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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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전통문화연구회 회원
입력 2018-01-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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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아서 펜 감독, 1967년)는 미국 대공황 시절 현실에 절망한 남녀 2인조 강도의 행각을 그린 명작이다. 높은 실업률, 암울한 시대 분위기로 처져 있던 반 세기 전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이 영화에 열광했다.

본래 제목은 ‘보니와 클라이드’인데, 한글 제목이 내용 못지않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때는 대개 일본을 통해 영화를 수입했기 때문에 일본 제목을 그대로 썼는지 모른다. 어쨌든 ‘내일은 없다’라는 절규가 관객을 사로잡았다. 2년 뒤 나온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조지 로이 힐 감독)도 한글 제목은 ‘내일을 향해 쏴라’였다. 이 역시 손꼽히는 명화인데 굳이 ‘내일’을 넣었다.

내일은 미래나 희망과 동의어다. 그런 내일이 없을 때 오는 좌절감을 차용한 것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다니엘 밀로의 저서 <미래중독자>(원제 '내일의 발명')에 따르면, 인간은 ‘내일’이라는 것을 발명했고 ‘지금 여기’보다는 ‘내일 저기’가 나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내일을 설계하고 살아가는 것은 일상의 기본 틀이고 삶의 목표다. 그러나 기초생계가 불안하면 정상적으로 내일을 꾸려나갈 수 없고, 그게 오래 가면 삶은 무너진다.

그래서 맹자는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을 지닐 수 없다(無恒産無恒心, 무항산무항심)”고 양혜왕(梁惠王)에게 설파했다. 나아가 그걸 견디다 못해 일탈하는 백성을 처벌하면, 무작정 사지(死地)로 내몰고 그물질하는 짓이라고 경고했다.

지금 우리나라 실업률은 줄지 않고 '헬조선', '흙수저' 등의 말들은 여전하다. 위정자들은 입만 열면 '국민생활 안정'을 들먹이지만, 실상은 맹자의 경고와 반대로 가고 있다. 그래서 내일이 보이지 않고, 삶은 더욱 고단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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