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칼럼] 영화 ‘1987’ 연희와 2018년의 수많은 ‘연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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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장영희 시청자미디어재단 서울센터장·경제학박사
입력 2018-01-2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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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칼럼]

 

[사진=장영희 시청자미디어재단 서울센터장·경제학박사]



영화 ‘1987’을 봤다. 관객 600만명을 막 돌파하려던 시점까지 좀 망설이기는 했다.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으로서 30년 전 과거 속으로 아무 생각 없이 뛰어들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보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여느 영화와 달리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마침내 화면이 까맣게 될 때까지 앉아 있었다. 다행히 펑펑 울지는 않았다. 눈가가 젖은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영화관을 나와서도 금방 2018년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영화 속 1987년에 가 있었다. 제작진이 너무나 고증을 잘한 탓일까. 그 시절의 신문과 잡지, 서류 속 활자, 티셔츠와 청바지, 시청광장과 고문실 욕조는 가슴 한편에 완전히 꺼진 줄 알았던 불덩이를 점화시켰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87은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시작으로 6월 항쟁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변곡점이 된 슬프고도 뜨거웠던 1987년의 이야기이다. 국가폭력에 희생된 두 열사 박종철과 이한열은 필자와 한두살 차이의 동년배나 진배없다.

1983년부터 언더서클에서 방학 때면 합숙까지 하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시위가 다가오면 늘 두려움에 떨었다. 앞장서기가 겁이 났다. 선배들이 D데이 현장에서 학우들에게 ‘독재타도, 민주주의 쟁취’ 유인물을 뿌리고 구호를 외치며 선두에 나서자마자 사방에서 백골단이 뛰쳐나왔다. 머리채를 잡히고 발길질로 거꾸러진 선배들이 사복경찰들에 질질 끌려가는 광경을 목도해야 했다. 무력감과 참담함에 몸을 떨었다. 그 뒤에 들리는 소식은 공포 그 자체였다. 남영동에 끌려가 피투성이가 되었다거나 모진 고문을 받아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접한 영화후기에서도 1987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아내와 함께 온 50대 남성 관객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내가 87학번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더 엄혹했던 유신시대를 살아낸 78학번 아버지와 함께 보았다는 아들은 민주투사였던 아버지가 엔딩크레딧으로 1987년 6월광장 사진이 올라오자 "내가 겁쟁이였다”며 엉엉 소리내 울었다고 썼다. “같이 본 딸이 나를 안아주면서 ‘고맙다’고 얘기했다”는 한 여성 관객의 후기에선 이 영화는 세대 간 격차도 훌쩍 뛰어넘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론을 할 수준도 못 되고 평가할 마음도 없지만 이 영화가 잘 만들어진 첫 민주화운동 영화라는 데는 공감한다. 볼 때는 영화에 빠져들어 잘 몰랐는데 끌어가는 형식도 사뭇 달랐다. 한두명이 아니라 여러 주인공이 끌어가는 릴레이식이라고나 할까. 이른바 ‘프로타고니스트’에 관객이 감정을 이입해서 카타르시스에 도달하게 하는 고전적 작법이 쉬웠을 텐데, 장준환 감독은 왜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1987이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여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1987은 ‘박처원’으로 대변되는 악의 축을 놓고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은폐·조작된 진실을 드러내는 데 한몫하는 최초 검안의·검사·부검의·교도관·기자·민주화운동가·성직자들이 바통을 이어 달리면서 결국 광장시민이 주인공이 되는,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독특한 구조다.

이 영화는 스크린 밖에서도 여전히 상영 중이다. 언론이 열심히 당시 실존인물들을 소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초 검안의 오연상 원장을, 사체보존과 부검을 밀어붙인 최환 검사를, 이부영·김정남 선생을, 한재동 교도관을, 그리고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와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옹의 근황을 언론에서 만났다. 아들을 떠나 보내며 “철아 가그래이.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라고 말했던 박옹은 병상에서 부산경찰서장의 사죄를 받았다니 좀 위안이 되었을까.

사실 1987에서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유일한 허구 인물이자 여성 캐릭터인 ‘연희’였다. ‘감독이 왜?’ 이 궁금증은 영화 후반부에서 그냥 풀렸다. 연희는 광주 비디오를 보다가 울며 뛰쳐나오고 시위대와 최루탄에 기겁을 하고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라고 동아리 선배 이한열에게 따져 묻는 평범한 대학 신입생이다. 불의에 저항하는 이들을 외면하던 연희는 신문 1면에서 최루탄에 쓰러진 이한열을 보고 달려간다. 그가 달려간 길의 끝에는 1987년 6월 10일의 광장이 열려 있다. 그 광장에는 수많은 ‘연희들’이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고 있다. 연희는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를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서슬 퍼런 군부 독재시절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칠까봐 참고 외면하다가 끝내는 떨쳐 일어나 불의에 맞섰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1987은 끝에 비로소 타이틀이 뜨는 끝이 시작인 영화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며 ‘그날이 오면’ 노래가 흐른다. 1980년 5월의 광주와 1987년 6월항쟁, 2016년 겨울의 촛불을 지나왔건만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날, ‘그날’은 오지 않은 것일까. 아니 본디 민주화는 민주주의가 되어 간다는 뜻이므로 민주주의의 완성은 영원히 진행형이 아닐까. 민주주의는 나라의 주인인 수많은 연희들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공동체의 안녕을 생각하고 열심히 바르게 살아야 앞으로 간다. 그런 점에서 지방선거가 있고 개헌이 추진되는 2018년은 수많은 연희들에게 또 하나의 1987이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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