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현칼럼] 한일 위안부 협상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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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초빙논설위원 장
입력 2018-01-1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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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칼럼]

 

[사진=김봉현 초빙논설위원·전 주호주대사]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가 타결한 한·일 위안부 협상을 두고 한·일 간에 갈등이 조성되고 있다.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긴밀한 공조가 필요한 한·일 양국이 서로 대립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 속에, 문재인 정부는 과거 박근혜 정부가 행한 위안부 합의 과정을 재검토하였다. 그 결과, 우리 정부는 일본과의 협상과정에서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고 고백하였다. 이에 맞서 일본은 합의 사항은 1mm도 움직일 수 없다고 하면서 철저한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협상에서 타협을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는데, 그것은 오해이다. 더구나 정치적·이념적 문제를 둘러싼 협상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협상이 70년이 흘러도 별 진전이 없으며 남북한 간의 협상도 마찬가지이다. 인권, 이념, 사상, 가치 및 인종에 관한 문제는 양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협상학의 통설이다. 정신적 가치에 관한 것은 계량화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일 간의 역사문제, 특히 인권의 가치와 결부되어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에 관한 협상은 타협을 할 수 없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그만하라는 선까지 마음을 얻어야 한다. 그러함에도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 타협으로 이 문제를 종결지으려고 하였다. 상대가 있는 국가 간의 협상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100%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가 100% 얻지 못하면 끝나지 않게 되어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도덕적 가치는 물질적 가치로 치환 불가능하다.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면 이는 협상대표들의 착각이다.

협상학의 대가인 로버트 퍼트넘(Robert Putnam)은 협상의 과정을 ‘two level games’라고 단순 명료하게 설명하였다. 협상에서 협상대표들이 벌이는 실제 협상을 level 1 game이라고 한다면, 협상대표들의 뒤에서 협상을 지켜보는 실제 이해 관계자들과 협상 대표들 사이에 일어나는 협의 과정을 level 2 game이라고 부른다. 이 level 1과 level 2 game 간의 역동적인 상호교류를 무시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좋은 협상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협상 대표인 정부는 협상의 주체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대신하여 협상하는 협상 대리인일 뿐이다. 따라서 협상대표는 피해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real interest)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반영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간혹 협상대표가 피해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과 겉으로 주장하는 입장을 혼동하여 협상이 잘못되는 경우도 많다.

한국 정부는 T/F 조사 결과 2015년 12월 일본 정부와 합의하면서 피해 할머니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할머니들이 요구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회복’이었다. 피해 할머니들의 ‘존엄성 회복’은 일본 총리의 입술에 의한 사죄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뜻하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총리대신의 사죄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재단 설립으로 이를 달성할 수 있다고 오해하였던 것이다. level 2 game에서의 절차적 결여 때문이다.

2015년 당시 우리 정부가 level 2의 과정을 충실히 하였더라도 피해 할머니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즉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것은 한·일 과거사 전체와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level 2를 하나마나라고 생각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어차피 level 2 game에서 피해자들과 합의가 안 될 바에는 일본 총리로부터 문서상의 사죄를 받고 일본 정부 예산으로 보상을 하는 것으로 봉합하는 것이 미래 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위한 결단이며, 이것은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비판을 받더라도 관계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마음을 가지고 협상 문서에 서명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압력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 나라의 지도자이든 민주적 절차에 의하여 선출된 지도자들은 자신이 내린 정치적 결정은 국민의 위임을 받은 것이라고 간주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오로지 홀로 역사의 심판에 서게 되어 있다. 키신저 박사가 자신의 저서 ‘Diplomacy’에서 거듭 강조하였던 바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본다면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내린 결정은 비록 국민들이 수용하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로서 변할 수 없는 실체이다.

더욱이 외국 정부와 합의한 사항을 우리 측 협상 잘못을 이유로 합의 결과를 부인하려고 하면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 합의를 부인하기 위해서는 과거 한일늑약처럼 일본이 협상과정에서 우리 대표단을 겁박하여 억지로 합의토록 하였다거나 아니면 사실을 왜곡하여 우리를 속였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의 역사적·도덕적 흠결이 오히려 우리의 신뢰 흠결로 역전되는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협상결과가 중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에는 잘된 협상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리한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2015년 합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는 ‘합의는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법언에 따르는 것이 최선이다. 이 법언이 만들어진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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