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 冬夏閑談]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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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희 전통문화연구회 번역실장
입력 2017-12-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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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현희 전통문화연구회 번역실장

수화상극(水火相剋)이니, 물과 불은 서로 대립하는 존재이다. 물은 불을 끄고, 불은 물을 말린다. 물은 생명을 탄생시키고, 불은 생명을 소멸시킨다. 그러나 세상은 이러한 대립적 관계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발전하고 완성된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나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처럼. 《주역(周易)》의 기제괘(旣濟卦)가 그것을 말해준다.

기제괘는 위에 있는 괘가 감(坎 · ☵)이요, 아래 있는 괘가 이(離 · ☲)이다. 감은 물을 상징하고, 이는 불을 상징한다. 물은 그 성질이 아래로 흐르고, 불은 그 성질이 위로 타오른다. 그런 물과 불이 위아래에서 서로를 향해 마주하고 있으니, 이것은 음(陰)과 양(陽)의 만남이나 남자와 여자의 교합처럼 서로 대립하는 두 극단이 만나 화합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을 상징한다. 바로 이 만남과 조화 속에서 세상은 생성하고 발전하고 완성된다. 그래서 괘의 이름을 ‘기제’라 한 것이다. 기제란 이미[旣] 완성되었다[濟]는 뜻이다.

그러나 달이 차면 기울고 꽃이 피면 지듯이, 조화와 완성의 밑바닥에는 갈등과 쇠락의 싹이 잠재돼 있다. 그래서 기제괘 다음에는 미제괘(未濟卦)가 이어진다. ‘미제’란 미완성을 의미한다. 미제괘는 위에 있는 괘가 이(離)이고, 아래 있는 괘가 감(坎)이다. 위로 타오르는 불이 위에 있고, 아래로 흐르는 물이 아래에 있으니, 물과 불이 서로 등지고 화합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그렇지만 그 대립이 때로는 역동적인 활력과 창조적인 변화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완성은 고요요, 안식이요, 죽음이다. 미완성은 소란이요, 열정이요, 생명이다. 완성을 향해 치열하게 달려가는 우리의 삶은 늘 미완과 미제의 연속이다. ≪주역≫의 64괘가 완성의 기제괘가 아니라 미완성의 미제괘로 끝을 맺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처럼 올 한 해도 저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요 새로운 시작이며, 변화와 발전에 대한 예고이다. 미제(未濟)의 새로운 한 해가 또다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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