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교 칼럼]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해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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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교 초빙논설위원, 바른정책연구원장
입력 2018-01-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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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교 초빙논설위원.바른정책연구원장]

영화 ‘1987’이 절찬 인기를 누리고 있다. 5060세대들뿐만 아니라 2030세대들의 관심도 크다. 31년 전 사건을 그린 이 영화가 유독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주의에 대한 주제 의식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민주주의 발전과 궤를 같이해 왔다. 자유의 확장이요, 인권의 증진이요, 참여의 확대였다. 1987년 여름은 뜨거웠다. 서울의 대학가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외쳤다. ‘독재타도 호헌철폐!’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 만세를 소리쳤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교차했다. 박종철 열사는 경찰의 물 고문으로 사망했다. 이한열 열사는 직격 최루탄에 맞아 숨졌다. 수많은 이들이 부상당하고, 경찰서 유치장으로 끌려갔다. 군사 정권은 항복했다. 체육관 선거는 사라지고 대통령 직선제가 이뤄졌다. 경제적 근대화에 이어 민주화의 시작이었다. 마틴 립셋(Martin Lipset) 교수의 주장이 현실화되었다. 대한민국은 유수한 정치경제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조차 성공한 모범 사례로 극찬했다.

하지만 외양은 갖추었지만 내실은 부실했다. 작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결정판이었다.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된 최고 권력이 무너졌다. 선출의 정통성과 더불어 권력 운용의 정당성이 중요함을 일깨워 주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헌법 위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고 탄핵을 결정했다. 정치 과정의 민주화를 넘어서서 민주주의 공고화를 이루지 못했다. 형식적인 민주주의는 달성했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는 과제로 남아 있다. 정치 민주주의는 경제 민주주의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사회적 ‘자유’는 거리가 멀고, 기회의 ‘평등’은 말뿐이다. 민주주의가 다시 부각된 이유이다.

영화 속의 추억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가 눈앞에 놓여 있다.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이자 사명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재성찰이 필요하다. 조기 대선으로 집권한 여권의 책임은 크다. 지난 9년간의 보수 정권 청산은 목적이 될 수 없다. 명분과 기준도 불분명하다. 정치 보복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과거의 잘못이 모두 ‘적폐’일 수는 없다. 전직 대통령을 모두 감옥에 보내는 게 민주적 발전은 아니다. 소급해 올라가다 보면 보복의 순환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촛불 집회와 민주화 운동의 과실을 현 정권이 독점할 순 없다. 겸허하게 국민의 뜻을 떠받들어야 한다.

현 정부는 지향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분명한 방향을 천명해야 한다. 바람직한 정치체제이든, 이념적인 정향이든, 정치의 과정이든 소신을 밝혀야 한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좌편향적 개헌 추진에 가타부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특히 헌법의 기본 정신인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은 무엇인지? 청와대에 포진한 운동권 출신 인사들의 전향 여부와 현재 이념 성향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임종석 비서실장도 예외가 아니다. 학생 운동시절 가졌던 북한식 인민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밝혀야 한다. 색깔론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공직자의 이념 고백은 국민이 권력을 위임한 데 대한 기본적인 의무이다.

보수 진영 또한 자유롭지 않다. 보수 쇄신과 재건은 민주주의 철학 재정립에서 시작된다. 탄핵에 대한 반성 이벤트, 보수 쇄신 세미나만으론 안 된다. 반대를 위한 반대, 정권의 실수에 기댄 반대급부로는 정권을 창출할 수 없다. 탄핵의 원인이 된 정치제도의 ‘민주적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헌법 개정, 선거제도 개혁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 분산과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권력기관 개혁도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검찰과 경찰의 개혁에 동참해야 한다. 다만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지킬 필요가 있다.

보수의 낡은 민주주의관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인민(민중)민주주의에 대항해서 자유민주주의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다만 공동체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평등과 분배의 정의도 고민해야 한다. ‘따뜻한 보수’가 가야 할 길이다. 또한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면서 참여민주주의 요소를 부가해야 한다. 루소가 이미 간접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인터넷 네트워크가 발전했다. 정보의 공유도 확장되었다.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통로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대표들의 대리인 문제, 즉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와 사익 추구를 제어해야 한다. 공공영역에 시민들의 참여가 높아질수록 민주성과 투명성이 제고된다. 다만 인기영합주의(populism)는 경계해야 한다. 또한 엘리트 민주주의를 탈피해서 대중민주주의로 거듭나야 한다. 국민의 교육과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 시민 대중에 정치적인 기반을 둬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이다. 시민단체는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발적인 시민단체를 육성하고 연대해야 한다. 현대민주주의는 공감과 소통으로 실행된다. 이성과 대결과 권위가 아닌 감성과 포용과 소통의 시대이다. 민주주의는 결국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져야 한다. 만만치 않은 프로젝트이다. 보수의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격동의 작년을 되돌아보면 2018년의 과제는 명확하다. 진보든 보수든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우리의 정치적 원리이자 도덕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전망을 위한 민주주의의 재구성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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