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그래그래] '58년 개띠' 형님누님들 힘 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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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 작가·북칼럼니스트
입력 2018-01-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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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보기 작가·북칼럼니스트 ]


지난해 여름은 대단히 습하고 무더웠다. 에어컨이 없는 집은 여름 나기가 고문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하필이면 이때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를 단행해 보름을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했다. 단지엔 15층짜리부터 25층짜리까지 총 10개 동이 있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날 나는 단지 내 상가의 치킨집 앞 노변에서 시원한 생맥주로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눈에 띄게 키가 왜소한 치킨집 사장이 배달을 나갔다. 주문처는 아파트 25층 가구였다.

30분이 흘렀을까,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사장이 돌아와 노변에 털썩 주저앉았다. 장난전화에 당한 것이었다. 경쟁 가게의 짓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그 무덥던 여름 밤에 치킨 한 마리를 통에 담아 아파트 25층을 걸어서 올라갔다 배달 허탕을 친 채 걸어서 내려왔던 것이다. "배달 주문을 받지 말거나 다시 전화해 확인을 미리 하지 그러냐" 했더니 "그럼 손님 떨어져서 장사 망해요"라고 했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의 표정은 고흐나 피카소라도 그릴 수 없을 만큼 슬펐으며, 온 힘을 다해 울음을 삼키는 것이 역력했다. 그 사장은 토끼띠인 나보다 5살 많은 '58년 개띠' 형님이었다. 그는 언젠가 "치킨집 열기 전에 5년간 사우디 건설현장에서 돈을 모았다"고 했었다.

무술년(戊戌年)인 2018년은 황금 개띠의 해다. 58년 개띠들 역시 황금 개띠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될 리 없지만 ‘황금’이라도 붙여서 이들의 노고를 달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들은 집집마다 자식들이 최소 6명, 최대 12명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의 맏이였다. 그들이 태어났던 해에 영화 ‘자유결혼’이 상영됐다. 전통의 중매를 거부하고 신식 연애로 결혼을 하는 것이 영화의 소재가 됐던 시절이었다. 가수 남인수가 ‘반짝이는 별빛 아래 댕기 풀고 맹세했던 님의 배신’에 눈물 지으며 ‘무너진 사랑탑’을 불렀던 해였다.

200만명을 훌쩍 넘었던 그들은 콩나물 시루 교실에서 오전, 오후로 갈리는 2부제로 초등학교를 다녀야 했다. 그들은 미국에서 원조 받은 밀가루로 만든 무설탕 빵과 분유로 고픈 배를 채웠다. 그들 중 많은 아이들이 상급학교 진학 대신 생계를 위한 노동에 투입됐다. 운 좋게 대학까지 마친 이는 매우 머리가 뛰어났거나 부잣집에서 태어난 행운아였다.

그들은 가족들을 위해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나가 생고생하던 그들의 형과 누나처럼 살기 위해 고향을 등져야 했다. 그들은 가정부(식모)로, 공단으로, 시장으로, 공사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악착같이 살아냈다.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가 그들의 친구였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힘들었던 군대 생활도 그들은 피하지 않았다. 제대한 그들은 산업화 시대의 역군이 돼 쇳물을 녹이고, 철판을 굽히고, 언 땅을 팠다.

그들의 결혼식은 ‘화려’와는 거리가 멀었다. 연탄불 때는 단칸방에 식기 몇 개와 ‘비키니 옷장’이 신혼 살림이었다.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가는 것은 상위 10%나 가능했던 일이었고, 설악산·속리산 2박3일이 최고였다. 그나마도 갈 수 있었다면 꽤 살 만한 축이었다. 아이들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정부시책을 충실히 따랐다. 베이비부머 맏이로서 자기 자식은 물론이고 아래 동생들과 부모까지 거들어야 했기에 악착같이 뛰어야 했다. 그렇게 뛰고 뛰어 자식들 대학 보내고, 아파트 마련하고, 차도 샀다. 이제 살 만하다 싶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IMF 위기’가 닥쳤다. 어렵게 차장, 부장에 이르렀지만 운이 없게도 ‘컴퓨터, PC통신 천리안, 워드, 스프레드시트’ 같은 괴물과 친할 시간이 없었던 그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직장을 떠난 그들은 자식들의 결혼과 노후 대비를 위해 또다시 ‘개발에 땀 나도록 달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육십갑자가 돌아 60세가 돼버렸다. 이른 기회를 맞아 하느님보다 높은 ‘건물주’가 많은 그들의 형님, 누님들과 달리 그들은 여전히 생계와 노후를 위해 생활전선에서 뛰어야 한다. 그들은 여차하면 100세까지 살아야 할 판이다. ‘58년 개띠’들의 갈 길이 첩첩산중 오리무중이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아아, 고진감래(苦盡甘來)! 58년 개띠 형님 누님들, 끝까지 힘 내소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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