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2017년을 기억하는 두 가지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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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열 초빙 논설위원·정보사회학 박사
입력 2017-12-26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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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홍열 초빙 논설위원·정보사회학 박사]


연말이 되면 으레 쓰는 표현이 있다. 일도 많았고 어려움도 많았다는 뜻의 사자성어 다사다난(多事多難)이다. 이 앞에 약간의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올해는 정말 다사다난했다' 또는 '잊지 못할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등이다.

한 해 한 해가 살기 힘들어서 연말쯤 되면 1년을 버틴 자신이 기특해진다. 국가나 사회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일들이 많았고 그때마다 상황을 정리하고 수습하느라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이어졌다. 그래서 '이 정도로 한 해가 마감됐다'고 자위하면서 송년회를 하고 신년을 맞는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왔고 또다시 다사다난한 새해를 맞는다.

실제로 어려움의 정도는 해마다 다르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해마다 더 강렬해진다. 재작년의 고통은 기억에도 없고 작년에 겪었던 고통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교통사고로 물리적 외상이 남아 있는 경우 등은 예외겠지만 대부분은 현재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 가장 크고 가장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 어려움을 합리적으로 분석해보면 사실 별거 아닐 수도 있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고통이 가장 크다. 당신의 고통은 남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비교적 가볍다고 설득해봤자 소용없다. 설득하지 말고 경청하거나 아니면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개인이 아니라 사회나 국가로 주체를 바꿔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사회나 국가는 개인에 비해 비교적 합리적 판단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고 있지만 금년이 가장 어려웠고 내년에는 더 열심히 뛰자는 주장을 해마다 되풀이한다. 이런 주장은 비논리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개인이나 사회, 국가 모두 사회적 유기체로서 지속가능한 생존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유기체들의 이런 주장들 이면에는 제한된 데이터와 선택적 해석이 자리잡고 있다. 사람의 경우 자신에게 불리한 기억은 쉽게 잊어버리고 유리한 기억은 오래 보존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뇌는 순간순간 발생하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없기 때문에 무의미한 데이터는 보존하지 않고 불리한 기억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가공해서 저장하거나 찾기 힘든 곳에 저장한다.

사회나 국가 역시 동일하다. 국가의 경우 공식 기관인 국가기록원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의결되고 집행된 사안들 위주로 아카이브가 구축돼 있어 제한적이고, 그나마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삭제되거나 등록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사건들은 일반적으로 신문과 방송 같은 언론사들에 의해 취재되고 보도되지만 마찬가지로 일부 사건 위주로 기록된다. 적은 지면과 제한된 방송 시간 때문에 선택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이 개입되면서 최종 정리된 기사는 편향적일 가능성이 크다. 개인이나 사회, 국가 어느 경우에도 저장된 데이터는 일부에 불과하고 따라서 지나간 사건에 대한 해석 역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역사가 늘 다르게 해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한된 데이터를 기초로 지난 사건들을 재구성할 때 발생하는 불가피한 경우다. 시간이 많이 흐를수록 옛 자료들은 소멸된다. 남아 있는 파편들을 모아 그 시대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많은 경우 소설에 가깝다. 분명 사람이 살았던 시대지만 남아 있는 기록이 없어 상상을 동원해 쓰기도 한다. 자료가 새로 발견되면 역사책을 다시 쓰게 된다. 역사는 늘 선택과 해석의 과정이었다. 개인이나 사회, 국가 모두 같은 입장이었다. 어차피 선택이라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결정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었다. 지혜로운 선택은 동시에 역사 발전의 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약 시간 시간 발생하는 모든 데이터의 저장이 가능하다면 그리고 그 데이터가 분석될 수 있다면, 역사는 해석이 아니라 통계일 가능성이 있을까. 지금은 매 순간마다 개인, 사회, 국가의 모든 데이터들이 꼬박꼬박 저장되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서버에는 이미 우리 모두의 데이터들로 가득차 있고 계속 증가하고 있다. 데이터를 복원하면 한 유기체의 성장과 소멸 과정을 온전히 복원할 수 있을 정도다.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면 해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느 해가 더 힘들었고 어느 해는 좋았는지 친절하게 알 수 있다.

이제 앞으로 연말이 되면 한 해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려주는 빅데이터 서비스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연말에 자주 쓰는 다사다난이라는 단어 대신 수치로 알려준다. “ 지난해보다 15% 덜 힘들었네요. 그래도 수고 많았습니다.“ 이런 분석에 만족하면서 한 해를 보내게 될까. 아니면 늘 해오던 대로 올해 유난히 힘들었네 하면서 여럿이 술 마시고 떠들면서 새해를 맞이할까.

수십년 후 우리는 2017년을 어떻게 기억할까. 정치적 격변과 불안한 국제정세의 한 해였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었던 시간으로 기억할까, 아니면 빅데이터가 보여주는 2017년 통계 자료를 무심하게 받아들일까. 2017년은 우리에게 어떤 시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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