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의 酒食雜記] 유대인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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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 칼럼니스트
입력 2017-12-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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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종권 칼럼니스트]


할리우드는 영화의 ‘예루살렘’이다. 잘나가는 제작자, 감독, 배우가 대체로 유대인이다. 아예 유대인의 의식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한다. ‘십계’나 ‘’벤허’처럼 성서를 바탕으로 한 영화만이 아니라 ‘매트릭스’와 같은 SF영화도 그렇다.

주인공 '네오(Neo)'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가 지키려는 '시온(Zion)'은 예루살렘 성이 세워진 작은 산이다. 유대인의 영원한 고향이다. 1970년대 팝 음악의 정상에 올랐던 보니 엠(Boney M)의 ‘바빌론 강가에서’도 예루살렘을 그린다. 이 노래는 “바빌론 강가에 앉아 시온을 떠올리며 흐느낀다”로 시작한다.

네오(영어로 New란 뜻)는 바이러스 군단에 의해 멸절 위기에 처한 시온을 구한다. 신약의 주인공이 구약의 ‘올드(old) 예루살렘’을 구하는 것이다. 영화감독 워쇼스키 형제가 바로 유대인이다. 이 영화를 시리즈로 찍으면서 성전환 수술을 해 지금은 워쇼스키 자매가 됐지만. 여하튼 이 영화가 개봉되고 2년 후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오사마 빈라덴에 의해 무너진 9·11사태가 벌어진다.

당시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던 홈 드라마에 '일곱 번째 천국(7th Heaven)'이 있다. 가난하지만 성실한 목사의 가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성장 드라마다. 목사 부인이 실제 임신하자 극에서도 임신한 것으로 나오고,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아역 배우가 된다. 그들이 성장하며 겪는 일화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전형적인 미국 중류층을 겨냥한 드라마다.

그런데 9·11 이후 새로운 시퀀스가 등장한다. 주인공 목사 아들이 유대교 랍비 딸과 사귀는 것이다. 육감적인 여배우 제시카 비엘이다. 짐작할 수 있듯이, 그해 시즌의 피날레는 이들의 결혼 장면이었다. 목사와 랍비가 공동 주례로 토라와 구약을 서로 교독하며 결혼식을 이끈다. 기독교와 유대교의 결혼인 것이다.

이를 보는 많은 미국 내 기독교인들은 '그렇지. 기독교가 남편이라면 유대교는 부인이겠지. 어차피 기독교는 유대교가 모태가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기독교에 뿌리를 둔 시청자들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운다. 물론 작가는 유대계였다. 그런데 ‘매드 맥스’ 시리즈로 유명한 멜 깁슨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제작한다.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마지막 12시간의 행적이다. 문제는 예수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가 아니라 '유대교 제사장에 고난을 받으사'인 것이다.

할리우드가 발칵 뒤집혔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가 “멜 깁슨 영화에 돈을 대거나 출연하는 연기자와는 앞으로 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유대인들이 디아스포라에서 겪었던 지난 2000년의 고난이 바로 본디오 빌라도가 아니라 유대인 제사장에게 고난을 받았다는 인식 때문이 아니었던가. 스필버그도, 루카스도 유대인이다.

결국 멜 깁슨은 자신의 돈 8000만 달러로 영화를 제작한다. 그 영화에서 막달라 마리아 역을 맡았던 모니카 벨루치만 이후에도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샤이어 라보프, 인디아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 레옹의 나탈리 포트만이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 “신인이 주인공을?”하고 의아해하다가 “아, 이들이 유대인이지”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이처럼 할리우드는 유대인들의 새 예루살렘이다. 날씨도 사막을 배후에 둔 지중해식 기후이다. 그래서인지 상수리 나무가 많다. 유대인에게 상수리 나무는 ‘언약의 나무’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바빌론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할 때 표징이 바로 커다란 상수리 나무(Oak)이다. 할리우드 인근에 ‘사우전드 오크스’와 ‘오크 파크’가 있는데, 당연히 유대인들의 집단 거주지이다.

언약의 나무가 1000그루나 있고 상수리 나무로 이뤄진 공원이라니, 유대인들이라면 얼마나 가슴이 설레겠나. 외지인들에게 이 동네의 12월은 매우 이상하게 느껴진다. 성탄 트리가 반짝이고 징글벨이 울리는 미국의 여느 도시와 달리 썰렁한 분위기이다. 산타클로스도, 루돌프 사슴도 없다. 그때서야 “아,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배교자일 뿐”이란 걸 깨닫게 된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에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발언해 중동 화약고에 불을 붙였다.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공동 성지이다. 유대교 최초의 성전이 세워졌던,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던, 마호메트가 승천했던 곳이다. 트럼프의 사위가 유대인이고, 딸도 유대교로 개종했기 때문일까. 머지않아 예루살렘과 유대인을 엮은 할리우드 영화가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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