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훈련訓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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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입력 2018-01-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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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훈련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존재한다. '훈련 중'인 인간과 '훈련을 하지 않는' 인간이다. 훈련 중인 인간은 자신이 되고 싶은, 더 나은 자신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매일매일 조금씩 전진한다. 원하는 자신이 되는 과정이 훈련이며, 훈련을 통해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단점을 과감히 버린다. 훈련은 원대한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버려야 할, 자신의 나쁜 습관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인생이라는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마라톤에 훈련 없이 참가하는 것은 마라톤을 완주할 의지가 없거나 자신이 완주할 수 있다는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일 뿐이다.
 
서양에선 오랫동안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둘로 나누어 분석했다. 신과 인간, 천국과 지옥, 남자와 여자, 정신과 육체, 겉과 속, 생각과 행동 등이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불완전한 개념들이다. 신과 인간, 천국과 지옥은 원래 하나다. 예수는 이것들이 하나라고 주장해 당시 자신들도 모르는 이데올로기에 감염된 종교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남자와 여자가 신체적인 차이는 있지만, 이 둘은 원래 인간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인류의 성현들이 남긴 경전과 신화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들이 놀랍게도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생각과 행동을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신의 표현이 육체이며 생각의 자연스런 결과가 행동이다. 만일 정신과 육체가 괴리하고 생각이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고대 그리스 단어 ‘로고스’(logos)는 인간의 이성이자,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역동적인 에너지다. 고대 히브리 단어 ‘다바르’(dabar)는 ‘말’이면서 동시에 '행동', '사건'이란 의미를 지닌다. 말이 곧 사건이고 사건은 말을 통해 시작된 것이다.
 
훈련이란 생각을 행동으로 인도하고 말을 사건으로 실현시키는 과정이다. 인간은 훈련을 통해 독립적·존재론적 인간에서 연관적·상대적 인간으로 변한다. 인간은 훈련을 통해 자신이 지니고 있는 동물적인 본능을 승화해 신적인 속성을 발현한다. 훈련을 통해 매일매일 변하지 않는 사람은 과거의 자신에 자신을 감금시키는 죽은 자와 마찬가지다.
 
인도-이란인들의 정신세계, 아리아
1990년대 초,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페르시아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완성자 다리우스가 남긴 삼중 쐐기문자 비문인 베히스툰 비문을 연구하면서 이 언어들에 심취했다. 고대 이란과 인도는 원래 한 민족으로 언어분류상 인도-이란어라고 부른다. 인도-이란인들은 원래 한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이었다. 기원전 2000년경, 한 갈래는 인도로, 다른 한 갈래는 이란으로 들어가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원전 12세기경엔 각각 인도의 가장 오래된 경전 리그베다(Rigveda)와 이란의 가장 오래된 경전인 아베스타(Avesta)를 구전(口傳)으로 남겼고, 기원전 6세기엔 이 경전들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인도-이란인들은 스스로를 ‘아리아인’(aryan)이라고 불렀다. 20세기 히틀러가 이 문화적이며 정신적인 개념을 인종적인 개념으로 오용해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대의 비극을 초래했다. 이 단어의 어원은 아르야(arya-)다. 이 단어는 아주 오래된 인도-유럽어 어근으로 '우주의 질서에 맞게 정렬하다'라는 의미다. 이 단어에서 파생된 중요한 개념이 등장한다. ‘아르야’의 과거분사형으로 '우주의 질서에 맞게 정렬된 어떤 것'이란 단어, 바로 산스크리트어 ‘르타’(ṛtá)와 아베스타어 ‘아샤’(aša)다. 이 단어는 모두 '진리', '원칙'이란 의미다. 이 어원이 라틴어에서는 ‘아르스’(ars)가 되어 ‘예술’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아트’(art)가 되었다. ‘아리아’는 인간의 이분법적 구분을 초월하는 개념으로, 생각과 사건이자 육체와 정신인, 아니 우리가 보기에는 서로 상반되는 개념을 초월하고 생산하는 모체다.
 

여성 요가 수련자들. 18세기, 17.46 x 13.02cm. [사진=배철현 교수 제공]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아리아’ 정신을 구현한 가장 훌륭한 전통은 ‘요가’다. 고대 인도에서는 세상의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려는 수련자들이 단순히 공부나 묵상을 통해서만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신적인 고양은 육체적인 훈련을 통해 강화된다. 그래서 고대 인도의 수련자들은 지금 세계 곳곳에서 유행하고 있는 새로운 훈련법을 발전시켰다. 이것이 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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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는 인도의 가장 위대한 업적들 중 하나이다. 요가는 인도에서 기원전 5세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독특한 사상과 깊이 연관돼 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을 정복하기 위한 정신적인 훈련이었다. 호전적인 아리아인들의 요가훈련과는 달리 요가는 비폭력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우주를 관장하는 영혼인 ‘푸루샤’와 개인의 영혼인 ‘아트만’이 하나다. 이것이 상키야(Sankhya) 사상이다. 요가는 원래 에어로빅 연습이 아니다. 요가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걱정을 덜어주고 스스로 건강을 찾도록 도와주는 건강 프로그램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자신 안에 숨겨진 위대한 자신이며 우주정신인 ‘푸루샤’를 일깨우기 위해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 안에 쌓인 적폐들, 즉 편견, 이기심, 무식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이다.
 
이 요가를 체계화한 사람이 기원후 1세기에 등장한 파탄잘리다. 파탄잘리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해탈’을 위한 다양한 훈련들을 모아 정리했다. ‘요가’는 기원전 12세기경, 아리아인들의 전쟁에 나갈 동물들을 훈련하기 위한 ‘밧줄’이나 ‘고삐’를 의미한다. ‘멍에’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요크’(yoke)는 요가 어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요가’(yoga)는 인도유럽어 어근 yuk-에서 왔다. ‘멍에’라는 영어 단어 ‘yoke’는 이 어근에서 파생했다. 그러나 yuk-는 초기 아리안들이 야생마를 훈련시켜 준마(駿馬)로 만들기 위해 훈련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훈련은 불필요한 생각-말-행동을 제어하고 자신에게 고유한 임무를 위해 몰입하는 것이다. 이 몰입을 상징하는 것이 말의 ‘고삐’이며 소의 ‘멍에’다. 말은 전차 앞에서 자신의 힘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모든 최선을 한데 모아 집중하여 나를 움직이게 하는 수련이 바로 요가다.

요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이해하여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파탄잘리는 이 요가에 관한 글을 정리하였고 3세기경 그를 추종하는 학자들이 네 권의 책으로 집대성한 ‘요가 수트라’라는 책을 저술했다. 네 권으로 구성된 ‘요가수트라’는 196개의 경구를 담고 있다. 첫째 책은 ‘사마디(samadhi) 파다’라고 불린다. ‘사마디’는 한글로 ‘삼매경’(三昧境)으로 음역 번역된 단어로, 자신 안에 있는 우주의 원칙인 ‘푸루샤’와 자신을 일치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요가는 지금-여기에 몰입하는 훈련"
‘요가 수트라’ 제1권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요가는 지금-여기에 몰입하는 훈련이다”(atha yoga-anuśāsanam, 아싸 요가-아누샤사남). 파탄잘리는 ‘요가수트라’ 전체를 ‘아싸’라는 분사로 시작한다. ‘아싸’는 새로운 주제를 시작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비언어 분사이다. ‘아싸’는 새로운 이야기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기호로 문법적으로는 설명하거나 번역할 수 없는 단어다. 음유시인이 중요한 노래를 시작할 때,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여러분” 혹은 “자!”라고 외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파탄잘리 자신이 앞으로 말하는 주제가 중요하고, 그 내용을 실천하는 사람은 정신과 신체가 완벽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해 외치는 소리다. 군대에서 훈련을 시작하기 전 훈련사가 신병들에게 “차렷”이라고 외치는 탄성이다. 요가를 시작하기 전 척추를 똑바로 세우고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을 인식하면서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다. ‘아싸’는 자신이 원하는 자신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공간과 시간은 바로 지금, 여기라는 인식이다.

요가는 자신의 심연에서 나오는 미세한 소리에 대한 경청(敬聽)이다. 인간 마음속 깊이 있는 또 다른 자신은 자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나를 듣고 있는가?” 창세기에서 신이 인간에게 던진 첫 질문은 “네가 어디 있느냐?”다. 자신과의 성공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경청이다. 요가를 통해 자신과의 관계를 성공적으로 맺기를 원한다면, 자기 자신을 경청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요가의 여러 몸동작들은 자신을 온전히 경청하기 위한 몸의 소리에 대한 경청 연습이다. 몸의 근육을 늘리는 행위는 몸이 우리에게 크고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통해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이다. 만일 내가 내 몸이 나에게 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이면, 나는 내 몸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요가는 나의 자연적인 모습 그대로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인정하는 연습이다.
 
‘아싸 요가’는 일종의 진언(眞言) 혹은 주문이다. 이를 말함은 요가를 수련하려는 사람의 정신과 생각을 집중시키는 첫 단추다. ‘아싸 요가’의 심층적인 의미는 '요가는 항상 여기와 지금에 집중돼 있다'는 의미다. 우리가 수련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여기이며, 유일한 시간은 지금이기 때문이다. 파탄잘리는 요가를 사상이나 이념이 아닌 ‘행위’라고 정의한다. ‘아누샤사남’은 ‘요가 경험에 관한 입문’이란 의미다. 요가는 마치 사과를 분석해 그 영양소와 모양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한 입 베어 먹는 행위를 말한다. 소수의 사람만이 그 맛을 본다. 공부는 경험에 관한 것이고, 변화를 일으키는 훈련이다.

나는 오늘 더 나은 나를 위한 주문인 ‘아싸 요가’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위대한 나를 위해 지금-여기에서 훈련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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