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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52] 몽골 공주는 어떤 역할을 했나?

배석규 칼럼니스트입력 : 2018-01-24 08:05수정 : 2018-01-2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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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몽골 제국의 정복지 통치방법

[사진 = 몽골제국 지배영토]

충선왕 한사람의 얘기를 비교적 길게 끌어왔다. 충선왕의 치세 과정을 통해 몽골의 영향권 안에 있었던 고려의 상황을 되짚어 보기 위한 것이었다. 몽골제국이 정복지를 통치하는 방법은 대략 세 가지다. 정복지를 직접 통치하는 방법, 몽골의 왕족에게 주어서 통치하게 하는 방법 그리고 정복지를 독립국 형태로 두고 실제로는 제국 안의 조직처럼 강한 통제와 간섭으로 다스리는 방법이 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통치 방법은 거의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였다. 중국대륙의 경우가 첫 번째이고 킵차크한국, 일한국 같은 경우가 두 번째다. 고려에 대한 몽골의 통치는 세 번째 방법에 해당한다.

▶ 마음대로 바꿔 친 고려왕
충선왕의 경우를 봐도 몽골이 여러 형태로 고려에 내정에 간섭하고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취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고려왕을 마음대로 바꿔치기 했다는 사실이다. 우선 충렬왕과 충선왕 모두 왕위에서 밀려났다가 다시 왕위에 오르는 과정을 겪었다. 그 폐위와 복위의 결정은 완전히 몽골황실의 몫이었다.
 

[사진 = 충숙왕]

말하자면 고려왕에 대한 인사권을 몽골의 황제가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몽골 황실과 친소관계나 연대관계가 왕의 자리를 결정하는 바로미터가 됐다. 충선왕의 둘째 아들로 왕위에 오른 충숙왕(忠肅王 1313-1339)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머니 의비가 몽골 여인이었으니 충숙왕의 혈통은 엄밀히 말하자면 고려 쪽 보다는 몽골 쪽에 더 가까운 인물이었다.
 

[사진 = 충혜왕]

여러 차례 몽골에 소환 당하는 수모를 겪었던 그도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대도로 갔다가 5년 만에 돌아와 복위하는 과정을 겪었다. 충숙왕에 이은 충혜왕(忠惠王 1330-1344)도 예외가 아니었다. 1330년 왕위에 오른 충혜왕은 향락과 여색에 젖어 지내다 2년 만에 대도로부터 소환을 당하면서 아버지인 충숙왕에게 다시 왕위를 넘겨줬다. 충숙왕이 죽은 뒤 어렵게 다시 왕의 자리에 오른 충혜왕은 기철 등이 왕의 실정을 몽골 황실에 알림으로써 폐위를 당했다.

고려시대의 연산군으로 불릴 정도로 실정이 많았던 그는 1344년 게양현(揭陽縣)으로 귀양을 가던 그는 도중에 악양현(岳陽縣)에서 서른 살의 나이로 숨졌다.

▶ 부원세력 요청으로 폐위된 충정왕

[사진 = 충목왕]

이어 왕위에 오른 충혜왕의 맏아들 충목왕(忠穆王:1344-1348)은 8살의 어린 나이였다. 어머니인 덕녕공주(德寧公主)가 섭정에 나서 국가 기강을 바로잡고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병약한 어린 왕은 즉위 4년 만에 12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대칸 토곤 테무르는 왕위를 충혜왕의 둘째 아들 충정왕(忠定王:1348-1351)에게 넘겨줬다.
 

[사진 = 충정왕]

12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충정왕은왜구가 출몰하고 외척이 발호하는 어지러운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폐위 시켜달라는 부원세력들의 요청에 따라 혜종 토곤 테무르는 충정왕을 3년 만에 왕의 자리에서 끌어 내렸다. 대신 충숙왕의 둘째아들이자 충혜왕의 동생인 강릉대군(江陵大君) 기(祺)를 고려왕으로 봉했다. 그가 바로 공민왕이다. 강화로 추방된 충정왕은 이듬해 15살의 나이로 독살 당했다.

▶ 몽골 정세 따라 흔들린 고려왕실
비슷비슷한 이름의 忠자를 앞에 둔 왕들이 열거돼 혼란스러울 수 있겠지만 적어도 여섯 명의 왕들 가운데 8살에 즉위해 이내 숨진 충목왕을 제외하고는 정상적으로 왕의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면 된다. 모두 한차례 이상 폐위 당하는 과정을 겪었다. 몽골황실은 고려왕을 마치 지방의 관리를 바꿔치듯이 마음대로 교체했다.

모양은 독립된 나라의 형태였지만 실제로는 몽골 황실이 중요 사항을 마음대로 결정하는 예속된 나라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몽골 황실에 새로운 대칸이 즉위하거나 몽골의 집권 세력에 변동이 있을 때는 고려의 왕실도 함께 흔들렸다. 정권의 안정성이 있을 리 없었다.

▶ 몽골출신 后妃 여덟 명
가뜩이나 안정성이 없는 정권을 더욱 흔들어 놓은 것은 몽골 출신의 왕비들이었다. 충렬왕 때부터 공민왕에 이르기까지 일곱 명의 몽골 공주를 비롯해 모두 여덟 명의 몽골 여인이 고려왕의 왕비가 됐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고려를 부마국으로 삼아 마음대로 통제하겠다는 몽골황실의 의도대로 남편인 왕을 마음대로 주무르면서 권력을 행사하려 했다.

그 때마다 여러 가지 분란이 일어나면서 정국은 어려움에 처했다. 충렬왕의 부인이자 쿠빌라이의 딸인 제국대장공주는 왕의 원래 부인이었던 정화궁주를 밀어내고 제 1왕후가 됐다. 그녀는 지배국의 공주신분을 내세워 국왕보다 더 강한 정치력을 행사했다. 정화궁주를 감금해 왕과 만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고 시동생을 역모로 몰아 유배 보내면서 재산을 탈취하기도 했다.
 

[표 = 몽골 공주 출신 왕비]

▶ 대부분 부부사이 좋지 않아

[사진 = 몽골왕비 목식]

충선왕을 왕의 자리에서 밀어낸 계국대장공주는 가장 적극적으로 권력을 행사한 경우다. 충선왕은 또 한 명의 몽골여인을 후비로 취했는데 충숙왕을 낳은 의비(懿妃)가 바로 그녀다. 하지만 이 여인은 몽골황실 출신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특별히 영향력을 행사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충숙왕의 몽골왕비 복국장공주(濮國長公主)도 충숙왕과 사이가 좋은 고려인 공원왕비(恭元王妃) 홍씨를 질투해 투기를 부리다가 왕에게 구타당하기도 하는 등 사이가 원만치 못했다.
 

[사진 = 고려사 후비열전]

홍씨의 언니는 충선왕의 후비였던 순화원비(順和院妃) 홍(洪)씨다. 홍씨는 1315년 아들 정(禎)을 낳았는데 그가 나중에 왕위에 오르는 충혜왕이다. 홍씨는 충숙왕이 복국장공주와 혼인하면서 궁 밖으로 밀려났다. 그래서 왕이 홍씨를 몰래 만나러 다니기까지 했다. 복국장공주가 심한 질투와 왕에 대한 증오심으로 3년 만에 요절하자 몽골에서 사인 조사를 나오는 등 법석을 떨기도 했다.
 

[사진 = 숙령휘령공주 관련 고려사]

충숙왕은 이어 1324년 몽골의 조국장공주(曹國長公主)를 맞았으나 그녀는 아들을 낳은 뒤 산욕으로 이내 숨졌다. 그렇게 되자 왕과 홍씨의 부부관계가 더욱 좋아져 1330년 둘째 왕자 기(祺)를 출산하게 된다. 그가 바로 공민왕이다. 충숙왕은 한차례 왕위에서 물러나 원나라에 머물고 있을 때 몽골 귀족 가문의 숙공휘령공주(肅恭徽寧公主)를 맞아 들여 충숙왕은 모두 세 명의 몽골여인을 후비로 두었다.

경화공주에 봉해진 그녀는 충숙왕이 죽은 뒤 충혜왕에게 강간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 때문에 몽골 황실은 충혜왕을 붙잡아 가 귀향을 보냈다. 1344년 충혜왕이 귀향길에서 죽었는데 공교롭게 공주도 그해 죽었다.

▶ 가장 금실 좋았던 노국대장공주

[사진 =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

충혜왕의 왕비 덕령공주는 남편의 패륜행위로 마음고생을 하다 아들 충목왕(忠穆王)이 즉위하면서 섭정 노릇을 했다. 그녀는 충정왕(忠定王)이 왕위에 올랐을 때도 심하게 정사에 간여했다. 공민왕의 부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 인덕왕비는 고려 왕실에 들어온 몽골 여인 가운데 가장 왕과 사이가 좋았다. 그녀는 몽골의 위왕(魏王) 볼로 테무르의 딸로 공민왕이 원나라에 입조해 있던 1351년에 혼인을 했다.
 

[사진 = 노국대장공주]

결혼한 뒤 8년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뒤늦게 임신했다. 이에 기뻐한 공민왕이 죄수들을 석방하는 특사까지 단행했다. 그러나 난산으로 아이를 낳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그녀가 죽자 공민왕이 낙담해 3년 동안이나 정사를 돌보지 않은 채 불공을 드리거나 노국공주의 초상화를 그리며 괴로움의 시간을 보낸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노국공주의 경우는 이미 몽골과 거리가 멀어진 뒤의 일이지만 앞서 고려 왕실에 들어온 대부분의 몽골 여인들은 몽골 조정과 연락망을 터놓고 툭하면 불평불만을 일러바쳐 고려의 사정을 어렵게 만들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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