 바람을 감정이입하여 깨닫기 어렵게 한다. 그 불감(不感)에서 벗어나야 그녀를 만날 수 있다. 이 시대의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전시대 남자현이 되어보는 것, 되어서 그녀의 선택 앞에 서서 고뇌해보는 것.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역사를 스스로의 삶의 일부로 추체험하며 존재를 의미있게 확장하는 길이다.

규방(閨房)에 깊이 파묻혀 흔적 없이 살아가던 남자현은 ‘유가의 여성’으로서의 질문 이상의 질문을 가슴으로 떠안으면서 조선의 여류(女流)에서 이탈했고 ‘시대의 여성상’을 바꿔놓는 변경으로 내달린다. 촌가의 며느리가 47세에 죽음을 무릅쓰고 삼일 만세운동을 벌이기 위해 홀연히 상경하는 결단 속에는 일상적 삶을 뛰어넘은 자기 혁명이 숨어있다.

그녀는 왜 적지 않은 나이에 위험한 싸움에 앞장서기로 결심했을까. 나라도 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죽이며 사는 삶이 곧 ‘죽음’과 다름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녀는 ‘여자로서 큰 싸움판에 뛰어드는 것이 마땅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국망(國亡)의 문제에 과연 남녀유별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오히려 그런 관념 뒤에 숨어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일이야 말로, 시대적 문제를 회피하는 무기력함의 변명들이 아니던가.

# 만주로 달려가 손가락을 자르며 혈서를 썼다

그녀가 서울에서 만주로 행동 반경을 넓힌 것은 단순한 전략적 이동이 아니라, 역사적 소명을 좀 더 크고 지속적인 것에다 두었기 때문이다. 만주에서 그녀는 당면한 현실적 문제들의 해결부터 시작했다. 독립운동의 분파를 극복하고 통합으로 나아가는 운동을 벌인 것은, 그녀가 만주 투쟁의 궁극적인 목표를 누구보다도 투철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좌이다.

무려 세 개의 손가락을 베어 가며 혈서를 썼던 것은, 스스로의 고통으로 결의를 보여줌으로써 동지들이 천착하는 불화의 잔 가지들을 잘라내려 함이었고 또한 국제연맹에 손가락을 보낸 뜻은 대한의 여성이 이토록 치열하게 독립을 원하고 있다는, 염원의 강도(强度)를 확인시켜주고자 함이었다. 그녀의 단지(斷指)는 이미 목숨 따윈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는 필사의 상징이었고, 그녀를 만주 투쟁사에서 잊지 못할 별로 남게 하는 것은 바로 저, 죽음 앞에서 꿈쩍 않는 철혈여심(鐵血女心)의 힘이었다.

조선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서슴지 않고 국경을 넘어 서울로 잠입했고, 피 마르는 작전 일정 속에서, 민족의 적을 처단할 무기를 만지작거렸다. 죽음을 넘나드는 추격전 끝에 저격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후 61세의 나이로 이번에는 만주국의 일제 실세인 전권대사를 죽이러 간다. 하얼빈에서 무기를 전달받는 과정에서 내부 밀고로 체포되었지만, 안중근, 이봉창의 의열(義烈) 전통과 어깨를 나란히 할, 한국 여성투사의 용맹무쌍한 기개가 아닐 수 없다. 남자현의 일제 요인 저격 프로젝트의 특징은, 조직의 밀명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투지와 선택에 기반한 작전으로 보이는 점이 있다. 상황이 도와주었다면, 우리는 일제의 거물을 암살한 ‘여성 의거’를 역사에 기록해놓고 있었을 것이다.
 

[사진 = 경북 영양 남자현 생가 앞에 선 필자.]



# 일본 총독과 만주국 일제 대사 암살에 뛰어든 여성

또한 그녀에게서 옷깃을 여미게 되는 것은 죽음에 임하는 태도이다. 하얼삔 감옥 속에서 그녀는 단호히 단식을 선택해 스스로 죽음을 맞았다. 모진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죽음조차도 일제에게 그 선택권을 주지 않겠다는 서슬퍼런 정신을 내보였다. 거기엔 나이가 주는 유약함도 없었고 여성이 지닐 수 있는 나약함도 없었다. 그녀는 하루하루 가중되는 굶주림의 고통과 투쟁하면서 서서히 생을 놓았다. 일본은 뜻밖의 상황에 놀라 그녀를 막판에 병보석으로 석방하는 조치를 취하기까지 한다.

또 하나 이 여인의 위대성을 확인시켜주는 것은, 열렬한 대한독립의 신념이다. 임종의 자리에서 남자현은 해방의 그날 독립된 우리 정부에 바칠 축하금을 내놓는다. 1933년의 일이니, 해방까지는 12년이나 남았다. 우리는 이미 역사책을 통해 이것을 알고 있지만 남자현은 오로지 신념 속에서 그것을 믿었다. 그녀가 죽은 이후에도 얼마나 많은 지식인들과 리더들이 변절하고 훼절하고 말을 바꿨던가. 그들은 마음 속에서 해방의 희망을 지웠지만, 남자현은 죽음 앞에서 이 나라의 서원(誓願)을 그토록 굳게 세우지 않았던가. 그리고 혈육들을 교육시켜 새 나라를 건설할 인재로 성장시킬 것을 당부한다. 선각(先覺)! 미리 깨닫고 그것을 실천해나가는 일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던가.

남자현. 그녀를 이 땅의 역사가 낳은 더없이 위대한 여성임에 틀림없다. 궁벽한 시골에서 키운 자신의 지식을 가차없이 실천했다. 스스로를 혁신하여 나라를 되찾는 시대의 소명에 몸을 내던졌다. 거침없이 총과 화약을 들고 싸웠고 두려움 없이 죽음에 임했다. 식민지의 여성으로 가장 자기초월적인 생을 걸었다. 거대한 절망 앞에서는 여성 또한 민족 구성원으로서의 주체성을 지녀야함을 일깨웠다.

한 시대의 질곡을 프로메테우스처럼 지고자 했던 이 여인을, 이 시대의 후손들은 알고 있을까. 왜 이 위대한 인물을 이토록 쉽사리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을까. 남자현을 모르고, 그녀의 투쟁에 빚진 이 땅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손가락 마디마디 뚝뚝 떨어지는 피얼룩의 역사 위에서 나날을 숨쉬고 있으면서도, 이 아름다운 선배 하나를 까맣게 잊었단 말인가.  이상국 아주T&P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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