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제규범의 블루오션을 찾아서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노승길 기자
입력 2018-01-25 13:56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강준석 해양수산부 차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종은 가장 강인한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 찰스 다윈의 말이다. 지구상 최강 포식자로 군림한 공룡은 빙하기라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했다. 그러나 이에 적응한 수염고래는 오히려 개체수가 크게 늘며 서식지 면적도 3배나 증가했다.

세계 참치 생산량의 10%를 차지하는 우리나라는 국제 어류생산 및 교역분야에서 존재감이 상당하다.

급변하는 국제 수산 환경 속에서 우리나라는 공룡이 될 것인가 아니면 고래가 될 것인가? 이를 결정짓는 키워드는 국제규범 선도이다. 우리 식생활에 깊이 자리잡은 캔 참치부터 고급 횟집에서 볼 수 있는 이빨고기(메로)까지 국제규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고, 이런 규제는 날로 강해지고 있다.

전 세계가 탈(脫)규제와 자유무역으로 향하는 이때 수산제품의 생산과 유통을 둘러싼 국제 규제는 왜 반대 방향으로 흐를까?

그 기저에는 불법어업 문제가 있다. 인터폴에 따르면 불법어업으로 어획·유통되는 물고기가 한 해 2300여만t에 이르고, 이로 인해 23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국가 간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불법어업을 근절하기 위해 개별 국가와 국제 수산관리 기구는 다양한 감시 및 통제 규범을 도입했다. 이 틀을 벗어날 경우, 정상적인 어업이나 교역활동이 불가능하다.

유럽연합(EU)은 2010년부터 불법 어선을 통제하지 못하는 국가로부터의 수산물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도 지난 2009년부터 격년으로 '불법 어업국가' 목록을 발표하고, EU와 유사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런 조치의 중심에는 어획증명제도(CDS, Catch Documentation Schemes)가 있다.

CDS란 어획부터 판매 직전까지 서류를 통해 어획물의 적법성을 증명하는 제도다. 현재 EU를 비롯한 여러 국가와 국제수산관리기구에서 이 제도의 적용이 활발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CDS에 국제적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2015년부터 자발적 지침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수차례 기술협의를 거쳐 지난해 7월 지침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2016년부터 한국형 CDS를 개발하는 상황이어서 자칫 잘못하다 FAO가 수립하는 국제 표준과 어긋날 위험이 있었다.

이에 따라 우리가 운영하는 방식의 CDS가 국제 표준에 녹아들도록 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FAO 기술협의에 참여해 우리나라의 CDS 원칙과 표준을 대부분 반영했다.

그 결과 국제 표준과 거의 일치하는 CDS를 갖추게 됐다. 이는 우리나라 기준이 국제표준으로 채택된 첫번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CDS는 국제 규범의 블루오션이다. 현재 5대 참치기구 중 2개 기구만이 참다랑어에 CDS를 도입해 적용하고 있다. 비율은 전 세계 참치 어획량의 0.5%에 불과하다.

연간 320조원에 이르는 전 세계 수산물 교역시장에 새로 적용될 국제 규범은 아직 빈 페이지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23억 달러어치의 수산물을 수출한 우리나라로는 CDS의 향방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국제표준 마련에 기여한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앞장서 빈 페이지를 채워갈 계획이다.

한국형 CDS 표준이 국제사회에 전파될 경우, 규제 강화라는 흐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수산물 수출은 날개를 달 전망이다.

향후 우리나라 표준을 벤치마킹하려는 국가와 적극 협력, 한국 기준이 세계 기준으로 정착되도록 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빙하기에 번성한 고래처럼 급변하는 국제환경에 슬기롭게 적응, 국제 수산 규범을 선도하는 국가가 됐다.

한때 서방 선진국이 주도한 국제 입법(rule-making) 무대에서 해양수산부가 양성한 국제 협상인력이 종횡무진 활약하는 것이 보람되고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표준을 선도하는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