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43] 세계제국의 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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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 칼럼니스트
입력 2018-01-1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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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대세 잡은 주원장

[사진 = 주원장( 대만박물관 소장)]

10여 년 동안 중국 대륙은 군벌들의 천하가 된다. 대한(大漢), 대송(大宋), 오(吳), 대금(大金) 등 옛 왕조의 이름을 들고 나와 과거 사라진 왕조의 부활을 내세운 세력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일어선 군벌들 간의 싸움에서 기선을 제압하고 나선 것이 바로 대명(大明)을 나라 이름으로 들고 나온 주원장(朱元璋)이었다.

▶ 군벌 세력 평정한 주원장
각자 나름대로의 명분을 내세워 일어섰던 중국 대륙의 군벌들의 힘은 1360년대 들어 주원장 쪽으로 모아지고 있었다. 1363년 주원장은 한(漢)나라의 후예를 자처한 진우량(陳友諒)과 파양호에서 한판대결을 벌여 화공전술로 진우량의 군대를 제압했다. 양측을 합친 군사가 백만 명을 넘었으니 이는 군벌 간의 싸움으로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대전투였다.
 

[사진 = 알탄톱치 황금사]

1366년 주원장은 또 하나의 거대 군벌 장사성에 대한 공격을 단행했다. 장사성은 앞서 톡토가 제압하려 했던 소금상인 출신 군벌이다. 그 때 살아난 장사성은 한때 몽골 조정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등 줄타기를 하면서 평강, 즉 지금의 소주 지방 일대를 장악하고 스스로 오왕(吳王)이라 칭했다. 평강에 대한 포위공격은 무려 10개월이나 걸렸지만 결국 주원장군의 승리로 마감됐다.

이 전투가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주원장은 대송(大宋)이라는 국호를 내세워 홍건적을 이끌고 있던 소명왕(小明王) 한림아(韓林兒)를 초대 한 뒤 양자강에서 배의 바닥에 구멍을 뚫어 물에 빠져 죽게 만들었다.

▶ 명나라 출범, 북벌작업 착수

[사진 = 남경 현무호]

주변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났다고 생각한 주원장은 남경에서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국호를 대명(大明)이라 칭하고 연호를 홍무(洪武)라 정했다. 새 나라의 건국을 선언한 주원장에게 이제 남아 있는 일은 몽골 세력을 중국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일이었다. 이미 강남 지역을 거의 모두 장악했지만 황하 유역은 여전히 몽골의 세력권에 있었다. 우선 주원장은 ‘구축호로 회복중화((驅逐胡虜 恢復中華), 즉 북방 오랑캐를 물리치고 중화를 회복한다는 구호를 내세웠다.

그리고 북쪽 지역의 주민과 관리들을 대상으로 격문을 발표했다.

"원은 오랑캐인 주제에 중국에 들어와 천하를 호령하고 있다. 게다가 정치는 문란하고 민중은 굶주림에 나날이 피폐해지고 있으며 민심은 이미 원나라 조정을 떠났다. 나는 지금 병사를 일으켜 몽골 오랑캐를 쫓아내고 민중을 도탄의 어려움에서 구원해 옛 한족의 영광을 되찾고자 한다."

▶ 약탈과 파괴로 무너진 대도성

[사진 = 명군의 북진]

주원장은 25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북벌 길에 올랐다. 북벌군의 진군은 순조로웠다. 천재지변과 기근 그리고 전쟁에 지쳐 있던 많은 성과 도시들은 저항하지 않고 길을 내줬다. 명군은 아무 거리낌 없이 북상하고 있었다. 순제 토곤 테무르는 각지의 몽골 군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고립무원에 빠진 그는 기황후와 아들 아유시리다라, 투쿠스 테무르 등을 이끌고 대도를 빠져나와 상도로 피신했다. 닷새 뒤 명군은 이렇다 할 전투도 없이 쉽게 대도에 입성했다. 몽골이 중국 땅에 세운 국제 도시 대도는 약탈과 파괴로 아수라장이 됐다. 아마 이들은 이때부터 대도성을 버리고 새로운 궁궐 자금성을 지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 응창에서 숨진 토곤 테무르
상도로 피신한 뒤 토곤 테무르는 군대를 재정비해 주원장軍에 대항했다. 초원의 땅으로 돌아간 몽골군의 저항은 예상외로 끈질겼다. 그래서 명군이 상도를 제압하는 데는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상도가 위험한 지경에 빠지자 토곤 테무르는 다시 옹기라트 부마가의 여름수도인 응창(應昌)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결국 그 곳에서 숨을 거둔다.

어린 시절부터 숨을 거둘 때까지 자신의 뜻을 제대로 한번 펴보지도 못한 채 조상들이 물려준 몽골 제국을 한족에게 넘기고 쫓기다가 생을 마감한 토곤 테무르, 그가 남긴 애가(哀歌) 속에 담긴 참담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명군이 다시 응창을 공격해오자 국상(國喪)을 치르던 몽골인들은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채 대부분 포로가 됐다.
 

[사진 = 고비사막]

황태자 아유시리다라를 비롯한 몽골의 소수 잔여 세력들은 급히 몸을 피해 고비사막을 넘어 옛 조상들의 터전인 몽골 고원으로 돌아갔다. 토곤 테무르의 후비와 손자들을 비롯한 많은 귀족들이 포로가 됐고 송나라와 원나라의 옥새도 명의 손에 들어갔다. 기왕후도 이때 포로가 됐다는 설도 있지만 이후의 행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순간은 대몽골제국 역사의 한 장이 마감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중국의 역사는 이를 원조의 멸망이라 부른다.

▶ 북원제국 ‘빌릭투 칸’ 즉위

[사진 = 아유시리다라(昭宗)]

그러나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카라코룸으로 돌아간 황태자 아유시리다라는 대칸의 자리에 오르니 그가 소종(昭宗)이다. ‘빌릭투 칸’, 즉 ‘현명한 칸’이 몽골식 이름이었다. 절반의 몽골 피와 절반의 고려 피가 섞인 황태자가 대칸 자리에 오르면서 북원(北元) 제국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사진 = 초원의 취재차량]

비록 중원은 명의 손에 들어갔지만 만주와 감숙, 티베트, 운남 그리고 중앙아시아 등 넓은 지역이 여전히 몽골제국의 세력으로 포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몽골과 명나라의 대결 상황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1372년 주원장은 세 명의 장군에게 15만 명의 군사를 주어 아유시리다라 제압을 위해 초원 정벌에 나서도록 했다.
 

[사진 = 울란바토르 툴강]

지금의 울란바토르 근처까지 접근한 명나라 중로군은 툴 강변에서 몽골군에게 크게 패하면서 수만 명의 군사를 잃었다. 명군의 초원 원정은 실패로 끝난 것이다. 하지만 명과 대적하던 아유시리다라는 대칸이 된지 8년만인 1378년 41살의 나이로 일찍 타계하고 만다.

▶ 몽골 세계제국의 종말

[사진 = 투구스 테무르(平宗)]

뒤를 이어 동생인 투구스 테무르가 대칸의 자리에 올랐다. 1387년 그는 요동지방에 있던 잘라이르 왕가의 나가추와 연합해 명을 공격하려 했으나 식량부족에 시달리던 나가추가 명군에 투항하면서 오히려 역습을 받아 궤멸 당하고 만다. 그리고 자신도 도주하던 중 아릭 부케 가문의 이수데르에게 살해됐다. 쿠빌라이 왕조는 그의 죽음으로 단절돼 버리고 만다.

대원제국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이후 몽골의 여러 세력은 초원에 남아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지만 적어도 세계제국으로서 몽골의 역사가 끝난 것은 분명했다.

▶ 182년 만에 무너진 세계제국

[사진 = 줄어든 대원제국]

몽골세계제국이 무너졌다. 적어도 연대감을 가지고 하나로 연결됐던 몽골세계제국이 해체된 것만은 분명했다. 러시아 지역에, 중앙아시아 지역에, 그리고 페르시아 지역에 몽골의 후예들이 그대로 남아 나름대로의 삶을 이어가기는 하지만 그들은 분리된 개체로 독자적인 길을 걸어갔다는 점에서 몽골세계제국과 연관 짓기는 어렵다.

특히 그들도 점차 해체의 길로 들어서면서 대부분이 현지에 동화돼 버리고 말았다. 유산은 남겼지만 형체는 사라져 버린 꼴이 됐다. 그래서 초원으로 밀려간 북원제국이 멸망한 시점을 몽골세계제국의 해체시기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쿠빌라이가 대칸의 오른 지 128년 만에, 대원제국을 선포한지 117년 만에 쿠빌라이 왕조는 이 땅에서 사라졌다.
 

[사진 = 칭기스칸 동상]

칭기스칸이 대칸의 자리에 오른 뒤 세계 정복에 나서기 시작한 때로부터 따진다면 182년 만에 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았던 몽골세계제국이 역사 속에서 그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182년은 짧지 않은 세월이다. 하지만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며 떨쳤던 몽골의 위세를 감안해보면 종말은 너무 가파르게 다가왔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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