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포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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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죽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수석연구원
입력 2017-12-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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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죽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수석연구원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다른 이의 시선을 투과한 나의 모습은 종종 차이가 있다. 그런 층차들이 모여 세평(世評)을 이루는데, 대부분 이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것이 다반사다.

사람들은 저마다 세상의 사물과 현상을 판단하는 기준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삶의 궤적, 맺어온 인간관계 등이 다양하기에 그 기준이 얼마나 모호한가를 반증하기도 한다. 아울러 ‘평가’라는 말 속에는 묘한 권력관계가 내재돼 있기도 하다.

월단평(月旦評)이라는 말이 있다. 매월 초하루에 인물에 대한 평을 한다는 뜻으로, 동한(東漢) 말엽 허소(許劭), 허정(許靖) 형제의 일화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매월 초하루에 모여 인물을 정해 품평했는데, 이들의 논평이 꽤나 유명했던 듯하다. 조조 역시 미천했던 시절에 허소를 찾아가 평을 구한 적이 있었다.

허소는 이렇게 말한다. “그대는 태평한 시절에는 간적이요, 난세에는 영웅이다(君淸平之奸賊, 亂世之英雄).”(후한서-허소전) 조조라는 인물의 행적을 살펴보면 참으로 적실한 지적이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떠났다고 하니 어쩌면 그 안에 내재돼 있는 기질이 허소의 평어 때문에 촉발됐는지도 모른다. 과감하게 입 밖으로 인물평을 내놓는 허소나 그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재차 확인하고 기뻐했던 조조나 범상치 않기는 매한가지다.

월단평이 직선도로라면 '피리춘추(皮裏春秋)'는 우회도로다. 피리춘추란 가죽 속(皮裏)의 춘추(春秋), 즉 포폄이 있다는 뜻으로 진나라 저부(褚裒)의 일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진서-저부전'과 '세설신어'에 의하면, 저부는 젊은 시절부터 다른 사람의 선악시비를 표현하지 않고 그저 마음 속으로만 포폄을 가했다고 전한다. 때문에 그의 시선에 포착된 이들은 자신이 어떤 평가에 놓여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는 평가의 대상과 주체 사이를 오가면서 산다. 여기서 자유로운 이들은 아무도 없다.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 시대는 과연 옳은가? 그들의 기준은 옳은가? 남이 나를 어떻게 보아줄 것인가? 그러나 포폄의 주체 또는 대상으로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일밖에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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