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그래그래] 무술년 병진대운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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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 작가·북칼럼니스트
입력 2018-01-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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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보기 작가·북칼럼니스트 ]


어려서 섬 개구쟁이로 자랐던 나는 그만큼 신체적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었다. 6살 때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아직까지 이마에 큰 흉이 진 것도 그 때문이다. 성인이 됐을 때 주역에 심취해 있던 분이 ‘이마에 흉이 있으면 운이 좋지 않다. 성형수술을 해서 없애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했지만 ‘모든 게 나 하기 나름이지 그런 게 어디 있느냐’며 가차없이 한 귀로 흘렸다. 이후로도 지금까지 사주, 관상, 손금, 점(卜) 등 소위 ‘미래를 내다보는 주술’과 마주한 적이 없다.

이는 아마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의 말씀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선생님 왈 “어떤 젊은이가 연필 깎는 칼로 손바닥을 긋고 있었단다. 왜 그러느냐 물었더니 손금으로 점을 쳤는데 손금이 짧아 운이 안 좋게 나와서 손금을 늘리는 중이라고 하더구나. 얘들아, 운명이란 이렇게 자기가 개척해 나가는 것이지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란다. 너희들 운명은 너희들이 노력하기에 달렸단다”고 하셨고, 나는 그 말씀을 끝내 신봉했다.

솔직히 ‘모처의 도사가 기막히게 용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한 번 가볼까 싶을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의 토끼띠인 나의 출생연월일과 시(時)가 분명치가 않았다. 그것은 문맹이었던 어머니의 기록이 아닌 기억에 의존한 탓인데, 나의 출생시는 ‘해거름’이다. 그마저 “아니다. 느그 누나를 해거름에 낳았으까?”에 이르면 사주를 본들 엉뚱한 사주일 것 같아 볼 마음이 안 생겼다. 그나마 나는 다행이다. 같은 동네 친구 중에는 ‘토끼 밥 줄 때’ 나온 애도 있고, ‘교회 종 칠 때’ 나온 애도 있다. 토끼 밥은 토끼장 지나가다 아무 때고 그냥 준다. 손목시계가 귀했던 섬에서는 교회에서 정시마다 종을 쳐 논밭에 시간의 흐름을 알렸다.

이제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걱정되는 오십 중반인데, 아이들 둘은 아직 대학에 다니고 있다. 다니던 직장을 나와 새로운 일을 찾는 친구들이 늘어난다. 이것은 매우 힘들고 심란한 일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사업에 실패해 연락 두절인 친구도 있고, 스트레스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진 친구도 있다. 승승장구하는 친구 하나면 박빙 위를 걷는 친구가 아홉이다. 하늘에 삿대질하던 젊은 날의 패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교회라도 나가야 하나? 저 마누라는 절에 가서 기도라도 좀 안 하나? 그런 맘이 나도 모르게 들 때가 막 있다.

그런 처지의 사내들끼리 술 한 잔 기울이던 차였다. 옆자리 친구가 ‘기막힌 도사’를 만났다는 것이었다. ‘과거를 귀신같이 알아내더라’는 것이었다. ‘이리저리 하면 잘 풀린다 했는데 진짜로 잘 풀린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했는데 증조 할아버지가 급사한 것도 맞히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내일 당장 가자고 졸랐다. 다음날 곧바로 도사를 찾아갔다. ‘5만원 복채’도 비싸다는 생각은 없었다.

도사님 왈, "47대 병진대운(丙辰大運)에 들었다. 재(財)도 권(權)도 없지만 열심히 모아 알뜰히 살았구나. 그다지 나쁜 운은 없다. 너의 힘은 있는데 여건이 달리니 욕심 내지 말아라. 작더라도 주는 대로 고맙다 받아 먹어라. 그럼 무난하게 살 것"이란다. 내심 ‘이제 네 인생 시작이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니 창고나 넓혀라’는 말을 기대했던 나는 실망이 컸다. 그럼에도 ‘무난하게 산다’는 말에 끌려 되짚어 확인했다. 욕심 안 내면 정말 나와 가족들 밥은 안 굶느냐고. 그런다 했다. 살짝 안심이 됐다.

실제로 겪어보니 처지가 심란할 때 ‘가끔’ 도사를 찾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없던 힘을 불어넣어 주는 강장제 역할을 한다. 물론 ‘하고 싶은데 하지 말라는 경우’ 힘이 빠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갔던 날은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할 정치인들의 사주를 보려는 제3자들이 많았다. 아무렴 ‘누가 당선 될지’가 자기 인생에 중요한 일이면 점이라도 쳐보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다만, 선거에 직접 출마하려는 사람은 행여 도사께서 ‘하지 말라’면 그 충고를 따르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 선거는 위로 증조까지 3대(代), 아래로 손자까지 3대의 과거와 미래를 걸고 하는 ‘노름’이라 삐끗했다가는 가문의 재앙이 될 공산이 크기에 그렇다. 뭐, 그래봐야 나갈 사람은 나간다 하니 당선의 운이라도 누리시길!

저 도사가 누구인지 궁금한 독자들이 지금까지 남았을 터, 그분은 서울 구로구 기차역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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