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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I의 중국 대중문화 읽기㉖] 中 록음악 대부 추이젠…노래로 38선을 넘나들다

안영은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CCI) 선임연구원(베이징대학 문학박사) 입력 : 2017-12-21 10:31수정 : 2017-12-21 16:50
한국 출신 모친·옌볜 출신 부친…청년세대 대변한 조선족 3세 가수

'춤추며 넘는 38선'이 수록된 '내게 색깔을 좀 보여줘'의 앨범 표지사진.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네' 앨범 표지사진. [사진 출처=바이두]

최근 ‘홍콩 국제 시가(詩歌)의 밤’ 개막행사에서 중국 록음악의 대부라 불리는 추이젠(崔健)이 무대에 올라 현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그런데 이 록 가수는 개막식 공연에만 참가했던 것이 아니라, 본행사인 시가 낭송회에도 시집이 아닌 기타를 들고 등장해 주목을 끌었다. 가수의 음악은 곧 시인의 시와 다를 바 없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노래를 시로 삼은 추이젠은 마음과 자연의 관계를 담은 ‘빛이 얼다(光凍)’, 홍콩에서는 처음 공개하는 ‘춤추며 넘는 38선’, 그리고 일찍이 ‘20세기 말 문학현상(20世紀末文學現象)’ 필독서에 수록된 바 있는 ‘가행승(假行僧)’, 신곡 ‘잔류자(留守者)’ 등 모두 4곡을 불렀다.

이 가운데 두 번째와 네 번째 곡이 관심을 끌었다. 특히 두 번째 곡의 제목이 매우 흥미롭다.

‘춤추며 넘는 38선’은 2005년 앨범 ‘내게 색깔을 좀 보여줘(給我一點兒顔色)’에 수록된 곡으로 그의 가족사와 관계가 있다.

추이젠은 한국 출신 어머니와 옌볜(延邊)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조선족 3세 가수다.

38선을 경계로 양쪽 사람들이 하나가 돼 베이징(北京)에서 추이젠을 낳았고, 그는 ‘춤추며 넘는 38선’을 통해 현재 세계 유일의 이데올로기 분계선인 38선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기를 희망했다.

신곡 ‘잔류자’는 농촌에 남아 있는 노인, 아동, 부녀자들을 그린 곡이자, 동시에 중국 곳곳에서 자기 신념을 지키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정곡이다. 이 곡은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배회하는 추이젠의 모습을 담고 있다.

중국 대중음악사에서 추이젠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대표곡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네(一無所有)’(1986)는 당시 중국 청년세대를 대변하는 노래다. 거친 음색, 격정적 비트, 사회성 있는 가사와 추이젠 만의 독특한 스타일은 기성문화 혹은 지배문화와의 단절을 조성했다.

문화대혁명이 지나간 후, 1980년대 중국 대중음악의 주류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것은 덩리쥔(鄧麗君)식의 연가풍 노래와 캠퍼스 포크송, 시베이풍(西北風) 민가 등이었다.

이런 음악들은 주로 대중들에게 역사적 향수 혹은 문화적 공동체로서의 일체감을 제공해 주는데 주력했다. 그러면서 정작 대중들이 현실 속에서 처하고 있는 문제들을 간과했다.

반면, 추이젠은 자신이 맞닥뜨려야 하는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불안, 낙후된 듯한 자신의 모습에 대한 좌절감, 자신을 방치하는 사회체제에 대한 반감 등 청년세대의 사회적 고민을 정서적 과잉에 함몰되지 않고 담담하게 노래했다.

개혁·개방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1993년을 기점으로 자본화의 물결에 따라 국가정책을 비롯한 모든 것들에 변화가 오는 시점에서 추이젠의 문화적 위치에도 변화가 생긴다. 록음악 자체는 여전히 대중음악의 비주류적 위치에 처해 있었지만, 중국 록음악의 지존무상으로 격상한 추이젠의 문화적 위치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네’ 시기와 같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추이젠 음악의 지향점은 여전히 주변화된, 지배 가치에 의해 거부된 계급들을 향한다.

문제는 추이젠 음악의 주요 소비층들이 과거 ‘아무것도 가진 게 없네’에 열광하던 청년세대라는 점이었다. 몇 년 새 이들은 이미 지배문화 향유층이 돼 버렸다.

그들은 추이젠의 새로운 음악에 호응하는 대신 이전의 음악들을 소구함으로써 그 세대의 자기 세대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다.

이로 인해 추이젠의 새 음반들은 반응이 신통치 않았고 오히려 경전음악으로서의 과거 음반이 기존 팬들의 요구에 재판되고 지속적으로 소비됐다. 추이젠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이례적으로 추이젠의 록음악은 중국 학술계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심지어 몇몇 작품은 대학교재인 ‘백년문학경전(百年文學經典)’, ‘중국당대문학사교정(中國當代文學敎程)’ 등 중국문학의 ‘경전화(經典化)’ 작업 속에 편입되기도 했다.

추이젠 록음악이 구현했던 지배 가치에 대한 반항을 오히려 주류체제가 의미 있는 것으로 인정해버린 것이다. 그 결과, 추이젠은 주류체제 속에 길들여 진 것처럼 비춰질 위험에 처하게 됐다.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던 추이젠은 “문자가 만들어 놓은 경전의 틀 속에 갇히거나, 혹은 상업적 안전 시스템 속에서 자본의 원리에 부응하는 음악적 보금자리에 안주하느니 고독하게 날아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잔류자’는 추이젠의 건재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음반 곳곳에 배어있는 시대정신에 누군가는 루쉰(魯迅) 정신을 봤노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날의 공연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한국, 북한, 중국의 경계에 서있는 조선족 3세 가수가 북한 병사 귀순 총격 사건으로 떠들썩한 시점에서 ‘춤추며 넘는 38선’을 불렀다는 것이다.

수십 발의 총탄을 피해 죽음을 각오하고 넘어야 하는 군사분계선이 아닌 추이젠의 노래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춤추며 38선을 넘나들 수 있는 그 날은 과연 언제일까?

[안영은 ACCI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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