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40] 원당사는 기황후와 관련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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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 칼럼니스트
입력 2018-01-11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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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삼첩칠봉에 지은 원당사(元堂寺)

[사진 = 舊 원당사]

제주도의 수많은 오름 중에서 원당 오름이라는 것이 있다. 제주시와 북제주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이 오름은 기황후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오름은 세 개의 능선에 일곱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가 이어져 있어 예로부터 원당칠봉(元堂七峰) 또는 삼첩칠봉(三疊七峰)이라 불려졌다.

이곳에는 기황후가 아들을 얻기 위해 절과 탑을 세운 뒤 원하던 아들을 얻었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즉 북두성(北斗星)의 명맥이 비치는 바닷가에 있는 삼첩칠봉을 찾아 불공을 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스님의 말에 따라 수소문 끝에 이 지점을 찾아냈고 여기에다 원당사(元堂寺)라는 절을 짓고 석탑을 쌓아 불공을 드렸다는 얘기였다.

원당사와 기왕후와의 관련 얘기는 현지 제주 언론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다루면서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절이 기 왕후와 관련이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은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같은 얘기뿐이다.

▶ 기황후 전설의 의문점

[사진 = 원당사 5층석탑]

기황후와 관련된 흔적을 찾기 위해 그 곳을 방문해 보니 당시의 것으로 남아 있는 5층 석탑을 볼 수 있었다.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석탑은 높이 4미터 정도로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육지에서 보는 석탑과 사뭇 다른 느낌을 줬다. 이 석탑은 제주도에 남아있는 고려시대의 유일한 석탑으로 보물 1187호로 지정돼 있다.
 

[사진 = 불탑사 희정스님]

당시에 지었다는 원당사는 불에 타 유실되고 지금은 그 자리에 불탑사(佛塔寺)라는 비구니 사찰이 들어서 있었다. 이 사찰의 비구니 스님도 기황후와 관련된 애기를 전설로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살펴보면 이 절이 기황후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듯 했다.

▶ 40년 차이나는 사찰 설립과 출산
제주도가 몽골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곳이니 몽골 황실이 이곳에 절을 짓고 황손을 얻기 위해 불공을 드렸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우선 원당사를 지은 시기는 기황후가 아들을 낳은 시기와 적어도 40년 정도 차이가 났다. 원당사가 지어진 것이 1,299년 무렵이고 기황후가 아들 아유시리다라를 낳은 것은 1,339년이었다.
 

[사진 = 불탑사 대웅전]

게다가 절과 탑이 세워진 시기는 몽골제국의 14번째이자 마지막 대칸인 토곤 테무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이었다. 절이 세워질 당시의 대칸은 쿠빌라이에 이어 대칸에 오른 여섯 번째 테무르였다. 또한 기황후가 아들을 낳은 것은 황후가 되기 전으로 당시 실제로 아들을 낳기 위해 고려 땅에다 절과 탑을 세우고 불공을 드릴만한 위치에 있었느냐 하는 것도 의문스러웠다.

▶ 테무르 황후와 관련 있는 듯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 보면 우선 이 곳의 절이 몽골 황실의 요청에 따라 세워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원당사라는 절 이름이 그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 앞서 소개한 대로 쿠빌라이에 이어 대칸의 자리에 오른 테무르는 테이슈라는 아들이 한명 있었지만 자신보다 한 달 먼저 죽었다.

그래서 황후인 부루간 카툰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안서왕 아난다를 불러들이려다 자신도 밀려나고 모든 것을 잃었다. 이 절이 세워진 것은 테무르가 즉위한 지 6년째 되는 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부루간이나 다른 황후가 아들을 얻기 위해 절을 지었을 수는 있다. 그 결과가 아들을 얻었는지 여부는 확인한 길이 없다. 단지 부르간 황후가 낳은 테이슈라는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대입해 보면 아들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전해 내려오는 전설은 아들을 얻었다는 쪽으로 얘기되고 있다.

▶ 사찰시주 열심이었던 기황후
결국 원당사의 전설은 기황후와 관련은 없는 것 같다. 추측해볼 수 있다면 궁녀이기는 하지만 상당한 위치에 있었던 기여인이 환관을 내세우거나 고려에 영향력을 행사해 이 절에서 불공을 올리도록 했을 수는 있을 것이다. 결국 현재 전해 내려오는 전설은 두 가지 사실이 혼재되면서 빚어진 혼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다만 기황후가 평소 사찰을 지원하고 시주하는데 열심이었던 점으로 볼 때 원당사도 기황후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으면서 그 것이 이 절의 내력으로 전해 내려왔을 수는 있을 것이다. 아무튼 원당사가 기욍후와 관련이 있고 특히 아들을 얻기 위해 불탑을 세웠고 그 결과 아들을 얻었다는 전설은 아직도 이 지역에서는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원당사에는 오래전부터 아들을 얻고 싶어 하는 많은 여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고 한다.

▶ 연천에 기왕후 릉터의 진실

[사진 = 연천 기황후 릉터]

기왕후와 관련돼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또 한곳이 바로 경기도 연천이다, 기왕후가 죽기 전에 고국에 묻히기를 원해 연천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17세기 유형원(柳馨遠)이 편찬한 지리지인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와 연천군지(漣川郡志) 등에 나온다. 이를 근거로 연천읍 상리 재궁마을 근처를 기왕후 능터로 추정하고 연천문화원에서는 기황후 헌다례(獻茶澧)식까지 치르고 있다.
 

[사진 = 기황후 다례제]

물론 능의 형태는 없는 상황이라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명나라 주원장에게 쫓겨 아들 아유시리다라와 함께 몽골 초원으로 달아나는 과정에서 기록이 사라진 기왕후가 죽은 뒤 그녀의 유해를 고려로 옮겨왔을 가능성은 낮다. 아들 아유시리다라는 몽골로 돌아가 북원제국의 초대 대칸이 되지만 기왕후에 대한 기록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 = 기왕후 릉터 안내문]

물론 연천은 기왕후의 오빠였던 기철(奇轍)의 무덤이 있던 곳이다. 그러나 기철의 무덤도 흔적이 사라져 버리고 지금은 그 흔적인 돌비석만 연천문화원에 있다. 과연 기왕후의 유해가 연천에 묻혔는지, 아니면 가묘를 만든 것인지 아니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일 뿐인지 앞으로 역사적 발굴과 고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 평가받는 운거사 시주

[사진 = 북경 운거사]

북경 교외에 있는 석경산(石經山) 운거사(云居寺)에 대한 기왕후의 시주는 지금까지도 불교계의 평가를 받을 정도다. 북경 서남쪽 75Km 거리에 있는 운거사는 거대한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돌산 석경산에 둘러싸여 있다. 돌에 새긴 경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산의 이름처럼 이곳에는 천여 년 동안 수많은 스님들이 돌에 새긴 석경들이 굴속에 보관돼 있다.

운거사의 탑 속에서도 1만 4,279개의 돌에 새긴 경전이 발견돼 훼손을 우려한 중국정부가 1999년 9월 9일 오전 9시 9분 9초에 다시 탑 속에 넣어 영원히 볼 수 없도록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하나 전해지는 얘기는 중국과 인도 사이에 국경분쟁이 발생했을 때 당시 주은래((周恩來) 중국 총리는 석경산의 석경을 상당량 주고 국경분쟁을 마무리 지었으며 그래서 석경의 일부는 인도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그만큼 소중한 가치를 지닌 석경은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 기황후 자금으로 완성한 석경동굴

[사진 = 운거사 석경]

이 석경산의 일곱 개 석굴가운데 현재 유일하게 개방돼 있는 것이 뇌음동(雷音洞) 또는 화엄동(華嚴洞)이라 불리는 석굴이다. 이 뇌음동의 한쪽 편에는 한글로 고려의 혜월(慧月)스님이 이 동굴을 완성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 석굴에서 석경 작업을 하던 혜월스님은 사찰 재정이 넉넉지 못해 중간에 작업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그 때 기황후의 자금관리를 맡고 있던 자정원의 자정원사 고용보는 무려 백만 냥을 시주해 동굴의 석경 작업을 완성할 수 있었다. 석경 작업 자체도 힘들고 어려웠겠지만 자칫 중단될 수 있었던 작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해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석경 동굴은 중국인들의 유물이 아니라 고려인에 의해 남겨진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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